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D 2.5D NOTICE GUEST

 히비키 와타루는 긴장하지 않았다. 그렇다고 생각했다. 멈추지 않는 시간 속에서 무수히 많은 일을 겪은 와타루가 이 정도 일에 긴장할 리가 없었다. 더군다나 처음 경험하는 것도 아니었다. 와타루는 사람들을 만나고 대하는 일에 제법 능숙했다. 상대가 원하는 것을 귀신같이 알아맞히고 그에 걸맞은 모습을 보여주는 일 쯤은 어려운 것도 아니었다. 오랜 세월 속에서 습득한 재주였고, 어느 정도는 자부심마저 갖고 있었다. 와타루는 자신감에 가득 찬 미소와 함께 당당히 걸어나갔다.


 반면 마시로 토모야는 잔뜩 긴장하고 있었다. 뻣뻣하게 굳은 몸이 애처로울 정도였다. 와타루와 함께 걸으며 토모야는 쇼윈도우에 비치는 자신을 흘끗 바라보았다. 나름 차려입는다고 입었는데 맞지 않는 옷을 입은 듯 영 어색했다. 열심히 다듬었던 머리도 평소와 다를 것 하나 없어 보였다. 괜히 힘만 뺀 것 같아 시무룩해진 토모야의 손을 와타루가 불쑥 잡아 왔다. 잡는 것에서 그치지 않고 아예 제 쪽으로 훅 끌어당기기까지 했다.


 “오늘 길거리 공연이 있다는 소식을 미리 알아두었죠!”

 “이, 이 근처에서요?”

 “물론입니다.”


 어버버거리며 토모야는 와타루에게 질질 끌려갔다. 와타루가 말한 대로 멀지 않은 곳에 세트장이 설치돼 있었다. 깜짝 마술이라도 하는지 여러 장비가 근처에 쌓여 있었다. 호기심이 생긴 사람들이 삼삼오오 모여 자리를 잡는 중이었다.


 “보려구요?”

 “그럼 왜 여길 찾았다고 생각합니까?”


 당연히 예상했던 일은 아니었다. 뭐라 말을 하려던 토모야는 이내 체념하고 와타루에게 제 손을 맡겼다. 와타루와 함께 있으면서 일이 예상한대로 굴러간 적이 몇 번이나 있나 싶었다. 아마 한 번도 없던 것 같다. 그리 생각하니 어쩌다 이런 괴이한 사람을 좋아하게 된 걸까 하는 마음이 일어 토모야는 살짝 웃고 말았다. 변태 가면이 너무 싫어서 연극부를 나가야겠다고 생각한 적도 몇 번이나 있었는데. 토모야는 지나간 감정을 떠올리며 와타루와 함께 자리를 잡았다.


 곧 시작된 길거리 공연은 재밌었다. 하지만 특별할 것은 없었다. 솔직히 토모야는 이런 것보다 바로 옆에 있는 히비키 와타루의 ‘평범한’ 일상 쪽이 더 재밌는 공연이 되지 않을까 생각했다. 그런 생각이나 하고 있을 즈음, 와타루가 어디서 사왔는지 솜사탕을 불쑥 내밀었다.


 “이런 건 또 어디서 났어요?”

 “자고로 공연엔 맛있는 음식이 함께하는 법이죠.”


 보기만 해도 달착지근한 솜사탕을 손에 쥐고 토모야는 어색하게 웃었다. 좋아하지는 않았지만 오랜만에 먹는 만큼 제법 맛있었다. 와타루가 사온 것은 달랑 한 개 뿐이었다. 같이 먹으면 좋을텐데. 손을 잡아 죽 찢으면 달큰한 가루가 손가락에 묻어날 것 같았다. 토모야는 그러는 대신 와타루 쪽을 향해 베어 물지 않은 쪽을 내밀었다. 그러나 와타루의 시선은 여전히 바쁘게 움직이는 사람들에게로 콕 박혀 있었다.


 “부장도 좀 먹어요.”

 “……아뇨, 전 괜찮습니다.”


 와타루는 토모야를 쳐다보지도 않고 대꾸했다. 도대체 무슨 생각을 하고 있는거지. 토모야는 와타루의 시선을 따라 공연 쪽에 눈길을 던졌지만 딱히 특이한 점은 보이지 않았다. 결국 토모야는 혼자서 커다란 솜사탕을 다 먹어치웠다. 따로 몰티슈 같은 건 준비하지 않았는지 입가며 손끝에 묻은 진득한 가루가 신경 쓰여 토모야는 더 집중할 수가 없었다.


 처음 하는 데이트였다. 와타루가 자각하고 있는지는 의심스러웠지만 어쨌거나 토모야에겐 기념할만한 날이었다. 우연찮게 동선이 겹치면서 몇 번 만난 적은 있었어도 이렇게 단 둘이 만나자고 약속을 잡은 일은 처음이었으니까. 더군다나 바로 얼마 전부터 토모야는 와타루와 정식으로 교제하는 사이가 되었다. 애인이라는 단어를 조심히 떠올렸다가, 토모야는 낯간지러운 나머지 황급히 그 단어를 혀 아래로 꾹꾹 눌러삼켰다. 아직까지도 와타루를 칭하는 말은 ‘부장’이었다. 그 호칭이 입에 익어서일수도 있었고, 그저 부끄러워 그런 것일수도 있었다. 와타루는 그다지 신경쓰는 것 같지 않아보였다. 그래도 둘 사이의 관계가 이전과 달라진 것은 확실했다.


 이 사람, 그걸 인지하고는 있는 걸까. 토모야는 즐거워 보이는 와타루를 훔쳐 보며 작게 고개를 저었다. 와타루는 정말이지 평소와 똑같아 보였다. 오히려 평소보다 더 시끄럽고, 활기차고, 생기가 넘쳤다. 아침에 만났을 때부터 쉬지 않고 자꾸 움직이는 통에 토모야는 벌써부터 진이 빠질 지경이었다. 토모야는 와타루가 들리지 않게 작은 한숨을 뱉었다. 싫은 것은 아니다. 와타루가 어떤 사람인지는 그의 곁에 있으면서 지겹도록 알아왔으니까. 다만 토모야가 따라가기에 와타루는 다소 벅찬 감이 있었다. 오늘이 꼭 그 날인 것 같았다. 토모야가 말이 없자 와타루가 고개를 돌려 토모야를 내려다보았다. 토모야가 얼른 말했다.


 “손 좀 씻고 싶다고요!”


 와타루의 답을 듣지 않은 채 토모야가 먼저 발을 옮겼다. 이렇게라도 하지 않으면 따라오지 않을 것 같아서였다. 와타루는 별 말 없이 토모야와 같이 걸었다. 이번에는 먼저 손을 잡아보고 싶었는데. 토모야는 나중에 그렇게 해야겠다고 다짐하며 가까운 공원 화장실에 들렀다.


 “아, 지쳤다…….”


 피곤한 얼굴로 손을 씻고 나온 토모야가 벤치에 털썩 주저 앉자 옆 카페에라도 다녀왔는지 와타루가 시원한 음료를 건넸다. 와중에도 토모야는 고맙다는 인사를 빼놓지 않았다. 토모야는 단숨에 그것을 들이켰다.


 “벌써 지쳤나요?”

 “전 부장처럼 체력이 넘쳐나는 기인이 아니라고요.”

 “그렇습니까?”


 체력마저도 평범하기 그지 없다느니, 조금 더 강인해지는 것이 어떻겠냐고 말할 줄 알았던 와타루는 의외로 대꾸가 없었다. 토모야가 의아한 듯 와타루를 바라보았다. 그를 알고 지낸 기간이 길지는 않았다. 잘 알고 있다고 말하기도 힘들었다. 예측할 수 없는 기이함을 넘어서, 토모야는 아직 와타루가 어려웠다. 불편하거나 꺼려진다는 뜻이 아니라 종 잡을 수 없는 부분이 많다는 의미였다. 와타루를 이해하기에 토모야는 아직 작고 어렸다. 어쩌면 아주 까마득히.


 토모야가 히비키 와타루라는 인물에 대해 완벽히 알고 있는 것은 아니었지만, 그렇다고 아무것도 모르는 것도 아니었다. 와타루는 본 적 없는 얼굴을 하고 있었다. 물론 이 모습조차 정교하게 꾸며진 것일 수 있겠으나 토모야는 아니라고 확신했다. 와타루에게선 본 적 없었어도 토모야는 이런 얼굴을 잘 알고 있었다. 답장이 아주 오랫동안 오지 않을 때, 칭찬을 바랐던 상대에게서 기운 빠지는 대답이 나왔을 때, 아무리 힘써서 노력해도 그 머리카락 끝 하나 잡기 힘들다고 생각될 때 자신이 이런 표정을 하고 있었으니까. 그렇다면 결론은 하나였다. 와타루는 지금 슬픈 것이다.


 “부장, 무슨 일이라도….”

 “토모야군.”

 “네?”

 “오늘 즐거웠습니까?”


 대뜸 튀어나온 질문에 토모야가 눈을 깜빡였다. 약속 시간보다도 이르게 가고 있던 토모야의 뒤에서 와타루가 불쑥 나타난 것부터 시작해서 하루종일 깜짝깜짝 놀라기만 했지만, 즐거웠냐고 물으면 즐거웠다. 다짜고짜 쇼핑을 하자면서 토모야가 따라잡기 힘들 정도로 매장 안을 휘젓고 다니던 거나, 메뉴조차 읽을 수 없는 이상한 식당에 들어가 식사한 것도 모두 그랬다. 정신없이 오가는 사람들 틈바구니에서 토모야가 조금 쉬자고 말하려 하면 와타루는 또 어딜 갔는지 보이지 않다가 토모야가 의자에 앉으려는 순간 툭 튀어나와 심장을 벌렁거리게 만들었다. 어김없이 와타루의 손에는 처음 보는 이상한 것들이 주렁주렁 들려 있었다. 지루할 틈 없는 하루였다.


 하지만 제가 생각한 것과 다른 하루이기는 했다. 끌고다니면서도 쌩쌩한 와타루와 달리 토모야는 금방 지쳤으니까. 그리고 토모야는 솔직한 마음을 에둘러 표현하는 일이 서툴렀다. 가끔 그런 말이 타인을 상처입힌다는 점을 알면서도 무심코 거르지 못한 말이 툭 튀어나가는 것이었다. 이번에도 토모야가 미처 문장을 다듬기 전에 생각이 그대로 흘러나왔다.


 “그런 걸 따질 겨를이 없을 정도로 정신이 없기는 했는데….”

 “역시 그렇군요.”


 토모야의 예상대로 와타루의 얼굴에 울적한 기색이 스며들었다. 늘 반겨주던 사람들이 더 이상 자신을 반겨주지 않을 때의 감정을 와타루는 아주 잘 알고 있었다. 그것은 뇌리에, 마음에, 더 나아가 세포 하나하나에 박혀 절대로 사라지지 않는 감각이었다. 발 아래로 깊은 어둠이 서서히 번져나가고 그 안에 갇힌 것만 같은 느낌. 시시하거나 지루하다는 말이 와타루에겐 비수와도 같았다. 더 이상 박수 갈채를 받을 수 없는 삶이라면 그대로 끝나버리는 편이 나을지도 몰랐다. 그렇게 생각한 적도 더러 있었다.


 그것도 가장 사랑하는 상대가 그렇게 생각한다니, 함께 있는 것을 더 이상 즐거워하지 않는다니, 이보다 비참한 일이 있을까.


 와타루는 스스로가 옅어지고 있다고 생각했다. 이제 더 이상 다른 사람을 즐겁게 해줄 수 없다면, 호응을 불러 낼 수 없다면, 사랑받을 수 없다면 그대로 사라지고 말 것이라고. 사랑 받지 못하는 것이 와타루에겐 최악이자 최고의 고통이었다. 오랜 끝에 정착한 것이 유메노사키 학원이고, 연극부고, 아이돌이라는 것도 어쩌면 그런 마음에서 나온 결과일지도 몰랐다. 그럼에도 환희에 가득 찼던 계절이 지나가고 와타루는 겨울을 맞았다. 끝이 다가오고 있는 게 틀림 없었다.


 토모야는 의아한 얼굴로 와타루를 바라보고 있었다. 작은 소년의 오늘이 꼭 저만큼 행복하기를 바랐다. 실은 어젯밤부터 약속 장소에 갈 기대로 허공에 레드 카펫을 깔아놨다는 것도, 무대를 공연하듯 좋아하고 기뻐할만한 것을 하나하나 조정했다는 것도, 놀랍게도 그 히비키 와타루가 할 말이 떠오르지 않아 입을 다물고 있었다는 것도, 그 무엇도 말하지 않았지만 그랬다.


 “전 지금 겨울에 서있답니다. 이제는 가랑눈처럼 사라지는 일만 남았죠.”

 “지금은 4월인데요?”


 토모야가 어이 없다는 듯 반문했다. 와타루는 종종 이런 의미 모를 말을 했다. 토모야가 정확히 무슨 뜻이냐고 물어보아도 얼버무리거나 알쏭달쏭한 말로 진심을 가리기 일쑤였다. 그런 일이 반복되자 이제는 토모야도 어느 정도 와타루를 짐작할 수 있게 되었다. 그저 추측에 불과했지만 어쩌면 와타루는 스스로에게 자신이 없는 것일지도 몰랐다. 정확히는 언제든 뒤안길로 사라질 준비를 하고 있는 것처럼 보였다. 아무도 자신을 원하지 않는다면, 미련없이 곧바로.


 어처구니 없는 혼자만의 생각일지 몰랐다. 토모야는 차라리 그 편이 더 낫다고 보았다. 진짜로 떠난다고 생각하면 가슴이 아프니까. 하지만 정말로 그런거라면 토모야는 망설임없이 와타루를 붙잡을 생각이었다. 이기적이라고 말해도 좋았다. 그래도 지난 번 토모야가 와타루를 향해 당당히 말했듯, 토모야는 와타루를 놓고 싶지 않았다.


 “지쳤다고는 했지만 오늘이 별로라고는 안했는데. 힘들어도 꽤 재밌었어요.”


 분명 토모야는 오늘 여러 번 웃음을 터뜨렸다. 모두 진심에서 우러나온 미소였다. 따라가기 힘들다고 해서 그를 놓아버릴 생각인 것은 아니었다. 토모야는 와타루가 다시 반박을 하기 전에 재빨리 말을 이어붙였다.


 “하지만 다음부터는 이렇게 무리하지 않아도 괜찮아요. 아니, 우선은 내가 따라가기 벅차고 힘들다고.”


 마지막 투덜거림은 가벼운 진심이었다. 토모야는 말 없이 서있는 와타루를 보며 활짝 웃었다. 그를 좋아하고는 있지만 이렇게 마주 보고 가감없이 웃어준 적은 거의 없는 것 같았다. 스스로도 어색하게 느낄 정도니 분명 그랬다. 토모야는 손을 뻗어 와타루의 손을 잡았다. 역시 손을 씻어서 다행이라고 생각했다.


 “전 그냥 부장하고…… 같이 있으면, 그걸로 되니까.”


 아주 작은 목소리로 토모야가 중얼거렸다. 오늘처럼 여기저기 돌아다니지 않아도 좋았다. 아무것도 준비하지 않아도 좋았다. 동시에 처음 보는 맛난 음식을 먹는 것도, 지루한 영화를 보는 것도, 우스꽝스러운 대화를 나누는 것도 모두 좋을 터였다. 어떤 일을 하는지는 별로 중요하지 않았다. 데이트란 그런 것이고, 좋아하는 사람이란 그런 거라고 토모야는 생각했으니까.


 “잠깐 있어봐요.”


 토모야는 얼음이 녹아 밍밍해진 음료를 버렸다. 그리고 바로 옆에 있던 카페에서 시원한 음료를 하나 주문했다. 제가 마시는 대신 토모야는 그것을 와타루의 손에 쥐어주었다.


 “이거나 마시고 입 다물라는 소립니까?”

 “그럴리가… 아니, 뭐, 가끔은 그래주었으면 싶기도 하지만 지금은 아니고요. 녹아버릴 것 같다며요.”

 “그래서 제게…… 이런 조막만한 얼음을?”

 “……없는 것보단 낫잖아요!”


 스스로 생각하기에도 좀 부끄러운지 토모야가 얼굴을 확 붉히며 소리쳤다. 토모야는 배가 고프니 이른 저녁이나 먹자며 먼저 걸어나갔다. 와타루를 쳐다보기가 민망했다. 그래도 해야 할 말은 꼭 해야 하는 성정이라, 토모야는 중얼거리듯 말했다.


 “그리고 겨울 지나면 다시 봄이 오거든요.”


 마침 바람이 불었다. 길거리에 흐드러지게 피었던 분홍 꽃잎들이 팔랑팔랑 아래로 떨어졌다. 와타루가 들고 있던 음료 안에도 살포시 내려앉았다. 떨어지는 것 중엔 모습이 완전한 것도 더러 있었다. 와타루는 그 중 하나를 용케도 집어 들었다. 와타루는 토모야를 향해 그 손을 뻗어 보였다. 쥐고 있는 꽃에 가려진 토모야의 얼굴이 꼭 꽃처럼 보였다.


 “그렇군요. 벌써 꽃이 피었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