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고도 없이 갑작스럽게 비가 쏟아졌다. 겨우 집에 도착했을 땐 이미 둘 모두 쫄딱 젖은 채였다. 안까지 척척해진 신발을 벗으며 히나타가 머리를 털었다. 옆에 있던 유우타가 으익, 얼굴을 찡그렸다.
“다 튀잖아, 형.”
“어차피 다 젖었으니 괜찮지 않아?”
“괜찮지 않아.”
말하며 유우타가 히나타의 젖은 머리를 살짝 밀었다. 히나타는 씩 웃기만 했다.
“비가 이렇게 많이 올 줄 몰랐는데. 편의점에서 우산이라도 살 걸 그랬나?”
“이제 와서 말하면 무슨 소용이야. 그리고 집에 우산도 많아.”
“그렇지만 역시 찝찝하단 말이지…… 시노부군이라면 떨어지는 비를 막 피해서 닌자처럼 샤샤샥! 하나도 안 젖고 도착할 수 있을 텐데.”
“……아무리 생각해도 그건 불가능하잖아.”
그건 그렇지? 실없는 소리를 내며 히나타가 웃었다. 닌자라는 부분도 애매하고. 유우타의 덧붙인 말에는 짐짓 무서운 얼굴을 하고선 유우타의 이마를 아프지 않게 콩 때렸다.
“그 말 시노부군이 들으면 화낼 거라고.”
유우타는 대답 대신 젖은 옷을 벗었다. 여느 때처럼 집은 텅 비어 있었다. 푹 젖어서 살에 들러붙은 셔츠를 떼어 내며 히나타가 욕실 문을 열었다. 드러난 몸을 가리지도 않고 훌러덩 벗은 채로 히나타는 유우타의 팔을 붙잡았다. 놀란 얼굴을 향해 싱긋 웃어 보인 히나타가 잡은 손에 힘을 주었다.
“같이 씻자, 유우타군.”
“어린애도 아닌데 무슨 소리야!”
“뭐 어때? 유우타군도 계속 그러고 있으면 찝찝하잖아.”
히나타는 막무가내로 유우타를 잡아당겼다. 아차하는 사이 이미 욕실 문이 닫혔다. 유우타는 어쩔 수 없단 듯 한숨을 내쉬었다. 낑낑거리고 옷을 벗는 걸 도와주며 히나타가 재잘거렸다.
“내일이 주말이라 다행이다. 안 그러면 유닛복 입고 등교할 뻔 했어.”
“다른 옷도 많이 있는데 왜 그거야.”
“존재감 어필에 좋지 않아? 한번쯤 해보고 싶기도 했고!”
경쾌한 목소리가 욕실에 울렸다. 히나타는 기분이 좋은지 곧 콧노래를 흥얼거리기 시작했다. 히나타가 자주 부르는 노래는 유우타가 자주 듣는 것이기도 해서, 곧 목소리가 화음을 이루며 어우러졌다.
“다음 곡은 아카펠라로 해볼까? 의외로 반응이 엄청날지도.”
“그 정도로 잘 부르는 건 아니잖아. 그보다 물 틀거니까 가만히 있어. 아직 물 차가우니까.”
둘이 들어갔다고 해서 욕실이 가득 차는 것은 아니었다. 그럼에도 히나타는 자꾸만 슬금슬금 유우타 쪽으로 몸을 붙였다. 참다 못한 유우타가 세찬 물을 히나타 쪽으로 휙 뿌려버렸다. 으악! 얼굴에 정면으로 물세례를 맞은 히나타가 낮게 비명을 질렀다. 그런 주제에 짜증을 내긴커녕 푸하하 웃음을 터뜨려서 결국 유우타도 따라 웃고 말았다.
“뭐가 좋다고 그렇게 웃는 거야.”
“그냥, 유우타군이랑 있으니까 좋아서.”
말하며 히나타가 유우타에게 한 발 다가갔다. 살이 맞닿았다. 떨어지는 물은 따뜻했고, 닿은 살은 그보다 더 뜨거웠다. 히나타의 허벅지가 유우타의 다리 사이를 파고들었다. 읏, 유우타가 신음을 흘리며 뒷걸음질쳤다. 벽에 등이 닿자 히나타가 기다렸다는 듯 얼굴을 들이밀었다. 머리칼에서 떨어지는 물방울이 유우타의 가슴 위로 떨어질 정도로 가까운 거리였다. 발개진 코끝이 스쳤다. 무언갈 말하기 위해 히나타의 입술이 열렸다. 달콤한 숨이 언어가 되기도 전에 유우타가 그것을 삼켰다.
입술을 겹친 채로 히나타가 유우타의 허리를 끌어당겼다. 흐르는 물길을 따라 유우타의 아랫배를 쓸었다. 반쯤 선 것을 쥔 채 혀를 굴렸다. 위도 아래도 찰박이는 소리가 났다. 입술을 떼자 유우타의 흐트러진 숨결이 얼굴에 번졌다. 상기된 뺨을 유우타의 목덜미에 비비적거리며 히나타가 웃었다. 웃음 속에 진심이 섞여 있었다. 유우타가 낮은 신음을 토해냈다. 파정은 떨어지는 물소리에, 울리는 심장소리에 묻혀 조용히 끝났다. 유우타는 가만히 숨을 고르며 히나타가 조금 전 속삭였던 진심을 몇 번이고 곱씹었다.
좋아해.
같은 마음을 유우타는 굳이 입 밖으로 꺼내지 않았다. 말로 하지 않아도 서로의 속을 읽을 수 있는, ‘둘이서 하나인’ 존재니까 그 정도는 괜찮을 거라고 유우타는 스스로에게 변명을 건넸다. 마주한 히나타는 정말 아는 것처럼 웃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