1.
손을 떠나간 농구공이 멋지게 포물선을 그리며 골대로 날아갔다. 카가미의 입꼬리가 비스듬히 올라갔다. 손끝을 떠난 순간부터 느꼈지만, 이건 골이었다. 곧 농구공이 골대 안으로 쏙 빨려 들어갔다. 그물이 출렁이고 농구공이 바닥을 퉁기곤 몇 번 떠올랐다. 그리고,
“……어?”
카가미의 눈썹이 위로 치켜 올라갔다. 알 수 없다는 표정이었다. 분명 골이 들어간 것은 맞지만 뭔가가 이상했다. 어느새 농구공이 데구르르 굴러 카가미의 발끝을 툭 쳤지만 카가미는 여전히 멍한 얼굴로 서 있었다. 골은 맞다. 온 몸의 감각이 그렇다고 말했고 실제로도 들어갔으니까. 하지만 느껴지는 것이 다르다. 카가미의 골은 미도리마의 3점 슛처럼 완벽하게 매끄럽지 못하다. 그건 미도리마만이 할 수 있는 것이었다. 아무리 그렇게 해보려고 한들 백보드에 부딪히거나 링에 부딪히고 만다. 그건 정말 자연스러운 일이었고, 별로 흠도 아니었다. 어쨌거나 골을 넣기는 하니까. 하지만 이번에는 그런 것을 도무지 느낄 수가 없었다.
우두커니 서있던 카가미가 다시 공을 집어 들었다. 자잘한 흙먼지에 더러워지기는 했지만 평범한 농구공이었다. 카가미가 침을 꼴깍 삼켰다. 그리고 다시 한 번 공을 바닥에 튕겨 보았다. 농구공은 가볍게 바닥을 찍고 다시 카가미의 허리께만큼 튀어 올랐다. 그러나 카가미는 그것을 잡는 대신 손을 떨구고 말았다.
아무것도 들리지 않았다, 농구공이 바닥에 닿는 소리, 튕겨져 오르며 내는 경쾌한 소리, 그 무엇도. 그것들이 어떤 소리를 내는지 카가미는 이미 알고 있었다. 하루에도 수십 번, 수백 번, 수천 번 듣는 소리였으니까. 그러나 그 모든 소리는 카가미의 머릿속에서만 웅웅 울릴 뿐이었다. 귀에 들어오는 것은 아득한 적막, 오로지 그것 뿐 이었다.
카가미는 다시 한 번 공을 집어 들고 미친 듯이 튕겨 보았다. 몇 번이고 바닥을 딛고 올라오는 농구공과, 그것을 잡고서 흐트러짐 없이 달리는 다리, 그리고 몸을 비틀며 골대를 향해 공을 던지는 손놀림, 마지막으로 정확하게 안으로 들어가는 공까지. 달라진 것은 아무것도 없었다. 운동화와 바닥이 마찰을 빚으며 내는 소리, 공이 튕겨 오르며 내는 소리, 링을 맞고서 골대 안으로 철썩 들어가는 소리, 하다못해 카가미의 머리칼을 스치고 지나가는 바람 소리마저 까마득한 어둠에 집어 삼켜진 것처럼 그 무엇도 들리지 않는다는 점을 제외하고는.
순식간에 카가미의 눈동자가 절망으로 물들었다. 반사적으로 집어 들었던 공이 저도 모르는 사이 바닥으로 굴러 떨어졌지만, 카가미는 그것조차 깨닫지 못했다. 어떤 소리도 들리지 않았기 때문이었다.
2.
혹시 하는 마음으로 일단 집에 돌아갔지만 달라지는 것은 없었다. 카가미는 거칠게 머리를 헤집으며 깊게 한숨을 내쉬었다. 그런다고 기분이 나아지지는 않았다. 후, 바닥이 꺼질 듯한 제 한숨 소리조차 들리지 않는다는 점만 확실해졌을 뿐이었다.
카가미는 기억을 더듬어 보았지만 원인으로 추정되는 것이 아무것도 없었다. 오늘 역시 매번 카가미가 보내왔던 일상과 똑같았다. 학교를 가고, 부원들과 함께 농구를 하고, 쿠로코와 마지 버거를 먹고, 밤이 되기 전에 집 앞 코트에서 혼자 연습 시간을 가진다. 카가미의 일상은 틀에 박힌 듯 이 범주를 벗어나지 않았다. 당연히 중간에 머리를 얻어맞거나 귀를 부딪친 적은 없었다. 그 전에 사소하게 다칠만한 일조차 하지 않았다.
병인가? 일시적인 것일까. 아니, 그래야겠지. 평생 소리가 들리지 않는다고 생각하면 모든 것이 끔찍해졌다. 별로 생각하고 싶지도 않았다. 쿠로코나 다른 사람들에게 연락해서 말해야 하나 싶었지만 카가미는 곧 그 생각을 접었다. 전화로 해봤자 제가 들리지 않을 터였고, 정확한 원인도 알 수 없는 이 증세를 말해봤자 일만 더 커질 뿐이었다. 카가미는 제가 좋아하는 이들이 저를 걱정하게 만들고 싶지 않았다.
혼자서 땅을 파도 달라지는 것은 없었다. 카가미는 침대에 벌러덩 드러누웠다. 여름이라 바꿔놓은 얇은 이불이 사부작거리는 소리가 들리지 않아 모든 것이 적막하고 고요했다. 이 시간이면 늘 시끄럽게 울어대는 각종 벌레 소리 역시 잠잠했다. 카가미는 일부러 주먹을 쥐곤 침대를 쿵 내리쳤다. 출렁이는 것은 몸으로 느낄 수 있었으나 어떤 소리가 나지는 않았다. 카가미는 둥글게 몸을 말고선 베개에 얼굴을 박았다. 정말로 이 세상에서 혼자가 된 것 같은 느낌이 들었다.
3.
어둠이 손을 뻗어 몸을 아래로, 더 깊숙한 아래로 잡아당기는 것만 같았다. 어딘지도 알 수 없는 심연의 끝자락까지 추락하는 그 느낌. 그러나 몸이 아래로 떨어지는 와중에도 사방은 그 어떤 소리도 없이 고요했다. 제 몸조차 보이지 않을 정도로 어두운 적막이 몸을 짓눌러왔다. 마침내 그것이 제 목까지 조여오기 시작했을 때, 카가미는 급하게 숨을 들이마시며 눈을 떴다.
“크헉, 읏, 켁.”
갑자기 들어온 공기에 놀란 카가미가 연신 기침을 토해냈다. 얼굴이 발개질 정도로 콜록거리는데도 시끄러운 기침 소리는 어디에도 존재하지 않았다. 카가미는 제 목을 부여잡고 두어 번 더 기침을 쏟았다. 조금 잠잠해지고 나서야 카가미는 주위를 둘러보았다. 어둠은커녕 해가 내리 쬐는 낮이었다. 낮? 놀란 카가미가 자리에서 벌떡 일어났다. 학교! 허둥지둥 움직이던 카가미가 시계를 보았을 땐 이미 늦어도 한참 늦은 시각이었다.
아무리 늦었어도 일단 나가긴 해야 했다. 카가미는 씻는 둥 마는 둥 대충 세수를 했다. 물이 쏴아 쏟아지는데도 들리는 것이 없어 기분이 이상했다. 수도꼭지를 꽉 잠가 물이 떨어지지 않는 것을 두 눈으로 똑똑히 보면서도 여전히 소리가 들리지 않는 것이 이상해 카가미는 몇 번이고 끝까지 돌리는 것을 반복했다. 뒤늦게 겨우 정신을 차리고 교복으로 갈아입어 밖으로 나왔을 때도 카가미는 세 번이나 문이 제대로 잠긴 것인지 확인해야 했다.
꿈에서조차 아무 소리도 나지 않았다. 원래 소리가 없는 세상이 이렇게까지 조용한가? 단순히 조용한 것을 넘어서 아무도 존재하지 않는 것만 같았다. 자신 외의 존재는 모두 이 세상에서 사라진 것만 같은 아득한 두려움만이 가득했다. 아침마다 카가미를 깨우곤 했던 알람 소리는 물론이거니와 날이 밝은 것을 알리며 지저귀는 새소리, 지나가면서 떠들어대는 사람들의 대화 소리까지 모든 것이 차단된 것처럼 카가미의 귀에 닿지 못하고 튕겨져 나갔다. 그러나 분명 알람은 울렸으며 새는 노래했고 사람들은 수다를 떨었다.
잘 걷던 카가미의 걸음이 우뚝 멈추었다. 늦은 탓에 길에 사람이 적기는 했지만 아예 없는 것은 아니었다. 그러나 카가미는 혼자였다. 제 눈에 담기는 그것들이 정말인지 확신할 수가 없었다. 소리란 것이 이렇게까지 중요한 거였나? 카가미로선 한 번도 생각해본 적 없는 문제였다. 당연한 일이었다. 누구도 제 귀가 들리지 않게 된다면, 같은 생각을 진지하게 하지 않을 테니까.
카가미는 혼자 지내는 시간이 많았지만 그것들이 결코 혼자만 존재하는 시간인 것은 아니었다. 틀어놓은 음악 소리가 적막한 집 곳곳을 채워 넣었고 종종 친구나 아버지에게서 연락이 오기도 했다. 다른 모든 것들을 뒤로하고 농구에만 몰입할 때에도 마찬가지였다. 바닥을 딛고 점프할 때, 농구공이 옷자락을 스쳐지나갈 때, 백보드에 맞고 튕겨 나온 공이 아쉽게 바닥을 구를 때, 그 모든 것들이 하나의 소리가 되어 카가미의 시간을 이루었다. 그러나 지금은? 어제 농구를 할 때 어땠지? 아무 소리도 들리지 않았다. 세상이 평화롭게 조용한 그런 느낌이 아니었다. 어둠이라는 괴물이 도처에 존재하는 모든 소리를 와그작 씹어 먹어서 결국 아무것도 존재하지 않게 된, 그런 섬뜩함이 가득했다. 문득 카가미는 꿈에서 보았던 어둠의 손들이 제 몸에 덕지덕지 매달리는 기분이 들었다.
그리고 그 때, 빠르게 달려오던 오토바이가 카가미의 곁을 아주 가깝게 스쳐지나갔다. 카가미가 놀랄만한 반사 신경으로 몸을 살짝 틀지 않았더라면 그대로 부딪혔을 거리였다. 오토바이 주인은 헬멧을 올리고선 무어라 시끄럽게 쏘아붙였지만 카가미는 멍청하게 눈을 깜빡이는 것밖에 할 수 없었다. 비키라는 소리가 들리지 않았냐, 분명 그렇게 말하고 있었다. 그 격양된 목소리가 들리는 것은 아니었지만 대충 짐작할 수는 있었다. 그리고 그것이 카가미를 더 커다란 절망의 늪으로 빠뜨렸다. 정말로 들리지 않았으니까.
카가미는 지금까지 걷던 방향과 반대로 몸을 휙 돌리고선 집을 향해 정처 없이 달려갔다.
4.
“어이, 테츠.”
“무슨 일입니까, 아오미네군.”
교문 앞에 서있는 아오미네를 보고 쿠로코가 잠시 놀란 표정을 지었다. 아오미네 역시 제 앞에 선 쿠로코를 보고는 마음에 안 든다는 듯 눈을 흘겼다. 쿠로코는 아오미네가 무슨 말을 하려는지 빠르게 눈치 챘다.
“……왜 너 혼자냐?”
“카가미 군이라면 아픕니다.”
“뭐? 아프다고?”
정말 놀랐는지 아오미네의 눈이 크게 뜨였다. 쿠로코도 어느 정도 그 반응에 공감했다.
“바보 주제에 아플 리가 없는데.”
“그러게 말입니다. 며칠째 못 오고 있으니, 거짓말은 아닐 것 같습니다만….”
쿠로코가 덧붙인 말에 아오미네의 눈썹이 꿈틀거렸다. 며칠이나 못 오고 있다고? 그 농구 바보 녀석이 이렇게 오래 농구를 쉴 리가 없었다. 무엇보다 카가미는 제가 거는 전화조차 모조리 무시하고 있었다. 차라리 연락하지 말라고 말이라도 하면 나을 텐데 그조차도 없었다. 물론 진짜로 그렇게 나온다고 해서 아오미네가 그렇구나 하고 넘어갈 것은 아니었지만.
“어디가 아픈 건데.”
“……모릅니다.”
“…모른다고? 테츠, 진심으로 하는 소리냐?”
속을 알 수 없는 쿠로코의 눈빛이 담담히 가라앉았다. 쿠로코 역시 카가미가 걱정되지 않는 것은 아니었다. 아프니까 가지 못한다고 덜렁 문자만 보내왔을 때는 그러려니 했다. 리코가 직접 전화까지 해서 확인했다고 했으니까. 물론 그 때도 카가미는 제 할 말만 하고 뚝 끊었다고는 했지만, 리코가 듣기에도 목소리가 영 좋지 않은 것이 아파보인다고는 했었다. 하지만 다음 날에도, 그 다음 날에도 여전히 아프다는 말로 얼굴을 보이지 않는 카가미는 아무리 생각해도 의심스러웠고 또 그만큼 걱정스러웠다.
그러나 카가미는 쿠로코가 보내는 연락에도 답장을 하지 않았다. 문자도, 전화도 모두 무시했다. 정말 큰일이라도 생긴 걸까 싶어 집을 찾아갔을 때에도 카가미는 얼굴을 보여주지 않았다. 초인종을 몇 번이고 누르고, 문을 아무리 세게 두드려 봐도 반응이 없었다. 걱정을 넘어 화까지 차오른 휴가가 참다못해 문을 아예 따고 들어가려 했을 때야 카가미의 낮은 목소리가 들려 왔다. “아직 낫지 않았으니 돌아가 주세요.” 문 너머로 들리는 카가미의 목소리는 마치 쥐어짜기라도 한 듯이 퍽퍽하게 갈라져 있었다. 그만큼 우중충하고, 나아가 우울한 기색까지 띄고 있는 목소리에 문 앞에 서있던 모두가 굳고 말았다. 쿠로코가 느끼기에도 카가미의 목소리는 우는 것 마냥 젖어 있었다. 이제 어떻게 해야 할 지 의견은 갈렸지만 카가미를 생각하는 마음만큼은 모두 같았다. 끝내 며칠 동안은 카가미가 원하는 대로 내버려두잔 식으로 결론이 났다. 쿠로코는 그것이 못내 마음에 들지 않았지만 반대하지는 않았다. 어쩐지 이대로 들이닥쳤다간 저보다 한참은 크고 단단한 카가미가 그대로 부서질 것만 같았다. 그 정도로 위태롭게 들렸다.
“어디가 아픈지도 모르면서 며칠 동안 땡땡이치는 걸 봐줘?”
“아오미네군이 할 말은 아닌 것 같네요.”
“그 녀석이 그럴만한 놈이 아니란 건 너도 잘 알잖아?”
아오미네의 말에 쿠로코는 답을 하지 못하고 입을 다물었다. 아오미네는 조금 신경질적으로 머리를 쓸어 넘겼다. 적어도 쿠로코는 왜 연락을 받지 못하는지 그 이유를 알거라 생각했다. 하지만 막연히 아프다라는 답으로 모든 것을 넘어가기엔 석연찮은 부분이 많았다. 기껏 세이린까지 찾아 온 보람이 없다면 앞으로 해야 할 일은 하나였다. 아오미네는 미련 없이 등을 돌렸다.
“아오미네군, 어디 갑니까?”
“어딜 갈 거라고 생각하는데.”
“…카가미군 집이겠죠.”
“알면서 뭘 묻냐.”
쿠로코는 아오미네를 말려야 하나 잠깐 고민했지만 이내 그 생각을 접었다. 어차피 쿠로코로서도 지금이 거의 한계치였다. 아오미네가 가서 어떤 방식으로든 카가미와 직접 부딪힌다면 나쁠 게 없었다. 쿠로코는 슬렁슬렁 걷는 아오미네의 뒷모습을 보며 다짐했다. 돌아 오고나면 저한테 한 대 맞을 각오 하십시오, 카가미군.
5.
나아지지 않았다. 달라지지 않았다. 그럴 기미조차 보이지 않았다. 여전히 세상은 바람 소리조차 들리지 않을 정도로 적막했고 그만큼 무서웠다. 카가미는 차라리 공포 영화에 깔리는 스산한 BGM과 갑자기 등장해서 깜짝 놀래 키곤 하는 귀신 따위가 더 나을 거라고 생각했다. 오히려 어떤 소리도 나지 않는 세상 쪽이 더 두렵고 무서웠다. 제가 내뱉은 말조차 들리지 않는다는 점에서 특히 그러했다. 사실 내 목소리도 나오지 않는 게 아닐까? 그렇게 생각하면 견딜 수가 없었다. 확인할 수 없기에 두려움의 정도는 날이 갈수록 더 높아지기만 했다.
몰래 병원에도 가봤다. 하지만 의사는 고개를 갸우뚱하며 눈을 찌푸릴 따름이었다. “양쪽 귀 다 멀쩡합니다.” 원인이나 해결 방법은 고사하고 다른 이들은 카가미의 증세를 이해조차 하지 못했다. 하지만 카가미는 정말로 아무것도 듣지 못했다. 의사가 그렇게 말할 때도 단번에 알아듣지 못해 멀뚱히 앉아 있었으니까.
자연히 밖으로 나가는 것이 꺼려졌다. 어차피 어디서도 소리가 들리지 않는다면 집에 있는 편이 나았다. 안전하기 때문만이 아니라 그 쪽이 마음이 편했다. 어차피 내가 집에 가만히 숨죽이고 있으면 어떤 소리도 나지 않으니까 그래서 들리지 않는 거라고, 눈 가리고 아웅 식이지만 어떻게든 자신을 위로하는 것이 가능했다. 코웃음이 나올 정도로 어설픈 자기 위로였지만 이렇게라도 하고 싶었다. 그렇지 않으면 정말 무너질 것 같았다.
하지만 언제까지고 이러고 있을 수는 없었다. 카가미는 매번 잔뜩 기대에 젖어서 발로 바닥을 내리치거나 벽이며 책상 따위를 주먹으로 가볍게 두드려보았지만 어떤 소리도 들리지 않았다. 이번에야말로, 이번만큼은, 기대에 부풀었던 만큼 실망과 절망은 몇 배로 크게 다가왔다. 정말로 걱정인 것은 농구였다. 들리지 않는다면 농구를 할 수 없다. 실생활이 불안할 정도이니 당연했다. 같은 팀이 제게 외치는 소리도 들리지 않을 거고, 등을 지고 있다면 농구공이 정면으로 날아 와도 모를 터였다. 카가미의 인생을 통틀어도 이 경우가 가장 비참했다. 더 이상 농구를 할 수 없다니. 그건 카가미의 인생을 송두리째 뺏기는 것과 같았다.
그래도 카가미는 포기하지 않았다. 오늘만큼은. 오늘은 들릴 거야. 그래야만 해. 금방이라도 끊어질 것처럼 어설픈 동아줄이었지만 그거라도 잡아야 버틸 수 있었다. 카가미는 조심히 농구공을 챙겨 들고 집 앞의 코트로 향했다. 공을 튕겼을 때 그 경쾌한 소리가 들리지 않는다면 들이닥칠 절망은 훨씬 크겠지만, 그래도 해봐야 했다. 이것만큼은 절대로 빼앗길 수 없었다.
햇볕이 너무 강해 눈이 부실 정도의 여름이었다. 카가미는 얼굴을 잔뜩 찡그린 채 천천히 걸음을 옮겼다. 들리는 것이 없으니 자연히 모든 것이 조심스러워졌다. 누가 보면 꽤 우스울 수도 있는 모습이었다. 덩치도 큰 남자가 뻣뻣하게 긴장한 채로 걸어가고 있으니. 카가미는 아무 소리도 나지 않지만 오히려 소리가 나지 않기 때문에 종종 어깨를 움츠리며 걸었다.
그리고 갑자기 누군가가, 축 늘어져 있던 카가미의 손을 잡아 당겼다.
“어이, 카가미!”
깜짝 놀란 카가미의 몸이 당겨진 쪽으로 핑그르 돌았다. 달려왔는지 어깨를 씩씩거리며 서있는 것은 아오미네였다. 금방이라도 주먹을 올릴 것처럼 잔뜩 성난 얼굴을 하고선 아오미네가 소리쳤다.
“사람 말이 안 들리냐? 멈추라고 했잖아!”
아오미네의 격양된 목소리가 들렸다. 평소보다도 톤이 높아서 갈라지는 그 목소리. 동시에 온갖 소리가 순식간에 카가미의 귀에 내리 꽂혔다. 찌르르 우는 여름 벌레들의 울음소리와 저 멀리서 지나가는 자동차의 낮은 진동 소리, 바람이 살랑거릴 때마다 저들끼리 나부껴 내는 나뭇가지와 나뭇잎의 아주 작은 소리와 어디선가 뛰어 놀고 있는 아이들의 제법 즐거운 웃음소리까지. 모든 것이 마구잡이로 카가미의 온몸을 내리치듯 순식간에 덮쳐 왔다.
“카가미, 너… 어? 야, 너 왜 이래?”
카가미가 옆구리에 끼고 있던 농구공이 바닥으로 툭 떨어져 굴러갔다. 비록 바닥이 코트는 아니었지만 쿵, 하고 농구공이 바닥과 닿으며 내는 그 소리에 참았던 모든 것이 터져버리고 말았다. 들린다. 평소와 똑같이, 너무나도 잘.
“…야, 미친, 너… 너 왜 울어? 어이!”
당황한 티가 역력한 아오미네의 목소리가 오늘처럼 듣기 좋은 적이 없었다. 너무 오랜만에 듣는 소리들이 무작위로 쏟아지느라 정신이 없었지만 그마저도 견딜 수 없이 좋았다. 아오미네가 붙잡고 있는 제 손목이 뜨끈했고 눈시울은 그것보다 더 뜨거워졌다.
“더… 더 해줘….”
“뭘 더 해? 너 진짜 미쳤… 카가미?”
잘 내지도 않아 잔뜩 잠기고 우그러진 목소리가 튀어 나왔다. 누가 들어도 못나고 형편없는 목소리였으나 카가미는 제 목구멍에서 나온 그 그르렁대는 소리가 감격스러웠다. 제대로 잘 나고 있구나. 웃는 것인지 우는 것인지 애매한 얼굴을 하고선 눈물만 뺨 위로 뚝뚝 떨구는 카가미에 아오미네는 어찌할 바 모르고 입술만 깨물었다 놓았다.
“네 목소리가 이렇게 듣기 좋은지 몰랐어, 아오미네.”
그러나 이어지는 말에는 아오미네도 별 수 없이 덩치 값도 못 하고 울기나 하는 카가미를 끌어안을 수밖에 없었다. 카가미는 그 순간 아오미네의 두근거리는 심장 소리가 세상 무엇보다도 안심이 되는 소리라고 생각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