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D 2.5D NOTICE GUEST

 서있는 것만으로도 땀이 주륵 흘러내릴 정도로 푹푹 찌는 날이었다. 아도니스는 아무도 없는 트랙을 물끄러미 바라보았다. 열사병이 걱정 될 정도의 날씨라 아무도 나오지 않은 걸까. 늘 활기차게 뛰어다니던 미츠루도, 그것을 지켜보며 조용히 미소짓던 아라시도 보이지 않았다. 그 둘이 함께 육상부 연습에 나오지 않는 것은 무척 드문 일이라 아도니스는 살짝 걱정이 되었다. 아프기라도 한 걸까. 아도니스의 얼굴에 그늘이 졌다.


 일단은 기다려보는 게 좋을 것 같아 묵묵히 트랙을 몇 바퀴고 돌고 난 차였다. 여전히 미츠루와 아라시는 보이지 않았고, 둘에게선 어떠한 연락도 오지 않았다. 답지 않게 아도니스는 자꾸만 휴대 전화를 확인했지만 뜨는 것은 고작 오 분 정도가 지났음을 알려주는 시계 뿐이었다. 아도니스는 땀으로 젖은 이마께를 닦아내며 살짝 한숨 쉬었다. 별 거 아닌 일일 수도 있겠으나 걱정이 멈추질 않았다. 안그래도 미츠루는 최근 라비츠 멤버들과 특훈을 하는 중이었고 아라시는 다이어트를 한답시고 아도니스가 주는 고기를 모조리 거절하고 있었다. 아도니스의 걱정이 갈수록 커지는 것도 당연했다.


 머리를 가볍게 하기 위해 한 바퀴를 더 돌고 나서, 아도니스는 결국 둘을 찾으러 가기로 결정했다. 우선은 양호실부터 갈 생각이었다. 양호실에 있어도 문제, 없어도 문제겠으나 아도니스는 일단 양호실로 향했다. 가는 내내 아도니스의 표정은 모르는 사람이 보면 흠칫 놀라 피할 정도로 딱딱하게 굳어 있었다.


 “들어가겠습니다.”


 양호실에 도착한 아도니스는 간단히 노크를 하고 안으로 들어섰다. 안은 생각보다 조용했다. 그 말은 있어야 할 사가미 선생조차 어딜 갔는지 보이지 않는다는 뜻과도 같았다. 아도니스는 목을 빼고 주위를 살폈으나 사가미 선생의 나른한 얼굴은 찾아볼 수 없었다. 그렇다고 양호실에 아무도 없었던 것은 아니었다. 아도니스의 등장에 놀란 듯 아, 하고 작은 탄성이 터져나오긴 했으니까.


 안을 두리번거리던 아도니스의 시선이 저 구석 침대에 앉아 있는 소년에게로 향했다. 갑작스러운 침입에 놀랐는지 소년은 눈을 둥그렇게 뜨고 있었다. 옅은 갈색의 머리칼과 앉아 있어도 우뚝 솟은 키로 보아 유성대의 1학년인 타카미네 미도리가 분명했다. 아도니스도 분명 지난 번 해적 페스티벌 때 그를 본 적이 있었다. 깔끔하게 해군복을 차려 입었을 때와는 조금 색다른 느낌이었다.


 찾으려고 했던 미츠루나 아라시는 보이지 않았다. 하지만 아도니스는 나가는 대신 양호실 안쪽으로 깊숙히 들어가는 것을 택했다. 설령 친하지 않은 사이라 하더라도 다친 것을 보고 그냥 넘어갈 수는 없어서였다. 더군다나 상대방은 치료에 서툰지 버벅거리고 있었다.


 “다친 건가?”


 아도니스는 성큼 다가가며 물었다. 바지를 둘둘 말아 허벅지 위로 올린 탓에 드러난 무릎이 빨갛게 까져 있었다. 심한 상처는 아니지만 오히려 이런 부상이 더 따끔거리고 아프기 마련이었다. 미도리는 대답하지 못하고 입만 벙긋거렸다.


 솔직히 미도리는 다가오는 아도니스를 보고 무섭다고 생각했다. 친한 사이가 아니었다. 친하기는커녕 말 한 마디 제대로 걸어본 적도 없었다. 유성대와 언데드가 딱히 어떤 인연이 있는 것도 아니었고, 1학년인데다 아이돌 활동에 열성적이지 않은 저는 더더욱 예외였다. 기껏 해야 그 해적 페스티벌에서 얼굴을 마주한 것이 고작이었다. 그나마도 미도리는 유루캬라를 생각하느라 주변을 잘 살피지도 못했더랬다. 그냥 그랬던 사이인데. 미도리는 저도 모르게 꿀꺽 침을 삼켰다. 다른 건 하나도 기억이 나지 않지만 어렴풋이 눈앞의 상대가 철을 구부릴 정도로 힘이 셌었다는 것이 떠올랐다.


 “그… 언데드, 2학년의…….”

 “오토가리 아도니스다.”


 무뚝뚝하게 답하며 아도니스는 아예 미도리의 맞은 편에 자리를 잡았다. 들어올 때부터 사가미 선생이 없었던 것인지 손수 무릎 위로 약을 바르는 손길이 매우 서툴렀다. 주위에 어지러이 널려 있는 반창고나 붕대 따위만 봐도 이런 일에 별로 소질이 없다는 걸 알 수 있었다. 아도니스는 그를 대신해 연고를 집어 들었다. 미도리가 채 말을 걸거나 어떤 반응을 보이기도 전이었다. 덩치에 어울리지 않게 그가 움찔하자 아도니스가 단호하게 말했다.


 “가만히 있어라.”


 딴에는 걱정해서 하는 말이었지만 듣는 입장에선 명령처럼 느껴지는 말투를 툭 던지고선, 아도니스는 조심조심 까진 상처 위로 연고를 문질렀다. 따끔한 아픔에 미도리가 얼굴을 찌푸렸다. 반응을 살피는 것처럼 아도니스의 손끝에 힘이 덜해졌다. 아도니스는 그제야 미도리가 입고 있는 것이 유메노사키의 농구복이라는 것을 깨달았다.


 “연습 중에 다친 건가?”

 “아, 네, 뭐……. 그렇다고 할 수도 있겠지만…….”


 미도리가 말을 얼버무렸다. 농구 코트에서 다친 것은 맞았지만 연습을 하다 그랬다기엔 아직 농구공을 잡기도 전에 벌어진 일이었다. 어디선가 굴러온 공이 미도리의 등을 퍽 때렸고, 엉거주춤한 자세로 서있던 미도리가 그대로 고꾸라지며 무릎을 박은 것이 원인이었다. 오자마자 넘어지다니 아아, 죽고 싶어……. 미도리는 넘어지는 순간에도 그렇게 생각했다. 뒤에서 “미안하다, 타카미네!” 하고 엎드려 빌 기세로 달려오는 누군가의 목소리에 그 마음은 한층 짙어졌다. 미도리가 고개를 들기도 전부터 치아키는 안절부절 못하고 연신 사과를 해댔다. 미도리는 대충 대답하고 말았다. 이걸 핑계로 오늘 연습은 빼먹을 수 있지 않을까? 그 마음을 읽기라도 했는지 옆에 있던 마오가 잽싸게 말했다.


 “그러다 흉이라도 지면 안 되니까 우선 양호실에 가보는 게 나을 것 같은데.”

 “그 정도는…. 아닌 것 같기도 하고…….”

 “아니, 아니, 타카미네! 작은 상처도 소홀히 할 수 없는 법이지. 정 그렇다면 내가 같이 가줄 수도…….”

 “바보 부장, 무슨 소릴 하는 거야!”


 치아키가 말하는 것을 잠자코 듣고 있던 스바루가 황급히 치아키의 입을 틀어막았다. 치아키도 뒤늦게 깨달은 듯 땀을 뻘뻘 흘리며 애매하게 미소지었다. 미도리는 무슨 영문인지 알지 못해 그저 고개만 갸우뚱거릴 뿐이었다. 그렇게 마오에게 떠밀리듯 양호실로 향한 거였다. 막상 양호실에 와보니 선생은 어딜 갔는지 보이지 않고, 그렇다고 다시 돌아가기도 그래서 대충 반창고나 붙일까 하던 참이었다. 드르륵 문이 열리는 소리에 사가미 선생이 돌아왔나 하고 고개를 들었더니 보이는 건 심각한 얼굴의 무서워보이는 선배였지만.


 “혹시 괴롭힘을 당한 건가.”

 “아뇨, 그건 절대 아닌데.”


 괴롭힘이라니. 절대 그럴 사람들이 아니었다. 언제나 미도리를 피곤하고 지치게 만들긴 했지만 일반적으로 말하는 괴롭힘과는 거리가 멀었다. 오히려 그런 짓을 용납할 수 없는 부류의 사람들이다. 그리고 미도리는 대강 그 셋이 무슨 생각으로 그랬는지 알 것 같았다. 일부러 미도리를 농구 코트에서 내쫒을 이유가 필요했을 것이다. 손이 좀 미끄러지는 바람에, 그리고 미도리가 화려하게 넘어지는 바람에 예상보다 더 큰 상처를 얻기는 했지만. 미도리는 양호실 벽에 걸려 있는 달력을 흘끗 보았다. 8월의 막바지였다. 29일. 대다수에겐 아무 것도 아닌 날이겠으나 미도리에겐 세계가 달라진 날이었다.


 아도니스는 미도리의 말을 믿지 못하는 것인지 여전히 심각한 얼굴이었다. 그다지 친하지도 않은 사이이건만, 진짜로 괴롭힘이라도 당한다고 말했으면 당장 달려가 일을 해결해 줄 기세였다. 그런 우직하면서도 강건한 느낌이 어쩐지 마냥 싫지는 않았다. 미도리는 반창고를 찾느라 어지럽혔던 것들을 주섬주섬 정리하며 설명했다.


 “오늘이 생일이라서…….”

 “응?”

 “그 사람들, 특히 부장은 늘 그러니까……. 파티 준비라도 한 거겠죠. 으음, 조금 많이 귀찮은 일이긴 하지만…….”


 미도리의 설명에 아도니스가 느리게 눈을 끔벅였다. 생일? 아도니스 역시 고개를 돌려 달력을 바라보았다. 8월 29일. 머리를 스치고 지나가는 것이 있었다. 얼마 전 아라시가 미츠루를 데리고 단 둘이 쇼핑을 갔던 일이 불현듯 떠올랐다. 아도니스는 뒤늦게 왜 미츠루와 아라시가 오늘 나타나지 않았는지 알아차릴 수 있었다. 정확히는 어디선가 저를 기다리고 있을 터였다. 아도니스는 살짝 웃었다. 미도리는 은은하게 번지는 그 미소를 보고 조금 놀랐다. 무뚝뚝한 얼굴만이 전부라고 생각했는데 의외로 그런 표정이 잘 어울렸다.


 “흠, 그렇군. 생일 축하한다.”

 “어? 어어……. 고맙습니다. 축하받으려고 말한 건 아니었는데…….”


 꼭 오늘이 생일이라고 자랑한 어린아이가 된 기분이라 미도리는 얼굴을 붉히며 고개를 저었다. 아도니스는 무릎에 반창고까지 깔끔하게 붙이고서야 자리에서 일어났다. 얼결에 미도리 역시 아도니스를 따라 일어섰다.


 “그리고 고맙다.”

 “고맙다는 말은 제가 해야 할 것 같은데…….”

 “아니. 내가 의아하게 여기고 있던 걸 해결해줬으니까.”

 “……그게 뭐길래.”


 미도리가 중얼거리듯 반문한 것을 들었는지 아도니스가 옅게 웃었다. 이번엔 미도리를 정확히 바라본 채였다.


 “우리는 생일이 같군. 이것도 어떠한 인연일지도.”


 말이 끝나고 나서도 미도리가 그저 바라보기만 할 뿐 대답이 없자, 아도니스는 먼저 갈 생각으로 등을 돌렸다. 그러자 뒤에서 다급한 목소리가 터져나왔다.


 “추, 축하합니다. 생일…….”


 어설픈 축하였으나 당황한 듯 눈을 깜빡거리는 것이 딱 보기에도 진심이라 아도니스 역시 진심을 담아 웃어주었다. 멍청하게 구는 자신이 한심해서 그 찰나에도 죽고 싶다는 생각을 열 번쯤 되뇌인 미도리는 그 얼굴에 멍하니 고개만 끄덕이고 말았다. 전혀 예상도 하지 못한 상대에게서 받는 축하 인사는 생각보다도 훨씬 기분이 좋은 일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