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D 2.5D NOTICE GUEST

 다급하게 입술이 부딪혔다. 입술을 가르고 따뜻한 혀가 들어왔다. 스티브가 먼저 버키의 어깨를 붙잡으며 그를 제 쪽으로 잡아당겼다. 중심이 뒤로 넘어가있는 터라 자연히 스티브의 몸이 뒤로 기울었다. 뒤가 침대라 어차피 아프지 않으리란 점을 알면서도, 버키는 능숙하게 스티브의 뒷머리를 감쌌다. 스티브는 누운 상태에서도 여전히 버키의 입술을 물고 놓지 않았다. 버키라고 떨어지고 싶은 것은 아니었다.


 아직 덜 자랐던 그 옛날에도 이런 식으로 급하게 서로를 탐한 적은 없었다. 그런 생각을 하니 저도 모르게 웃음이 새어나왔다. 스티브가 입술 사이로 바람 빠지는 소리를 내자 버키가 코끝이 맞닿은 채 투덜거렸다.


 “뭘 그렇게 웃어.”

 “예전보다 많이 서툴러진 것 같아서.”


 스티브가 장난스럽게 웃었다. 흥, 버키는 스티브의 옷 아래로 손을 집어넣으며 빈정거렸다.


 “그 사이 넌 몇 번 해본 것처럼 말하네.”


 그리고 스티브가 애매한 얼굴을 했다. 그 잠깐의 침묵에 오히려 버키가 당황했다. 짐짓 놀란 듯 눈썹을 치켜 뜬 버키가 퉁명스럽게 말했다.


 “캡틴 아메리카의 임무가 그런 거였나?”

 “음… 따지자면 그렇지.”

 “뭐?”

 “사람들 사이에 숨기 위해 그랬던 거야.”


 버키의 머리가 빠르게 돌아갔다. 물론 버키의 손은 조금 전부터 쉬지 않고 움직이고 있었다.


 “이런 위장을 네가 생각했을 리는 없고. 도대체 어떤 놈이 그런 걸 알려줬어?”

 “정확히는 놈이 아니지만.”


 빠른 대답에 버키의 표정이 미묘하게 굳었다. 남자가 아니라 여자라니 괜찮은 건지 더 나쁜 건지 모르겠다. 버키의 얼굴에 스티브가 쿡쿡거리고 작게 웃었다.


 “뭘 좋다고 웃어.”

 “간지러워서 그래. 버키, 아까부터 자꾸 옆구리만 만지작거리고 있거든?”

 “여기 좋아하잖아.”


 대답하며 버키의 얼굴이 스티브의 옷 속을 파고들었다. 어차피 옷은 거의 가슴께까지 말려올라간 뒤였다. 기억 속의 마르고 앙상했던 몸과는 달리 탄탄한 근육이 잘 짜인 상체에 버키가 연신 입술을 찍었다. 허리와 배 부근을 간질이면 스티브의 몸이 움찔거리고 작게 떨려왔다. 스티브가 유독 이 쪽이 예민한 것은 사실이었다. 버키의 말대로 좋아하기도 했다. 양손으로 만질 수 없는 것이 아쉬워 버키는 입맛만 다셨다. 버키는 그 대신이라도 되는 것처럼 정성스레 입을 맞추었다. 점점 입술을 위로 올려 목덜미에 닿았을 때였다. 버키가 투덜거리듯 말했다.


 “이거 마음 놓고 잠들 수 없겠네.”

 “그럼…….”


 안 해도 돼, 라고 스티브가 재빨리 받아치기 전에 버키가 스티브의 입술을 쪼듯이 찾아들었다.


 “지금 많이 해두고 갈 거야. 그리고 넌 이제 하지 마.”


 아이가 칭얼거리듯 어리광 피우는 모양새였다. 스티브는 하려던 말을 입맞춤과 함께 집어 삼키고, 대신 웃으며 버키의 목덜미에 팔을 둘렀다. 굳이 버키가 말하지 않아도 스티브는 그럴 생각 없었다. 버키라고 스티브를 진짜 믿지 않아서 하는 말은 아니었다.


 버키의 손을 따라 스티브가 제 하의를 벗어던졌다. 이제는 어깨만이 남은 팔에도 제법 익숙해진 버키였으나 이런 일까지 하기엔 좀 힘든 감이 있었다. 그렇다고 이 마지막 밤을 그냥 넘기고 싶지도 않았다. 그 마음은 둘 모두 마찬가지였다. 스티브는 평소보다 더 열심히 움직였다. 장난스럽게 말을 건넬 때에도 둘은 흥분하고 있던 터라 아래는 착실히 서 있었다. 결코 좁다고 할 수 없는 방엔 시작하기도 전부터 뜨거운 열기가 가득했다. 스티브의 허벅지 사이로 자세를 잡으며 버키는 다시금 키스를 해왔다. 많이 해두겠다는 말이 거짓은 아닌지 입술을 떼기가 무섭게 다시 말캉한 혀가 안을 파고들었지만 그래도 부족하게만 느껴졌다.


 움직일 때마다 낡은 침대가 삐걱거렸다. 원래도 그리 튼튼한 침대는 아니었다. 건장한 성인 남성 둘이 다소 거칠게 움직이다보니 끼익거리는 소리가 더욱 애처롭게 느껴졌다. 버키는 시트 위를 손끝으로 살짝 훑으며 중얼거렸다.


 “부서지면 또 착각하겠군.”


 어차피 침대 하나가 부서져도 이제는 방을 바꿀 필요가 없었다. 하나만 있으면 족할 테니까.


 “으, 버키, 잠깐.”


 집어넣기 전 갑자기 손을 뻗은 스티브가 꾸물거리며 몸을 돌려 엎드렸다.


 “뭐야. 부끄러워?”

 “그냥 해.”


 재촉하듯 말하며 스티브는 베개에 얼굴을 묻었다. 짧은 머리칼 아래로 드러난 그의 귀가 타오르듯 붉었다. 버키는 어깨를 으쓱하며 다시 자세를 잡았다. 오랜만이었지만 삽입에 무리는 없었다. 버키가 한 손으로도 공들여 스티브의 안을 풀어주었기 때문이었다. 버키는 기억을 더듬으며 스티브의 안을 찔렀다. 아래서 옅은 신음이 새어나왔다. 조금 긴장한 것 같기는 해도 아파보이진 않아 다행이었다. 버키는 스티브의 등선을 따라 키스를 퍼부었다.


 몇 번이고 움직이자 버키의 입에서 뜨거운 숨이 터졌다. 스티브는 여태 끙끙거리기만 할 뿐 말이 없었다. 버키는 느리게 움직이며 스티브를 살폈다. 허벅지가 움찔거리고 떨리는 것이 결코 싫은 반응은 아니었다. 다만 아직까지 아무 말 없는 것이 불안했다. 스티브의 귓가나 목덜미는 물론이고 그 아래까지 모두 새빨갛게 익어가고 있었다. 그리고 간헐적으로 들리는 앓는 소리에 버키는 지금 스티브의 상태가 어떤지 뒤늦게 알아차렸다.


 “스티브. 아파?”


 아니…… 물기에 가득 젖은 목소리가 허공에 흩어졌다. 스티브는 얼굴을 보이고 싶지 않은지 베개를 꼭 끌어안은 채였다. 버키의 움직임이 차차 느려지더니 결국엔 멎고 말았다. 스티브는 떨리는 목소리로 재촉했다. “…계속 해, 버키.” 그러나 그 목소리를 듣고도 계속 할 수 있을 리가 없었다.


 아파서 우는 게 아니란 것쯤은 버키 역시 잘 알고 있었다. 또한 눈물을 흘리게 한 장본인이니 울지 말라고 하는 것은 염치없는 일일 수도 있었다. 하지만 눈물 젖은 목소리를 그냥 지나칠 수 있는 것도 아니었다. 버키가 도닥이듯 스티브의 어깨를 매만졌다.


 “스티브, 여기 봐. 괜찮으니까.”


 흡사 어린아이 어르고 달래는 투였다. 꼼짝 하지 않던 스티브는 버키가 몇 번이고 등을 쓸어주고 나서야 고개를 돌렸다. 역시나 얼굴이 푹 젖어 있었다.


 “엉망이네.”

 “엉망인데…… 왜 보려고 하는 거야.”


 벌써부터 목소리가 잠겨서 잘 들리지 않았다. 속으로 얼마나 울음을 삼켰는지 알만했다.


 “울지 마.”


 버키가 스티브를 껴안았다. 빠듯한 한 품이었다. 따스한 체온에도 눈물은 멎지 않았다. 흐느끼는 소리 없이 그저 눈물만이 방울방울 떨어져내렸다. 버키는 스티브가 정말 슬플 때는 소리조차 내지 않고 운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 그래서 뺨을 적시는 눈물을 훔쳐내고 등을 어루만지는 일밖엔 할 수가 없었다. 흔적만 남은 왼팔로는 눈물을 동시에 닦아줄 수도 없어 버키는 그의 뺨에 입술을 붙였다. 버키, 버키, 버키…… 한동안 못 부를 이름을 스티브는 목 놓아 불렀다. 버키는 하나도 빠짐없이 대답해주었다. 응, 스티브.


 거칠었던 숨이 조금 진정이 되었을 즈음, 버키는 스티브를 품에서 떼어 내었다. 운 흔적이 역력한 얼굴엔 다소 민망한 기색도 섞여 있었으나 시선을 피하지는 않았다. 버키가 스티브의 콧잔등을 아프지 않게 퉁겼다. 스티브가 눈썹을 구기며 퉁명스럽게 말했다.


 “이젠 약골 어린애가 아니야, 버키.”

 “우는 모습은 브루클린 꼬맹이랑 달라진 게 없던데.”


 스티브의 눈가는 물론이고 코끝까지 새빨갰다. 우는 모습이 안쓰러웠지만 이마저도 귀여워서 버키는 그냥 웃었다. 차라리 지금 울어두는 편이 나았다. 제가 달랠 수도 없는 밤에 혼자 우는 것을 보고 싶진 않았으니까. 버키가 몸을 슬쩍 뒤로 뺐다. 그러자 스티브가 팔을 잡아 왔다.


 “이번엔 얼굴 보고 해.”


 버키가 그만두려고 했던 것을 눈치 챘는지 스티브가 먼저 버키의 어깨를 단단히 움켜잡았다. 버키를 똑바로 바라보며 누운 스티브는 손을 놓지 않았다. 결국 버키는 다시 자세를 고쳐 잡았다. 스티브의 안을 밀고 들어간 것이 익숙하게 자리를 잡았다. 흐윽, 스티브는 길게 우는 소리를 내며 버키를 받아들였다. 버키는 천천히 흔들리는 스티브를 두 눈에 박아 넣었다. 이상하게 아래보다 가슴이 더 뜨거웠다.


 “흐으, 읏, 버키…….”


 스티브가 애타게 버키의 손을 찾았다. 곧 빼낼 수 없을 정도로 단단하게 깍지를 껴왔다. 깍지 낀 손을 잡아당긴 스티브가 버키의 손등 위로 연신 입술을 찍었다. 더 나아가 감각이 살아 있지도 않은 망가진 왼쪽 어깨의 끝자락에도 스티브는 입을 맞추었다. 그 절실함이 차가운 금속 너머로도 느껴질 정도였다.


 감정이 둑 터지듯 갑자기 밀려들었다. 흐려지고 조각난 기억 속에서도 스티브의 모습은 곳곳에 담겨 있었다. 툭 하고 건들면 무너질 것 같은 비실한 몸을 하고도 옳은 일에 달려들던 뒷모습이나 잔뜩 열이 올라 헛소리를 지껄이던 스티브의 곁을 지키던 어느 날의 밤, 이어진 전투에서 연이어 승리했을 때 기쁨에 겨워 끌어안던 몸에서 풍겼던 화약 냄새와 그 아래의 체취 따위가 넘실거렸다. 스티브는 버키의 삶 어디에도 스며들어 있었다. 기억 속에도, 마음속에도. 스티브를 붙잡은 버키의 손이 가늘게 떨려오기 시작했다.


 아마 스티브는 모를 테지만 버키는 그 말을 전하기 위해 홀로 수십 번을 연습했었다. 수많은 연습이 무색하게도 정작 스티브에게 그 말을 건넸을 때의 분위기나 목소리, 표정은 연습한 것보다 훨씬 멋이 없었다. 그래도 스티브는 좋다고 환하게 웃었다. 순서를 뺏겼다며 조금 투정을 부리기도 했었다. 버키는 꼭 그 시절로 돌아간 것처럼 그렇게, 아무 멋도 없이 툭 내뱉었다.


 “좋아해.”


 우습게도 이미 커질 만큼 커져있던 감정은 말로 뱉은 순간 걷잡을 수 없이 폭발하기 시작했다.


 “좋아해, 스티브. 정말. 정말로…….”


 터져 나온 것이 그 감정 뿐은 아니었는지 입술이 열리고 닫힐 때마다 짭쪼름한 맛이 났다. 스티브는 그런 버키를 멍하니 올려다보다 울음을 꾹 참는 것처럼 얼굴을 일그러뜨리며 웃었다.


 “나도 좋아해, 버키.”


 긴 세월이 지났어도 여전한 것은 있기 마련이었고, 터져 나온 이 마음이 그랬다. 버키는 가슴에 새겨 넣듯 스티브의 얼굴을 뚫어져라 바라보았다. 잊어버릴까 그런 것은 아니었다. 잊으래야 잊을 수도 없는 상대였다. 다만 그가 너무 그리울까봐 걱정이 되었다. 어차피 아무것도 하지 않고 그저 잠들어있을 테지만, 그래도.


 스티브는 좀 전에 이미 한바탕 울었던지라 감정을 추스르기가 더 쉬웠다. 스티브는 결코 지겹지 않은 고백을 연거푸 토해내는 버키의 입술에 살짝 키스했다. 얽히는 혀 너머로 짠맛이 느껴졌다.


 “아까 누가 그러던데. 울지 말라고.”


 스티브가 가볍게 웃으며 버키의 뺨을 어루만졌다.


 “말해봤자 듣지도 않던데 뭘.”


 버키가 코를 훌쩍이며 퉁명스레 답했다. 여전히 뺨 위론 눈물이 뚝뚝 떨어지는 중이었다. 조금 전 그가 그러했듯 스티브 역시 버키의 뺨가에 입술을 가만히 가져다대었다. 쏟아지는 눈물이 뜨거웠다. 뜨겁고 축축한 밤이었다.



 *



 곤히 잠든 버키를 스티브는 한참이나 바라보았다. 비록 꽁꽁 얼어붙은 채지만, 그래도 좋은 꿈을 꾸면 좋겠다고 바랐다. 버키의 표정은 평온해보였다. 스티브는 그것이 정말 다행이라고 생각했다. 끙끙거리며 앓는 소리가 메아리치던 몇 번의 밤보다, 잠들지 못해 해가 밝을 때까지 이야기를 늘어놓던 그 무수한 밤보다 더 나아 보여서 그랬다. 잘못된 버튼을 누른 것처럼 갑자기 폭주하는 밤은 말할 것도 없었다. 다시 눈을 뜨게 된 뒤에는 늘 이런 식으로 잠들 수 있다면 좋을 텐데. 스티브는 바람을 담아 버키를 감싸고 있는 유리를 천천히 쓸어보았다.


 꽁꽁 언 시간은 흘러가지 않고 그대로일 테지만 스티브는 앞으로도 종종 이곳을 찾아 와 버키를 바라볼 예정이었다. 예정이라고 거창하게 말할 필요도 없었다. 스티브는 그냥 문득 버키가 보고 싶어지면, 그럴 때면 이곳에 올 것이다. 어쩌면 하루 종일 아무것도 하지 않고 그저 바라만 볼 수도 있었다. 스티브는 지금 당장 그러고 싶었지만 그러기엔 아직 감정이 갈무리되지 않은 채였다. 스티브는 미적거리며 돌아섰다. 버키의 선택을 막지는 못했으나 가슴이 아픈 것도 사실이었다.


 “이제 어떻게 할 생각이지?”


 낮은 목소리가 스티브의 발목을 잡아 세웠다. 당연히 지금 그는 블랙 팬서의 복장이 아니었다. 그에겐 감사의 말을 여러 개 전해야겠지만 스티브는 나중으로 미루기로 했다. 대신 스티브는 잠깐의 침묵 후 느리게 대답했다.


 “살아야죠.”


 힘들고 괴롭겠지만 스티브는 포기할 생각이 없었다. 어떻게든 살아가야 했다. 자신이 오랜 추위 끝에 겨우 눈을 떴을 때, 이 세상에 오로지 혼자 남겨졌다고 생각했을 때, 소중한 모든 것이 다 지나간 추억임을 깨달았을 때 느꼈던 온갖 감정을 버키에게도 선사하고 싶지는 않았다. 버키는 스티브의 집이자 안식처였다. 그렇다면 이번에는 스티브가 버키에게 그런 존재가 되어야만 했다.


 “70년도 금방이던데요.”


 스티브는 조용히 답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