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D 2.5D NOTICE GUEST

 강렬하지만 매끄럽게 날아간 공이 바닥을 내리쳤다. 우시지마가 거친 숨을 몰아쉬었다. 늘 하는 연습이었지만 오늘따라 배구공이 손에 더 잘 달라붙었다. 한 치의 어긋남 없이 원하는 대로 족족 날아가는 공을 보며 우시지마가 작게 미소지었다. 흘러내리는 땀을 닦으면서도 우시지마는 여전히 기쁜 얼굴이었다. 언뜻 보면 알아차리지 못할 정도로 은은한 미소였지만. 문득 이 웃는다고 말하기조차 민망한 변화를 아주 재빠르게 눈치채곤 하던 한 남자가 떠올랐다. 오이카와 토오루. 우시지마는 그 이름이 오랜만이라고 생각했지만, 동시에 바로 어제 불렀던 것처럼 익숙하게만 느껴졌다.


 평범한 연애였고 평범한 이별이었다. 서로 좋아하는 마음이 통해서 만났고, 시시한 이야기를 나누면서도 웃음이 나오던 날들이 이어졌다. 감정이 벅차오를땐 자연스레 입술을 겹쳤고 종종 데이트다운 시간을 보내기도 했다. 그리고 서로 맞지 않는다는 이유로 헤어졌다. 물론 오이카와는 이유를 말해주지 않았지만 우시지마는 그런 이유일거라고 짐작했다. 틀린 말도 아니었다. 거창한 일이 있던 것도 아니고 남들보다 몇 배로 특별한 일이 있던 것도 아닌 연애였으나 우시지마에게는 매우 중요한 기억이었다. 연애도 이별도 모두 처음이었기에. 그리고 처음은 언제나 뇌리 깊숙히 박히기 마련이었다. 우시지마가 처음 배구공을 만졌던 날을 여직 잊지 못하는 것처럼.


 잊을 수 없다고 해서 언제까지고 그 과거에 붙잡혀 있다는 말은 아니다. 우시지마는 늘 그렇듯 앞으로 성큼성큼 나아갔다. 방향을 틀거나 방황하는 일도 없었다. 그러나 아주 가끔 그 이름이 떠오를 때면 발이 멈추곤 했다. 감정의 종류나 깊이가 다를지라도 분명 오이카와는 따뜻하게 미소지었고, 그 웃음의 끝자락에 서있는 것은 우시지마였다.


 연습을 다 마친 우시지마는 집으로 돌아갈 준비를 했다. 벌써 다 돌아간 뒤라 있는 것은 우시지마 하나 뿐이었다. 시끄럽게 떠들어줄 사람도 없고, 대화를 건넬 사람도 없고, 온 신경을 집중할만한 연습도 끝났으니 생각에 잠기는 것도 당연한 일이었다. 우연찮게 떠오른 오이카와가 오늘의 주인공이었다. 우시지마는 오랜만에 그 이름을 입밖으로 내볼까 하다 그만두었다.


 그가 어떻게 생각할지는 몰랐지만 우시지마는 오이카와에게 배운 것이 많았다. 특히 사람을 대하는 일에 있어선 더욱 그랬다. 이별한 이유 또한 그것이라 생각하면 참 모순적인 일이었다. 그래도 우시지마는 오이카와에게 얻은 것이 많았고, 또 그를 만나서 다행이라고 생각했다. 오이카와 역시 그렇게 생각한다면 좋겠다고도.


 우시지마가 다른 이들과 가볍게 다툰 날이 있었다. 사실 다투었다고 말하기엔 무리가 있었다. 우시지마는 일방적으로 욕설과 비난을 듣기만 했으니까. 우시지마는 그 때 저를 향한 저열한 단어에 화를 내거나 짜증을 내지 않았다. 우시지마는 제가 꺼낸 어떤 말이 상대방을 화나게 했는지 알지 못해 의문에 빠져 있었다. 그리고 우시지마가 그럴 때마다 명쾌하게 답을 내려준 것이 바로 오이카와였다. 물론 우시지마는 오이카와의 설명을 단박에 이해하지 못해 늘 인상을 찌푸리곤 했다.


 “왜 그렇게 어렵게 돌려 말하지?”

 “세상엔 우시와카쨩처럼 단순한 사람만 있는게 아니거든.”


 오이카와는 가볍게 대꾸했다. 딱히 우시지마를 질책하거나 나무라는 어투는 아니었다. 오이카와는 조금 전부터 들고 있는 폰으로 열심히 게임을 하는 중이었으니까. 우시지마는 저보다 살짝 낮은 곳에 위치한 오이카와를 비스듬히 내려다보았다. 수려하면서도 깔끔한 외모와 시시각각 변하는 표정이 인상적인 남자였다. 다소 투박하고 무뚝뚝한 저와는 반대편에 서있다고 해도 틀린 말은 아닐 터였다.


 “오이카와, 너처럼 말인가?”


 우시지마의 말에 오이카와가 발을 멈추었다. 줄곧 바라보고 있던 액정 화면에서 눈을 뗀 오이카와가 고개를 빙글 돌렸다.


 “너무하네. 이 오이카와씨처럼 섬세하면서도 부드러운 남자는 드물다구.”


 장난기 가득한 말투였다. 마치 자랑이라도 하는 것마냥 가슴을 쭉 뺀 모습도 그랬다. 입을 열지는 않았지만 우시지마는 그 말에 동의했다. 어쨌거나 오이카와는 우시지마가 여지껏 만나본 사람 중 가장 어려운 상대였다. 그럼에도 계속 곁에 있고 싶어하는 이 마음이야말로 사람들이 흔히 말하는 그 낯간지러운 감정일거라고 우시지마는 확신했다.


 하던 게임엔 흥미가 떨어졌는지 오이카와가 폰을 집어넣었다. 애인을 옆에 두고 계속 게임이나 하는 것도 못할 짓이기는 했다. 오이카와는 가볍게 주먹을 쥐고 걷고 있는 우시지마의 손을 흘깃 보았다. 덩치도 커다란 남자 둘이 손을 잡고 걷는 그림은 상상만으로도 우스웠지만 그리 나쁘기만 한 것은 아니었다. 오이카와는 눈치를 보다 우시지마의 손을 잡았다. 당연히 맞잡은 손은 두터웠고 그만큼 단단했다. 우시지마는 오이카와의 바람과 달리 손을 잡아오는 대신 고개를 기울였다.


 “추운가?”


 당연하게도 순수한 물음이었다. 이런 일이 한두 번이 아니다보니 한숨보다 웃음이 먼저 새어나왔다. 날은 풀린지 오래였고 이제는 꽃도 저마다 제 아름다움을 과시하는 중이었다. 부드러운 봄바람마저 불지 않은 그런 저녁이었다.


 “…우시와카쨩은 아마 라면 먹고 갈래? 라는 말이 무슨 뜻인지도 평생 모를 거야.”


 그 말을 바로 입증이라도 하는 것처럼 우시지마가 미간을 좁혔다. 굳이 물어보지 않아도 그 속뜻을 모르는 것이 분명했다. 놀리듯 툭 던진 말이 바로 사실이 되니 이제는 재미까지 느껴졌다. 오이카와는 여전히 영문을 알지 못하는 우시지마를 가만히 내버려두고 대신 손을 단단히 잡아 왔다.


 “음, 정말 너무 추워서 손이라도 잡아야 할 것 같은걸.”


 넉살 좋게 말하며 오이카와가 잡은 손을 앞뒤로 붕붕 흔들었다. 우시지마는 그 손을 뿌리치지 않고 가만히 있었다. 이유가 무엇이건 우시지마 역시 오이카와의 손을 잡은 것이 싫지는 않았다. 따지자면 좋은 쪽에 가까웠다.


 말없이 걸으며 우시지마는 속으로 무수히 많은 생각을 했다. 정확히는 하려고 노력했다. 오이카와는 분명 이 상황을 재미있어하고 있었지만, 그건 제가 정답을 맞추었기 때문이 아니었다. 오히려 평소처럼 조금은 엇나간 말을 한 것이 틀림없었다. 그럴 때마다 우시지마는 나름대로 노력했다. 입술을 꾹 다물고 머릿속으로 혼자 열심히 고민하면서.


 서로 이해하지 못하고 어긋나는 경우는 종종 있었다. 때로는 가벼운 일이었고, 때로는 그보다 더 진중한 일이었지만 아직까지는 서로 감정이 상할 정도로 무겁지 않았다. 그래도 우시지마는 노력했다. 제 기준으로는 전혀 이해할 수 없던 부분을 일부러 다시 한 번 생각하고 곱씹어보면서 상대방의 감정이나 상황을 짜맞추며 그럴듯한 답을 찾았다. 설령 이상한 결론이 나거나 아예 답이 나오지 않는다 할지라도 일단은 그런 시도를 하는 것 자체가 우시지마에겐 큰 변화였다. 지금까지는 가장 단순하게 답을 내리곤 되짚어보지도 않았으니까.


 당연히 우시지마는 이러한 노력을 겉으로 티내거나 말하지 않았지만 오이카와는 어느 순간부터 자연히 이 귀엽기 짝이 없는 노력을 눈치채고 있었다. 말을 하지 않은 것은 순전히 그런 우시지마가 사랑스럽기 때문이었다. 조금만 돌려말해도 그 속뜻을 제대로 파악하지 못하면서, 그러면서도 눈을 잔뜩 찌푸리고 오이카와가 원하는 답을 찾기 위해 고민하는 모습이 귀여웠다. 가끔 그런 우시지마를 꼭 끌어안고 싶어 견딜 수 없어지는 경우가 생기기도 했다. 오이카와는 망설이지 않고 그렇게 했다.


 뜬금없이 저를 가득 끌어안는 오이카와를 보며 우시지마는 늘 그렇듯 눈을 느리게 깜빡였다. 그건 우시지마가 상황을 파악하고 있다는 증거였다. 빤히 얼굴만 바라보던 오이카와가 대뜸 포옹을 해왔으니 우시지마로선 그 이유를 알 수 없는 것도 당연했다. 그래도 우시지마는 당연하다는듯 오이카와의 등 뒤로 양 팔을 둘렀다. 오이카와는 기분 좋은 듯 웃고 있었지만 여전히 말이 없었다. 우시지마는 조금 더 생각하다가 이내 중얼거렸다. “나도 좋아한다, 오이카와.” 오이카와는 어울리지도 않게 귀엽게 구는 상대를 조금 더 강하게 고쳐안았다. “나 아직 아무 말도 안했는데.” 나즈막한 중얼거림은 우시지마의 품에 파묻혔다.


 그런 일들을 겪으며 우시지마는 나름대로 성장하고 있었다. 이번에도 제 안의 답을 찾은 우시지마가 우뚝 멈추어 섰다. 당연히 손을 잡고 있던 오이카와 역시 덩달아 발을 멈추었다.


 “오이카와.”

 “응?”

 “…라면 먹고 가겠나?”


 무뚝뚝한 얼굴로 말하는 것이 우스워 오이카와가 한 박자 느리게 웃음을 터뜨렸다. 표정하고 내용이 안 어울리잖아! 오이카와가 시원하게 웃는 이유를 알지 못하는 우시지마는 그저 멀뚱히 서있을 뿐이었다. 그의 눈썹이 미세하게 찌푸려지는 것을 보며 오이카와는 배를 움켜잡았다. 근래 들어서 더 자주 생각하는 거지만 오이카와는 눈앞의 우시지마가 정말로 귀엽다고 느꼈다.


 “집에서 라면도 먹고 그래?”

 “……근처에 편의점이 있다.”

 “아하하하!”


 이어지는 대꾸에 오이카와는 또 호쾌하게 웃고 말았다. 너무 웃어서 눈가에 눈물이 찔끔 맺힐 정도였다. 우시지마는 이마에 주름이 생길 정도로 얼굴을 찡그린 채 오이카와가 웃음을 멈추길 기다렸다.


 “후아, 너무 웃었다… 그래, 우시와카쨩이 초대하는 거니까 거절하진 않을게.”


 말하면서도 자꾸 웃음이 새어나오는지 오이카와의 어깨가 들썩거렸다. 오이카와는 그런 자신을 마음에 들지 않는다는 듯 쳐다보는 우시지마의 손을 다시 한 번 강하게 쥐었다.


 왜 갑자기 오이카와의 일을 떠올렸을까. 우시지마는 그 때와 같은 거리를, 그 때와 달리 혼자 걸으며 조용히 생각했다. 처음 걷는 길도 아니었다. 오이카와를 만나기 전은 물론이고 그와 만났을 때에도, 헤어지고 난 후에도 몇 백 번이나 오고가던 길이었다. 집으로 가는 길은 인적이 드물었고 구경할만한 것이 존재하지도 않았다. 그러나 말없이 걷던 우시지마는 바로 이곳에서 걸음을 멈추고 말았다. 달라지는 것조차 느낄 수 없을 정도로 익숙한 풍경에 낯설면서도 그리운 인영 하나가 섞여있었기 때문이었다.


 “안녕.”


 아무렇지도 않게 웃고 있는 오이카와가 그곳에 있었다. 추운지 목도리를 칭칭 동여매고서도 코를 훌쩍이는 채였다. 우시지마는 멍하니 서서 그런 오이카와를 바라보았다. 인사를 건넸음에도 우시지마가 말이 없자 오이카와가 다시 한 번 말을 꺼냈다.


 “내가 보러 온 게 이상해?”

 “…아니다.”

 “모를 수도 있겠지만 나 아직도 배구 하거든.”

 “알고 있다.”


 우시지마는 틈 없이 바로 답했다. 오이카와가 대학에 가서도 여전히 배구를 하고 있다는 사실을 우시지마는 처음부터 알고 있었다. 오이카와가 언급이 되는 기사나 인터뷰를 빼놓지 않았으니 당연한 일이었다. 오이카와는 눈을 동그랗게 떴다가 곧 배시시 웃어보였다. 전과 달리 조금은 편안하면서도 장난기 넘치는 얼굴이었다.


 “사실 그럴 것 같았어.”


 우시지마는 말이 없었다. 차가운 바람이 둘 사이를 스치고 지나갔다. 오이카와가 추위에 몸을 웅크리며 입술을 비죽 내밀었다.


 “이 상황에서는 뭘 믿고 그렇게 자만하냐고 타박을 줘야 하는 거야, 우시와카쨩.”


 장난스러운 말에 우시지마가 짧게 고민했다. 그럴싸한 답을 찾느라 생각에 잠긴 우시지마의 얼굴을 보며 오이카와는 어쩔 수 없다는 듯 웃었다. 많이 달라졌지만 한편으로는 또 그대로였다. 오이카와는 우시지마 앞으로 한 발 다가섰다. 우시지마는 여전히 답을 찾지 못한 채였다. 입술을 꾹 다문 우시지마를 보며 오이카와가 부드럽게 말했다.


 “농담이야. 그렇게 고민 안해도 돼.”

 “…오이카와.”

 “우시와카쨩이 느낀대로 솔직하게 말하면, 그게 정답이야.”


 그렇다면 고민할 것도 없었다. 우시지마는 오이카와를 똑바로 바라보며 답했다.


 “보고 싶었다.”


 예상한 답이었음에도 오이카와는 조금 놀란 표정을 지었다가, 이내 밝게 웃음을 터뜨렸다. 시원하게 터져나오는 웃음에 우시지마가 역으로 당황했을 정도였다.


 “역시 거침없네, 우시와카쨩은.”


 우시지마는 아직 오이카와와 연애를 하고 있을 무렵 겪었던 수많은 일들을 생각했다. 비단 그 시간이 아니더라도 우시지마는 의도와 달리 타인에게 상처를 주거나 심기를 건드리는 일이 잦았다. 아무렇지 않았던 그 모든 것들이 조금씩 신경쓰이게 된 것도 모두 오이카와를 만나면서부터였다. 저와 달리 오이카와는 세심하면서도 예민한 타입이었으니까. 우시지마에겐 오이카와가 너무 어려웠다. 그래서 우시지마는 이번에도 걱정이 됐다. 그러나 돌아오는 답은 산뜻할 정도로 발랄했다.


 “그래서 좋아.”


 이번에 우시지마는 제가 고백했던 날을 떠올렸다. 시작은 제가 먼저였다. 평소처럼 지나가는 오이카와를 붙잡고, 대뜸 마음을 고백했다. 우시지마로서는 많이 생각하고 한 말이었다. 그 장소나 타이밍이 다소 생뚱맞았을 뿐이었다. 오이카와는 무척 놀란 얼굴이었다. 몇 번이고 진짜냐고 되물었고, 우시지마는 조금 뜸을 들이면서도 그렇다고 확답했다. 별로 오이카와에게서 좋은 답이 올거라 기대하고 한 말은 아니었다. 그저 우시지마는 내가 느끼거나 생각한 것을 솔직하게 표현하는 법 외에는 잘 알지 못했다. 자신이 오이카와를 좋아하고 있다고 결론을 내렸고, 얼마 후에 바로 오이카와를 만났다. 그래서 마음을 전달했을 뿐이었다. 의미심장하게 변하는 오이카와의 얼굴을 보고 우시지마는 자신이 오이카와를 정말로 좋아하고 있다고 재차 결론을 내렸다. 그렇지 않고서야 고작 이런 일에 이렇게 심장이 조여올 수가 없는 일이었다. 오이카와는 어정쩡하게 답했다. “나도 그런 것 같은데, 그럼 우리 사귈까?” 적극적이었으나 명쾌한 표현은 아니었다. 하지만 그것으로 좋았다. 우시지마는 고민도 하지 않고 고개를 끄덕였다. 오히려 먼저 말을 꺼낸 오이카와가 당황해서 다시 물어왔다. 우시지마의 답은 한결같았다.


 그런 일이 있고 나서, 정식으로 교제하는 사이가 되고 적극적으로 굴었던 것은 늘 오이카와 쪽이었다. 우시지마가 먼저 앞서 나간 것은 처음 고백했던 그 순간 뿐이었다. 오이카와는 좋아한다는 말을 자주 내뱉곤 했으나 그 어투가 가볍다는 것을 모를 정도로 우시지마 역시 어리숙한 인물은 아니었다. 그러나 가볍다고는 해도 모두 진심이었다. 적어도 우시지마는 그렇게 느꼈다. 그래서 괜찮다고 생각했다. 그 입에서 나오는 좋아한다는 표현 외에도 제 손을 잡아오는 손길이나 부드러운 입맞춤 따위에서 비슷한 감정을 느낄 수 있었으니까.


 하지만, 그래도 역시 좋아한다는 말이 듣고 싶었던 모양이었다. 이번에도 어투는 가벼워보였지만 전과는 다른 무게가 있었다. 우시지마는 그것이 무엇인지 알지 못했다. 잘 설명할 수도 없었고, 말로 표현하기도 힘들었다. 그래도 막연히 느껴지는 것은 있었다. 오이카와가 이전과는 다르다는 것을.


 “아직 밥 안 먹었지? 먹었어도 아니라고 해줘. 그래야 우리가 같이 먹으러 갈 수 있으니까. 음, 여기서라면 거기가 좋으려나….”

 “오이카와.”

 “응?”


 그 날처럼 또 다짜고짜 터뜨리는게 아닌가 싶기도 했지만, 원래 우시지마는 이런 사람이었다. 조금 전에 오이카와가 분명 솔직하게 말하라고까지 했으니 망설일 것도 없었다.


 “나도 네가 좋다.”


 오이카와가 눈을 크게 떴다. 그러나 입가엔 분명 미소가 걸려있었다. 조금은 기쁘면서도 어쩔 수 없다는 듯 웃고 있었다.


 “나 이번에도 아직 아무 말 안했는데.”


 오이카와는 우시지마에게 손을 내밀었다. 추위에 발개진 손을 물끄러미 보다 우시지마가 그 손을 잡았다. 오이카와는 어깨를 으쓱하며 단단히 깍지를 껴왔다. 손바닥 너머로 느껴지는 손은 여전히 단단했고, 꼭 그만큼 따뜻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