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D 2.5D NOTICE GUEST

 실은 시작부터 마지막을 생각하고 있었다.


 생각해보면 처음부터 말이 안 되는 관계였다. 오이카와는 결단코 우시지마 와카토시와 이런 사이가 되는 날이 오리라 생각하지 않았다. 나이가 어릴 적부터 계속 신경을 썼기 때문일까. 아니면 그를 미워하면서도 바라본 시간이 오래여서 그랬던 걸까. 어느 순간 우시지마에게 느끼는 감정이 하나로 정의내리기 힘들어졌다. 오이카와의 시선은 자주 우시지마에게 머물렀고, 또 그만큼 종종 우시지마를 떠올렸다. 그리고 어쩌면 그때부터 우시지마 역시 같은 생각을 하고 있었을지 몰랐다.


 “입맛이 없나?”


 오이카와가 식사를 앞에 두고도 도통 수저를 움직이지 않자 우시지마가 의아하게 물어왔다. 우시지마의 눈이 느리게 깜빡였다. 오이카와는 우시지마의 이 표정을 질리도록 보아왔다. 미세하게 변한 표정이 정말로 궁금하다는 빛을 띄고 있었다. 오이카와는 우시지마의 얼굴을 빤히 바라보다가, 이내 피실 웃으며 수저를 들었다.


 “그럴 리가. 잠시 다른 생각을 좀 하느라고.”

 “밥을 먹을 때에는 먹는 것에 집중하는 것이 좋다.”


 우시지마다운 딱딱한 대답에 오이카와가 과장되게 손을 휘두르며 투덜거렸다.


 “그렇지만 이렇게 같이 앉아있는데 밥 먹는 생각만 하라니, 그건 너무 팍팍하다고.”


 우는 소리에도 아랑곳 않고 우시지마는 남은 식사를 마쳤다. 식사가 제법 만족스러웠는지 우시지마의 입꼬리가 슬쩍 위로 솟았다. 오이카와는 다소 멀기는 해도 이곳까지 데려오기를 잘했다고 생각했다. 오이카와는 어느새 우시지마의 옅은 미소를 바로 눈치 챌 정도로 우시지마를 꿰고 있었다. 오이카와는 우시지마의 얼굴을 아주 천천히, 또 오래오래 바라보았다. 그가 의아함을 느끼고 다시 한 번 고개를 왼쪽으로 기울일 때까지. 여전히 오이카와는 음식에 손도 대지 않은 채였다. 우시지마가 혹시 오이카와가 어디 아픈 것은 아닐까 생각하던 차였다.


 “나 할 말이 있는데.”

 “뭐지?”


 오이카와가 적당히 목소리를 가다듬었다. 우시지마는 걸어오던 길을 떠올리며 이 근처에 약국이 있었는지 생각했다.


 “우리 헤어지는 게 좋겠어.”


 짧은 침묵 끝에 터져 나온 말에 우시지마는 아무 말도 하지 못했다. 반응이 바로 튀어나오지 않았다. 우시지마는 이해할 수 없다는 듯 눈을 살짝 크게 떴다가, 느릿느릿 되물었다.


 “……왜지?”


 평소와 비슷해 보이는 얼굴이었지만 오이카와는 우시지마가 지금 적잖이 놀랐다는 것을 아주 잘 알았다. 다소 충격 받은 얼굴은 오이카와 역시 처음 보는 것이기도 했다. 너는 그렇게 놀라는구나. 마치 한 번도 생각해본 적 없는 일이었다는 듯. 오이카와는 작게 웃었다. 오이카와가 지금과 같은 장면을 몇 번이나 그려냈는지 우시지마가 안다면 지금보다 더욱 놀랄지도 모른다. 분명 그럴 터였다.


 이유야 여러 가지가 있었지만 오이카와는 그 중 단 한개도 입에 올릴 수가 없었다. 우시지마에게 설명하기엔 너무 어렵고 복잡한 일이었다. 무엇보다도 오이카와가 스스로 그 이유를 입에 담고 싶지가 않았다. 자신이 얼마나 치졸해보일지 잘 알아서였다.


 ‘오이카와 토오루는 우시지마 와카토시를 좋아한다.’ 이 문장에는 어떠한 거짓도 존재하지 않았다. 분명 오이카와는 우시지마를 좋아하고 있었다. 자주 그를 보며 미소 지었고, 종종 그를 끌어안았으며, 가끔은 잠자리에 들기도 했다. 저보다 키도 크고 목석같이 구는 우시지마가 사랑스러워 견딜 수 없어지는 순간 역시 더러 존재했다.


 그러나 그것만은 아니었다. 오이카와는 우시지마가 미웠다. 제게는 존재하지 않지만 그에겐 넘쳐흐를 정도로 가득한 재능을 질투했다. 무심한 얼굴로 내뱉는 단호한 진실이 듣기 싫었고, 그런 말을 할 자격이 충분한 우시지마를 시기했다. 승리라는 단어가 일상처럼 익숙한 그의 삶이 부러우면서 화가 났다. 우시지마와 연애를 하고 난 뒤에도 오이카와는 가끔 때로는 자주 이런 감정을 느꼈다. 어떻게 한다 하더라도 결코 사라질 수 없는 감정이었다.


 인정하고 싶지는 않았지만 분명 어느 정도의 열등감이 오이카와의 내부에 자리 잡고 있었다. 우시지마를 볼 때마다, 혹은 시라토리자와의 경기를 볼 때마다 한쪽 구석에 웅크리고 있던 그 감정이 불쑥 솟아나 오이카와를 괴롭혔다. 그것은 눈앞을 캄캄하게 덮어오기도 했고, 간혹 질척거리며 발목을 붙잡아오기도 했다. 오이카와는 여기서 벗어날 수 없었다.


 중요한 것은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시와카쨩. 이럴 때는 눈을 감는 거야.”

 “…그렇군.”


 오이카와는 우시지마를 좋아했다. 먼저 다가가 그의 뒷목을 눌러 잡고 입을 맞출 정도로.


 미워한 시간이, 지켜본 시간이 너무 길어서 그렇다고 오이카와는 스스로 결론을 내렸다. 우시지마에게 복잡하게 뒤엉킨 감정을 갖는 것은 어쩔 수 없는 일이었다. 우시지마는 모른다 하더라도 이미 오이카와 안에서 우시지마란 존재는 그런 식으로 자리를 갖춘 지 오래였다. 물론 오이카와는 이것을 우시지마에게 말할 생각이 전혀 없었다. 어차피 우시지마는 이해할 수도 없을 터였다. 우시지마가 오이카와에게 느끼는 감정은 매우 깔끔하고도 정직하게 ‘좋아한다’ 라는 네 글자일 테니까.


 우시지마는 기본적으로 무심한 편이었다. 표현이 서툴었고 다소 눈치가 없었다. 원래도 알고 있던 부분이었지만 사귀고 나니 그 정도가 생각보다도 더 심했다. 오이카와는 고개를 절레절레 저었지만 그럴 때 마다 꼭 우시지마에게 적당한 답을 골라주곤 했다. 말 안에 숨은 의도라거나 원만한 대화법을 줄줄 늘어놓을 때면 우시지마는 관심 없는 얼굴을 하고도 고분고분 고개를 끄덕였다. 물론 단박에 알아듣지 못하고 재차 물어오는 경우도 많았다.


 “그런 뜻으로 말한 게 아니라니까. 문장을 곧이곧대로 해석하면 안 되는 경우도 있는 거라고.”

 “하지만 분명 그런 식으로 말을 했다.”

 “나 참. 그럼 우시와카쨩은 내가 데이트하다가 갑자기 심심하니까 돌아가겠다고 하면 보내줄 거야?”

 “……나랑 있는 시간이 재미없나?”


 아니, 그게 아니라니까! 오이카와는 살짝 짜증을 내고 싶었지만 막상 조금은 풀이 죽은 듯한 얼굴을 보니 화를 내고 싶은 마음도 사라지고 말았다. 우시지마는 정말로 오이카와의 답을 구하는 것처럼 얼굴을 빤히 바라보고 있었다. 제 입술로 시선이 향한 것으로 보아 여기서 답을 하지 않는다면 정말로 그렇다고 생각할 것이 뻔했다. 오이카와는 작게 한숨을 뱉으며 우시지마의 등을 팡팡 내리쳤다.


 “그냥 표현이 그런 거야. 다른 일을 하자는 거지 정말 가겠다고 한 말이 아니라고.”


 오이카와는 불현듯 이와이즈미가 그 우시지마랑 같이 있으면 대체 무얼 하느냐고 물었던 것을 떠올렸다. 그냥 별 거 없다고 대수롭지 않게 대답했던 것처럼 실제로 우시지마와 함께 있는 시간 동안 오이카와가 딱히 대단한 일을 하는 것은 아니었다. 평범하게 같이 밥을 먹고, 돌아다니고, 대화를 나누고, 시간을 보내는 것 정도가 다였다. 그렇게 따지면 우시지마와 같이 있는 시간은 정말 재미가 없는 걸지도 몰랐다.


 “우시와카쨩은 어때? 나랑 있으면 재미없어?”

 “…아니.”

 “나도 마찬가지야.”


 아무렴 어때. 오이카와는 간단히 생각했다. 어쨌거나 우시지마와 같이 있는 시간은 지루하다기보다 편안했고, 또 그만큼 좋았으니 무엇을 하느냐는 그닥 중요한 일이 아니었다. 또 이런 말에 안심이라도 하는 것처럼 살짝 풀리는 우시지마의 표정 변화를 보고 있으면 그렇게 재미가 없는 것도 아니었다.


 기본적으로 리드하는 쪽은 오이카와였다. 언제나 여유를 부리고 태연하게 구는 것도 오이카와의 몫이었다. 이런 생활에서까지 조급해하고 하나하나 신경 쓰는 모습을 보여주고 싶지는 않았다. 유치한 마음이었지만 먼저 안달 내는 꼴을 보이고 싶지 않았던 것도 있었다. 그래서 오이카와가 참지 못하고 있는 그대로 화를 토해낸 것은 그 날이 처음이었다. 오이카와가 이와이즈미를 만나고 돌아온 날.


 이와이즈미를 만났다는 사실이 문제인 것은 아니었다. 오이카와는 오히려 우시지마보다도 더 많은 시간을 그와 보내고 있었으니까. 다만 그 날 오이카와는 평소와 다르게 시시한 이야기로 이와이즈미의 화를 돋우는 대신 제법 성실하게 연습을 이어갔다. 연습이 끝난 후엔 허기를 햄버거 따위로 때우며 같이 배구 경기를 봤다. 특별할 것도 없이 평범한 일상이었는데 유독 화면 너머의 그 매끄러운 움직임이나 따라하지도 못할 플레이가 오이카와의 시선을 사로잡았다.


 “이와쨩.”

 “왜.”

 “대학 가서도 계속 배구 할 거야?”


 아무 생각 없이 무심코 내뱉고 오이카와는 제가 이와이즈미에게 한 소리 들을지도 모르겠다고 생각했다. 예상과 다르게 콜라를 쭉 들이킨 이와이즈미는 창가 쪽으로 시선을 슬핏 돌렸다.


 “…글쎄.”

 “그렇구나.”


 오이카와 역시 그런 애매한 답밖에 나오지 않았다. 오이카와는 문득 우시지마를 떠올렸다. 지금 보고 있는 경기에 바로 투입한다고 해도 다른 사람의 발목을 잡을 정도는 아닐 것이다. 오이카와는 슬쩍 세터 위로 자신의 얼굴을 겹쳐보려다 그냥 화면을 덮고 말았다.


 “다 먹었으면 가자.”


 돌아가는 내내 오이카와는 기분이 이상했다. 괜히 마음이 울렁거리고 답답했다. 근래 플레이가 생각만큼 깔끔하게 되지 않아 답답해했던 탓도 있었다. 그와 달리 우시지마는 늘 그렇듯 언제나 완벽해보였고, 실제로 오이카와가 고민이 없냐고 물었을 때에도 우시지마는 당연하다는 듯 고개를 저었다. “없다.” 단호한 답에 물어본 오이카와가 놀라 멍청한 얼굴을 할 뿐이었다.


 벌써 우시지마는 돌아와 있었다. 걸어오느라 평소보다도 귀가 시간이 늦었다. 우시지마가 오이카와의 얼굴을 슥 훑더니 물었다.


 “늦었군.”

 “가끔은 이런 날도 있는 거지.”


 그래도 우시지마는 오이카와에게서 시선을 떼지 않았다. 잘은 몰라도 뭔가 이상하다고 느끼는 것이 틀림없었다. 우시와카쨩이 알 정도로 얼굴 표정이 이상한가. 오이카와는 가벼이 웃었다.


 “…무슨 일이라도 있었나?”

 “그냥 저는 이런저런 생각을 하느라 바쁘답니다.”

 “생각?”

 “고민없는 우시와카쨩은 모르겠지만 우리 살 날이 아직 많이 남아있다고? 앞으로의 일을 생각해야지.”


 솔직히 오이카와는 대충 대답하고 얼른 씻고 싶었다. 그런 오이카와를 우시지마가 붙잡았다.


 “배구를 하지 않을 생각인가?”


 오이카와의 걸음이 멈추었다. 그것을 긍정으로 생각했는지 우시지마가 눈썹을 찌푸렸다.


 “팀을 잘 고른다면 지금보다 훨씬 나은 결과가 나올 수도 있다.”


 꾸민 것처럼 완벽한 미소로 생글생글 넘어가기엔 오늘 상태가 좋지 못했다. 안 그래도 온갖 생각에 어지러운 머리였다. 오이카와에겐 우시지마의 단어 선택 하나하나가 모조리 거슬렸다.


 “그래서, 지금은 아니다…… 그런 뜻이야?”

 “같은 선택을 반복할 필요는 없지 않나. 강한 팀으로 들어가야 결과도 언제나 옳은 법이다.”


 비죽 올라간 입꼬리가 파르르 떨렸다. 그냥 모든 것에 다 화가 났다. 우시지마가 마치 지금은 잘못 선택한 것처럼 표현하는 것도 마음에 들지 않았고, 자연스레 저의 패배를 가정하고 있는 것도 마음에 들지 않았다. 예상은 했지만 정말 아무 고민도 없었을 우시지마라 더욱 화가 치미는 것도 있었다. 그런 주제에 생각해주는 것처럼 말하는 것까지 모두 짜증스러웠다. 우시지마라면 정말 한 치의 거짓도 없이 진심으로 조언했겠지만 오히려 그렇기 때문에 더 참을 수가 없었다.


 인정하고 싶지 않았지만 처한 상황이 달랐다. 우시지마가 당연하게 말하는 미래는 오이카와의 것이 아니었다. 우시지마는 한 번도 미래에 대한 걱정을 한 적이 없을 터였다. 이대로 계속 배구를 할 것인지, 아니면 다른 쪽으로 빠질 것인지. 배구를 계속 한다고 하더라도 돌연 한계에 부딪힐 수도 있었다. 그럴 때엔 또 어떻게 할 것인지 생각이 꼬리에 꼬리를 물고 이어졌다. 오이카와가 잠이 오지 않는 밤이면 어렴풋이나마 했던 고민들이 우시지마에게는 낯선 것이었다.


 오이카와는 더 이상 우시지마의 말을 듣고 싶지 않았다. 굳이 너와 나는 상황이 다르다고 콕 찝고 싶지도 않았다. 어떻게 해도 느껴지는 차이에 주먹을 꽉 말아 쥐면서도 그것을 인정하고 싶지 않은 것이 마지막 남은 자존심이었다.


 말 그대로 오이카와는 울컥했다. 가까스로 버티고 있던 감정이 둑이 허물어지듯 우수수 쏟아져 내렸다. 오이카와의 눈가는 화가 나서 붉어졌으나 우시지마는 꼭 울 것 같은 눈이라고 생각했다. 그리고 다음 순간 오이카와의 눈이 감겼다.


 “…지금은 얘기하고 싶지 않으니까, 내버려둬.”


 간신히 터져 나오는 감정을 억누르며 오이카와가 짓씹듯 내뱉었다. 겨우 꺼낸 말이었다. 우시지마가 계속 눈앞에 있다면 정말 참지 못하고 마구 찔러뱉을 것만 같았다. 자신에게도, 상대에게도 상처를 줄 것이 확실한 말을 남김없이 모조리 다.


 우시지마는 움직이지 않았다. 오히려 오이카와에게로 한 걸음 다가왔다. 오이카와는 평소라면 귀엽게 넘어갔을 그 행동에도 짜증이 솟았다. 지금은 이성으로 제어할 수 있는 순간이 아니었다. 우시지마의 어깨가 움찔 떨릴 정도로 오이카와가 버럭 소리를 질렀다.


 “젠장!”


 갈무리되지 않은 감정이 내지른 욕설에 한가득 담겼다. 오이카와는 우시지마를 노려보았다. 우시지마는 무슨 말을 해야 할 지 갈피를 잡지 못했다. 어떻게 해야 좋은 반응인지 알 수 없어서, 우시지마는 그냥 평소처럼 솔직하게 말했다.


 “오이카와. 널 생각해서 하는 말…….”


 자신을 위해서 했다는 말에 오이카와는 헛웃음을 터뜨렸다. 명백한 비웃음에 우시지마는 조금 놀란 얼굴이었고, 오이카와는 그 반응에 또 웃음이 나왔다. 이렇게나 생각해주다니 정말 황송하다며 그를 비꼬고 싶은 마음만이 가득했다. 그러나 입 밖으로 나온 것은 능글맞은 비꼼이 아니라 악에 받친 외침이었다.


 “생각? 아니, 넌 절대 이해 못해. 그러니까 그냥 나가라고!”


 오이카와의 어깨가 격하게 들썩거렸다. 씩씩거리는 숨소리가 적막을 메꿨다. 말을 내지름과 동시에 화가 더 뻗어 끝이 갈라지기까지 했다. 약간의 시간이 흐르고 우시지마가 고개를 끄덕였다.


 “…미안하군.”


 떨림조차 잘 느껴지지 않을 정도로 낮은 목소리였지만 오이카와는 느끼고 말았다. 상처받았구나. 우시지마가 언뜻 남들과 친하게 지내기 어려운 이미지이기는 했다. 실제로도 인간관계에 있어 다소 서툴고 모자란 부분이 많았다. 하지만 그렇다고 우시지마가 정말로 로봇이나 기계라는 소리는 아니었다. 남들보다 덜 예민하고 더 둔감할 뿐이지 상처를 받지 않는 것은 아니었다. 지금 이 순간 우시지마는 분명 상처받았다. 그리고 그 미묘하게 일그러진 얼굴을 본 오이카와 역시 덩달아 무너지고 말았다.


 당연하게도 우시지마에게 화를 낼 문제는 아니었다. 오이카와가 정말 화를 느끼고 답답해한 것은 그가 아니라 자기 자신이었다. 아무렇지 않은 척 했지만 풍선만큼 부풀어 올라 있던 것을 우시지마가 살짝 찔렀을 뿐이었다. 거대한 폭발음과 함께 터져 나온 온갖 것들이 오이카와의 발아래에서 질척거렸다. 오이카와는 깊게 숨을 들이마셨다. 내뱉을 때마다 새까맣게 탄 잿더미가 가라앉는 느낌이 들었다.


 감정을 폭발시킨 뒤 몰려오는 것은 자신에 대한 경멸과 혐오였다. 스스로가 이토록 한심하게 느껴지는 일도 드물었다. 이제는 웃음조차 새어나오지 않았다. 오이카와는 그저 입술을 꽉 깨문채 머리칼을 엉망으로 헤집을 뿐이었다. 소리 없이 나간 우시지마의 등이 벌써부터 희미했다.


 마냥 좋아하지도, 그저 싫어하지도 못하고 한없이 아등바등하는 스스로가 한심했다. 누구보다도 그 사실을 잘 알고 있으면서도 바꿀 수 없다는 점이 더욱 절망스러웠다. 미운데 사랑스러워. 벅차오를 정도로 산뜻한 감정이 가득하다가도 순식간에 우울하고 답답한 것으로 바뀌어버렸다. 말 그대로 애증이었다. 사랑과 증오가 따로 노는 것이 아니라 뭉뚱그려 섞여 있는 상태라 더욱 복잡했다. 오이카와는 우시지마를 가득 끌어안고 싶었지만 종종 그의 목을 졸라버리고 싶은 충동을 느꼈다. 그리고 오이카와는 그런 자기 자신이 제일 싫었다.


 한 번 넘어가버린 선은 어떻게 해도 되돌릴 수 없는 법이다. 오이카와가 잔뜩 화를 냈던 그 날 이후로 많은 것이 달라졌다. 겉으로 보았을 땐 평소와 같은 나날이었지만 속은 분명히 달랐다. 오이카와는 자신이 언제고 다시 또 이럴 수 있다는 것을 확신했다. 우시지마 역시 느끼고 있었다. 설령 그 이유에 대해 확실히 알 수는 없다 할지라도.


 오이카와가 이별을 결심하게 된 것도 그즈음부터였다. 그러나 막연히 조만간 끝이 오겠구나 싶었던 마음이 확신이 된 것은 평소처럼 우시지마와 관계를 맺고 난 뒤였다. 그 날 오이카와는 이 관계엔 이별이 꼭 필요하다고 확신했다. 그가 마음에 들지 않아서라거나 이런 관계가 만족스럽지 않아서, 그런 이유는 아니었다. 문제는 오이카와 스스로에게 있었다. 오이카와는 우시지마를 좋아했고, 그래서 그와 접촉하고 싶은 욕망이 일었지만 순수하게 그 감정만이 전부는 아니었다.


 오이카와는 우시지마가 제 아래에서 흔들리는 모습을 좋아했다. 특히 우시지마가 쾌감에 못 이겨 숨을 헐떡거리며 오이카와의 이름을 불러올 때면 그 만족감에 온 몸이 잘게 떨릴 정도였다. 오이카와는 글썽거리는 우시지마의 눈가에 부드럽게 입을 맞추었다. 애를 태우는 것처럼 입술 바로 위를 스치며 간지럽히다가, 그가 참지 못하고 제 등을 끌어안으면 상을 주듯 깊게 키스했다. “우시와카쨩.” 낮게 이름을 부르면 엉망이 된 얼굴로도 피하지 않고 제 눈을 똑바로 마주하는 것이 못내 사랑스러운 순간이었다.


 절정이 다가올 때면 우시지마는 답지 않게 정신을 못 차리고 마구 흔들렸다. 이런 쪽의 쾌감에 유독 약한 것인지 어울리지도 않는 덩치를 하고서 파들거리고 울었다. 물론 오이카와는 우시지마의 이런 모습이 상당히 좋았다. 그러나 오이카와가 제 어둡고도 저열한 감정을 깨달은 것 역시 바로 이 순간이었다. 우시지마가 매달리듯 제게 손을 뻗던 바로 그 때, 오이카와는 분명히 미소 짓고 있었다. 오이카와는 생각했다. 지금만큼은 자신이 ‘그’ 우시지마 와카토시보다 우위에 있노라고.


 사정을 하고 난 후에 우시지마가 지쳐 숨을 고르는 동안, 오이카와는 조금 전 잔뜩 흥분했던 자신이 떠올렸던 생각에 경악했다. 굳이 우시지마에게 그때 무슨 생각을 했냐고 물을 것도 없었다. 그 상황에서 그런 생각이나 하는 자신이 이상한 거였다. 몸이 절로 떨릴 정도로 황홀했던 쾌감이 순식간에 사라졌다. 우시지마에게 느끼는 감정은 분명 거짓이 아니었지만 지금처럼 생각하고야마는 것 역시 뚜렷한 진실이었다. 오이카와는 우시지마가 제 아래에 있다는 사실에 흥분했다. 오이카와는 피가 맺힐 정도로 입술을 꽉 깨물었다.


 순수하게 사랑조차 할 수 없다니. 이런 자신과 달리 우시지마는 어떤 거짓이나 망설임 없이 올곧게 자신을 좋아하고 있었다. 다른 사람에게 보이지 않는 부분을 스스럼없이 내보일 정도로. 하지만 자신은? 오이카와는 이런 내면을 우시지마에게조차 보여주지 않았다. 그리고 앞으로도 보여줄 생각이 없었다. 오이카와는 여전히 적당한 가면을 쓰고 우시지마를 상대할 터였다. 하지만 이런 관계가 평범하지 않다는 것쯤은 오이카와도 깨닫고 있었다.


 엉망이 된 상태를 되돌려 놓을 수 없다면, 어떻게 해서도 풀어낼 수 없다면 그냥 쳐버리는 것이 맞았다. 그 편이 양쪽 모두에게 좋은 일이었다.


 오이카와는 제 앞에서 답을 기다리고 있는 우시지마를 보았다. 절로 쓴 웃음이 나왔다. 이별의 이유를 묻는다는 것은 그래도 아직 제 시커먼 속을 모른다는 뜻이니 다행이라고 생각해야 할지도 몰랐다. 하지만 오이카와는 그것이 더 괴로웠다. 오이카와는 그저 늘 그렇듯 웃을 따름이었다.


 “글쎄. 왜일까.”


 오이카와는 마지막까지 우시지마에게 솔직하지 못했다. 우습게도 자신은 그렇게나 상대를 미워하는 주제에 미움 받고 싶지는 않았다. 우시지마는 두 번 묻지 않았다.


 “안녕.”


 지체 없이 오이카와가 몸을 일으켰다. 오이카와는 끝까지 뒤를 돌아보지 않았다. 우시지마가 어떤 얼굴을 했을지 보고 싶지 않아서였다. 끝났네. 불어오는 바람을 맞으며 오이카와는 씁쓸하게 웃었다. 가슴 한쪽이 뻥 뚫린 것처럼 공허했다. 하지만 오이카와는 그 공간을 굳이 채우지는 않기로 했다. 어차피 우시지마 외에는 아무도 메꿀 수 없는 부분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