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D 2.5D NOTICE GUEST

 지금까지 리쿠의 고민을 들어준 적은 셀 수도 없이 많았지만, 오늘만큼은 특별했다. 설마 리쿠의 연애 상담을 들어주게 되다니. 언젠가는 이럴 일이 있을 것이라 생각했음에도 기분이 묘한 것은 어쩔 수가 없었다. 텐은 아까부터 꼼지락거리기만 하는 리쿠를 가만히 바라보았다. 리쿠는 벌써 몇 번째인지도 모를 한숨을 깊게 토해낸 다음 겨우 입을 열었다.


 “솔직히 말하면 조금 무서워.”

 “뭐가?”

 “이오리가…….”


 베개를 끌어안고 있는 리쿠는 보지 못했지만, 텐의 눈빛이 순식간에 매서워졌다. 그럴 인물로 보이진 않았으나 본의 아니게라도 제 동생을 상처입혔다면 그냥 넘길 수는 없는 일이었다. 둘의 연애에 끼어들어서 이러쿵저러쿵 하려는 건 아니지만, 마음 속에 마이너스를 천만 개 정도 적립시켜 둘 수는 있었다. 누적제니까 언젠가는 써먹을 때가 있을 것이다.


 “너무 좋아지면 어떡하지…….”


 텐의 걱정과 달리 리쿠의 입에서 이어진 문장은 김이 빠질 정도로 별 게 아니었지만. 머뭇거리며 속내를 터놓은 리쿠는 정말 큰 고민인지 잔뜩 울상을 짓고 있었다. 눈을 몇 번 깜빡이던 텐이 나즈막이 말을 꺼냈다.


 “고민이라는 게 그거야?”

 “텐 형, 지금 살짝 바보 취급했지?”

 “아니.”

 “거짓말. 이오리가 나나세씨는 어쩌고저쩌고 할 때랑 눈이 똑같았어.”

 “실례가 되는 말을 하네.”


 눈이 똑같다니. 덧붙인 말에 리쿠는 또 잠깐의 시간이 흐른 뒤에야 그 뜻을 눈치 챌 수 있었다. 그럼 역시 바보 취급 한 거잖아! 그러나 리쿠가 그렇게 쏘아붙이기 전에, 텐이 진지한 얼굴로 되물었다.


 “어느 쪽이 문제인 거야. 감정의 깊이? 아니면 좋아한다는 쪽?”

 “어…… 첫 번째려나.”


 좋아하는 거야 이미 다 들킨 일이니 이제와 고민할 것도 없었다. 좋아하는 마음을 숨기고자 했으면 이오리의 고백을 받아들이지도 않았을 테니까. 진지한 얼굴로 불러낸 이오리가 한참을 머뭇거리다 좋아한다고 고백했을 때, 리쿠는 큰 고민도 없이 이오리를 와락 끌어안았더랬다. 놀란 이오리가 나나세씨?! 하고 갈라진 목소리를 내는 것엔 크게 웃음까지 터뜨렸다. “이걸 무슨 만우절 장난이라고 착각하고 있는 건 아니겠죠?” 이오리의 걱정스러운 물음에 리쿠는 시원하게 웃었다. 깨닫는 데엔 오랜 시간이 걸렸지만 전달하는 것은 쉬웠다. “나도 이오리 좋아해.” 리쿠와는 정반대였을 이오리는, 제가 고민했던 시간이 무색할 정도로 시원하게 돌아온 대답에 그저 웃고 말았다.


 리쿠는 연애가 처음이었지만 그만큼 환상이 컸다. 좋아하는 사람과 같이 웃고, 떠들고, 재밌는 시간을 보내면 마냥 행복할 줄만 알았다. 설마 사귀기 전보다 더 걱정이 늘어날 줄이야. 쉽게 잠들지 못하는 밤이 조금씩 늘어났다. 그 밤 내내 떠올리고 있던 건 이오리면서, 행여 그가 걱정스러워 할까 봐 리쿠는 기나긴 밤에 대해선 말을 꺼내지 않았다.


 리쿠는 좋아하는 것이 많았다. 바로 옆에 있는 텐부터 시작해서 아이돌리쉬 세븐의 모두가, 연예계에 오면서 알게 된 여러 사람들이, 자신을 좋아하고 지지해주는 수많은 팬들이 다 좋았다. 그리고 이즈미 이오리가 좋았다. 아닌 척 하면서 은근히 걱정해주는 배려가, 자기도 모르게 진심을 말해놓고 부끄러워하는 모습이, 모든 일을 깐깐하게 처리하는 성실함이, 나나세씨라고 부르며 웃어주는 그 미소가 좋았다.


 이오리는 조심스럽게 다가왔다. 사귀고 난 후에도 평소처럼 리쿠를 대했다. 오히려 리쿠가 먼저 손을 덥썩 잡거나 와락 안겨드는 일이 잦았다. 그 때마다 이오리는 한껏 당황해선 귀끝을 붉혔다. 그 모습이 재밌어서 일부러 더 그런 것도 있었다. 그래도 그런 가벼운 마음이 아니라, 정말 사랑하는 사람과 닿고 싶어서 접근해오는 건 역시 이오리 쪽이었다.


 “나나세씨가 좋습니다.”


 어쩌다보니 단 둘만 남았던 때였다. 고백했던 그 날 이후로 다시 하지 않았던 말을 꺼내며 이오리가 리쿠의 손을 잡아 왔다. 좁은 소파에서 영화를 보느라 꼭 붙어 있던 몸이 더욱 가까워졌다. 이오리는 평소처럼 얼굴을 붉히지도 않았다. 시선을 피하지 않고 저를 똑바로 바라보는 눈빛에 리쿠의 심장이 세차게 뛰었다. 대놓고 말하진 않았지만 이오리를 보고 멋있다고 생각한 적은 많았다. 그러나 그 모든 순간을 합쳐도 지금만큼은 아닐 것이란 생각이 들었다. 조금씩 가까워지는 입술을 끝까지 보지 못하고 리쿠가 눈을 질끈 감았다. 동시에 콜록거리고 기침이 터졌다.


 “나나세씨! 괜찮습니까?”


 괜찮다는 답 대신 연신 기침이 터져나와 리쿠의 눈엔 눈물까지 맺혔다. 놀란 이오리가 서둘러 그런 리쿠의 등을 쓸어주었다. 주위를 두리번거리며 리쿠에게 물릴 것을 찾는 사이 다행히 리쿠의 기침이 멎었다. 이오리는 여전히 걱정을 담뿍 담은 채 리쿠를 조심히 살폈다.


 “목이 아프거나 그렇진 않나요?”

 “으응, 괜찮아. 잠깐 놀라서…….”


 말하고 나니 이 상황이 조금 부끄럽고 민망했다. 리쿠가 서둘러 변명을 하기 전에 이오리가 먼저 사과를 해왔다.


 “놀라게 했다면…… 죄송합니다. 힘들거나 싫으면 말해주세요. 나나세씨가 싫다고 하면 저도 할 생각 없습니다.”

 “정말?”

 “……절 그렇게 몰상식하고 파렴치한 사람으로 생각했단 말인가요?”

 “아니! 아니야, 그런거…… 미안.”

 “그런데 왜 사과를 합니까.”

 “그냥…….”


 살짝 어색해진 분위기에 마침 미츠키와 나기가 들이닥쳐서 그 일은 그런 식으로 흐지부지되고 말았다. 둘은 속으로 내심 다행이라고 생각했다.


 그 뒤로 달라진 것이 있다면 리쿠가 은근슬쩍 이오리의 스킨십을 피하게 됐다는 점이었다. 눈치 빠른 다른 멤버들도 짐작할 정도니 당사자인 이오리가 모를리 없었다. 이오리는 몇 번이고 미안하다는 티를 냈다. 괜한 짓을 해서 겁을 먹게 만든 것 같아 미안해하는 것이 틀림 없었다. 리쿠는 아니라고 말해주고 싶었다. 실제로 아니기도 했다. 내가 피하는 건 너무 힘들거나 갑작스럽거나 싫어서가 아니야. 오히려…… 그 반대라는 말이, 목구멍에 턱 걸린 것처럼 나오질 않았다.


 좋아하는 사람과 입을 맞추는 상상을 한 적은 몇 번이고 있었다. 그래도 현실은 상상과 차원이 달랐다. 그 날 기침이 터졌던 것은 놀라서가 아니었다. 정말 심장이 폭발할 것처럼 세차게 뛰어서, 참지 못하고 터진 게 분명했다. 리쿠는 이오리가 좋았다. 그리고 그 순간 깨달았다. 이건 단순히 좋아하는 게 아니라는 것을. 노래 가사에 담긴 낯간지러운 단어로밖에 설명할 수 없는 그 감정이 리쿠의 안에서 소용돌이쳤다.


 저도 모르는 사이에 무럭무럭 자라나있던 마음을 눈치 챈 순간 덜컥 겁이 났다. 이렇게 견딜 수 없을 정도로 좋아하는데, 옆에 있어도 더 보고 싶을 만큼 좋아하는데, 그가 어느 날 갑자기 사라져버리면 어떡하지.


 “좋아한다고 해서…… 계속 함께한다는 보장은 없는 걸…….”


 베개에 얼굴을 묻고서 우물거리듯 내뱉은 말은 텐의 귀에도 들어가고 말았다. 리쿠가 그것을 왜 두려워하는지 텐은 모를 수가 없었다. 잘못은 제게 있다. 한 번 겪어봤으니 벌써부터 겁이 나는 것도 당연했다. 언제나 리쿠의 고민을 해결해주던 텐이었으나 이번은 쉬이 입을 열 수가 없었다. 지나간 시간들이 텐을 푹 찔러왔다.


 리쿠라고 해서 텐의 침묵을 느끼지 못하는 것은 아니었다. 텐에게 이렇게까지 속마음을 털어놓을 생각은 없었다. 말하다 보니 자연히 흘러 넘쳐서 말을 정리하지 못한 것이 실수였다. 하지만 어떡해. 이게 진짜 내 고민인 걸. 이제 와서 텐을 원망하고 싶은 것은 아니었다. 다만 그 때의 감각과 기억은 아무리 해도 지워지지 않을 불변의 상처임이 분명했다. 또 상처입고 싶지 않았다.


 “리쿠.”

 “으응?”


 착 가라앉은 침묵 속에서 텐이 조심히 리쿠를 불렀다. 우울한 동생의 얼굴은 언제나 형을 더욱 우울하게 만들었다.


 “자세히 봐 봐. 나랑 정말 눈이 닮았는지.”

 “무슨 소리야? ……아.”


 멍하니 눈을 깜빡이던 리쿠는 뒤늦게 흘러간 대화를 상기해냈다. 텐은 정말 아무말 없이 리쿠를 빤히 바라보고 있었다. 다소 새침한 눈매 속에 옅은 분홍빛이 반짝였다. 새삼스럽지만 정말 예쁜 눈이었다. 리쿠는 기억을 더듬어 이오리의 눈을 떠올렸다. 실은 이미 머릿속에 가득해서 더듬을 필요도 없었다. 크기는 조금 더 작았지만 그 편이 이오리에겐 더 잘 어울렸다. 짙은 머리칼보다 살짝 밝은 색의 눈도 꼭 이오리다웠다. 투명한 눈동자는 자주 리쿠의 얼굴을 그 안에 담아냈다.


 “……안 닮았을지도.”

 “그렇지?”


 기대했던 대답인지 텐이 싱긋 웃었다.


 “그러니까 괜찮아.”


 불행히도 지금까지와 달리 리쿠는 이 말의 뜻을 바로 알아차리고 말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