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D 2.5D NOTICE GUEST

 쥬자는 맛있어 보이는 디저트를 눈앞에 두고 벌써 이십 분째 고민하고 있었다. 의상 만드는 것을 돕느라 늦게 자리에 앉은 타이치가 먼저 디저트를 다 먹을 정도였다. 요리 뒷정리까지 싹 마친 오미가 타이치의 옆에 앉더니 조심히 물었다.


 “아직 안 먹은 거야?”

 “네에…… 무슨 일이 있던 검까?”

 “음, 잘 모르겠는데. 어제까지만 해도 맛있게 먹어줬고.”


 오미도, 타이치도 짐작가는 것이 없었다. 둘이 힐끔거리고 자꾸 쳐다보는 데도 눈치채지 못하는 걸 보면 정말 진지하고 심각하게 고민 중인 게 틀림없었다. 결국 쥬자는 디저트를 한 입도 먹지 않은 채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제야 오미와 타이치가 저를 빤히 보고 있단 사실을 알았는지 쥬자가 민망한 듯 고개를 돌렸다.


 “쥬자, 어디 아프기라도 한 거야?”

 “……아닙니다.”


 빠르게 대답한 쥬자가 도망치듯 방으로 사라졌다. 상태가 멀쩡한 걸 보면 정말 아픈 것 같지는 않은데.


 “쥬자씨에겐 너무 싱거웠던 거 아닐까요? 제 입맛엔 딱 맞긴 한데, 좀 달게 먹으니까.”

 “쥬자 몫은 따로 초콜렛 같은 걸 더 넣어서 만들고 있어.”

 “정말임까?”


 놀란 타이치의 눈이 휘둥그레졌다. 호기심을 이기지 못하고 타이치가 건너편에 있던 디저트를 포크로 쿡 찔렀다. 그리고 입에 넣은 순간, 제 추측은 말도 안 되는 것이 되었다.


 “윽! 너무 달아…….”

 “하하. 그럼 그 이유는 아닌 것 같네.”


 으엑. 혀가 녹을 정도로 달달한 감각에 타이치가 잔뜩 인상을 쓰자 오미가 알아서 물을 갖다주었다.


 둘이 그런 대화를 나누고 있단 사실을 전혀 모른 채 쥬자는 방으로 돌아갔다. 둘의 추측과 달리 원인은 반리에게 있었다. 쥬자는 아직 제 룸메이트가 돌아오지 않은 것을 확인하곤 침대에 드러누웠다. 룸메이트라는 말이 틀리진 않았다. 다만 쥬자와 반리 둘의 관계는 고작 그 네 글자로 설명할 수 있는 것이 아니었다. 얼굴만 마주하면 으르렁거리며 싸우고, 별 거 아닌 말 하나에도 다투기 일쑤인 둘의 사이는 앙숙 정도가 가장 적당하겠으나 세상 그 어디에서도 앙숙인 상대랑 입을 맞추진 않았다. 가슴을 더듬거나 허벅지를 만지고 서로의 것을 흔드는 일은 더더욱.


 반리가 실수인 척 가져왔던 술을 같이 마셨다가 반 나체 상태로 눈을 뜬 그 날이 분명 기점이었다. 그러나 꼭 그날만이 문제였다고 볼 수는 없었다. 술에 취했다고 해서 모든 사람과 그 짓을 하진 않을 테니까. 몇 번의 자기부정과 상대에 대한 비난을 거쳐 둘은 끝내 인정하고 말았다. 이 놈이랑 하는 건 생각보다 기분 좋으니까 앞으로도 계속 하자고.


 그러니 분명 흔해빠진 수식어로는 설명할 수 없는 사이였다. 몸을 섞기는 해도 낯간지러운 단어가 어울리는 형태는 아니었다. 좋아한다고? 사귄다고? 누군가 그렇게 물으면 둘 다 있는 대로 얼굴을 구기며 주먹을 들지도 몰랐다. 내가 이 새끼랑? 말도 안 되는 소리.


 그렇다고는 해도, 한두 번도 아니고 꽤 여러 번 몸을 섞는데 아무 감정이 없다면 거짓이었다. 정확히 무엇이라 정의해야 할지는 몰라도 쥬자는 일단 반리를 신경쓰고 있었다. 그가 장난 식으로 건넨 말 때문에 좋아하던 디저트를 포기해야 할 정도로.


 반리가 쥬자에게 그 말을 한 것은 분명 어제 오후였다.


 “효도, 안 씻냐?”

 “뭐냐, 갑자기.”

 “안 씻은 애랑 하고 싶진 않아서.”


 가을조는 한동안 무대에 설 일이 없는지라 둘은 시간이 남아 돌았다. 극단에 들어온 후로 싸움질도 그만둔 반리는 말 그대로 심심하고 지루해서 좀이 쑤셨다. 그러다보니 자연스럽게 쥬자와 붙어 먹는 시간이 늘었다. 성실하게 개인 연습까지 마치고 온 쥬자를 보자마자 반리가 그를 재촉했다. 물론 기다리고 있었다고는 입이 찢어져도 말하지 못할 터였다.


 나한테 명령하지 마, 내가 왜 너랑? 따위의 말을 하면서도 쥬자는 곧 씻고 나왔다. 어차피 그럴려고 한 것도 있었고, 반리와 같은 생각이 없는 것도 아니었다. 애당초 일방적인 강제가 성립하기 힘든 사이였다. 대놓고 말할 일은 없겠지만 둘은 이 재수없는 놈과 하는 그 짓이 제법 만족스러웠다.


 쥬자는 대충 수건만 걸치고 나왔다. 침대에 기대어 누워 있던 반리가 벌떡 일어났다. 넌 안 벗냐. 쥬자의 타박에 반리는 실실 웃으며 옷을 벗었다. 슬금슬금 쥬자에게로 다가가던 반리가 대뜸 말했다. 이게 문제였다.


 “어이, 효도. 너 살찐 거 아니냐?”

 “뭐?”

 “여기 봐. 좀 말랑해진 것 같은데?”


 반리가 낄낄거리며 쥬자의 옆구리 쪽으로 손을 뻗었다. 간지럽히는 손길에 쥬자가 꿈틀거리며 몸을 틀었다. 어이, 만지지 마! 터지는 웃음을 꾹 참으며 말하는 것이 퍽 귀여워 반리가 눈을 빛냈다. 맨날 험악하게 얼굴 찌푸리던 놈이 이런 반응을 보이면 재밌단 말이지. 반리는 아예 자세를 갖추곤 쥬자를 향해 달려들었다. 몇 번 그 손길을 대충 피하던 쥬자도 결국엔 온힘으로 그 팔을 잡아 막아야 했다.


 “그러는 너도 탄탄한 편은 아니잖아.”

 “뭐…… 나는 그 편이 잘 어울리니까 괜찮잖아. 잘생겼고.”

 “진심으로 하는 소리냐?”

 “너도 눈이 있으면 알 거 아냐.”


 제 턱을 매만지며 반리가 씩 웃어 보였다. 아예 쥬자 쪽으로 얼굴을 쭉 빼는 것도 잊지 않았다. 쥬자는 그런 반리의 얼굴을 밀어내며 투덜거렸다.


 “헛소리 하지 말고 저리 치워.”

 “효도, 네 기준이 이상한 거라고.”


 쥬자는 그 말에 아니라고 반박하지 않았다. 재미 없어진 장난은 그만 두고 침대로 걸어가는 반리의 뒷모습을 보며 낮게 혀를 찼을 뿐이었다. 말 안해도 안다고, 그런 거.


 “빨리 오기나 해. 살도 찌고 무거워졌을 테니까 오늘은 내 위에 올라타지 말고.”

 “멋대로 굴지 마.”


 으르렁거리며 쥬자는 힐끔 제 몸을 내려다보았다. 싸움도 끊었고, 연기 연습을 하느라 운동도 전혀 하지 못했다. 더군다나 매번 새로운 음식을 시도하는 오미 덕에 먹는 양은 훨씬 늘었다. 어쩌면 정말 살이 쪘을지도. 쥬자는 매끈한 배를 문지르며 얼굴을 구겼다.


 그냥 지나가듯 한 말이고 큰 뜻이 없을 거라는 걸 알면서도 쥬자는 자꾸 그게 신경쓰였다. 그래도 저보다 비리비리하다고 생각했던 놈에게 이런 쪽으로 밀리고 싶지 않은 마음도 있었다. 오미가 손수 만들어주는 디저트를 애써 거절하는 일이 몇 번 반복되자 이젠 감독을 비롯한 다른 사람들까지 쥬자를 신기한 눈으로 바라보기 시작했다.


 “입맛이 바뀐 거네요!”

 “……그렇게 한 순간에?”


 여전히 뒤에서 온갖 추측을 늘어놓는 타이치와 오미를 뒤로 하고 쥬자는 방으로 향했다. 마침 반리도 방금 들어 왔는지 바로 문앞에 서 있었다.


 “어이, 효도.”

 “뭐냐.”


 반리가 방 문을 여는 쥬자를 불렀다. 반리는 조금 피곤한 얼굴이었다.


 “너 무슨 일 있냐?”

 “무슨 소리야.”

 “자꾸 다른 조원들이 귀찮게 묻는다고. 효도가 이상하다느니 변했다느니 하면서. 왜 너한테 무슨 일이 있으면 다 내 탓이라고 생각하는 거야. 귀찮아, 진짜.”


 정말 그 원인이 네가 맞다고 쏘아붙이고 싶은 마음을 꾹 참은 채 쥬자는 고개를 휙 돌렸다. 반리는 쥬자의 대답이 크게 궁금하지 않았음에도 그런 태도에 조금 부아가 치밀었다.


 “사람이 물었으면 대답을 해야지, 새끼가.”

 “꺼져.”

 “오랜만에 해보자는 거냐?”

 “그럴 마음 없어.”

 “그 따위로 나오는 게 완전 있어 보이는데?”


 별 것도 아닌 대화에 언성이 점점 높아졌다. 익숙한 소음인지 둘을 말리러 오는 사람도 없었다. 짜증을 숨기지 않은 채 반리가 들고 있던 것을 방 안으로 휙 던져버렸다. 반리의 손에 무언가 들려 있었단 사실을 쥬자는 지금 알았다. 쇼핑백에 담겨 있던 네모난 상자가 밖으로 밀려나온 것이 쥬자의 눈에 들어왔다. 익숙한 이름에 익숙한 모양이었다. 얼마 전까지만 해도 맛있게 먹었던 카메키치 만쥬였다.


 “요즘 네 놈 상태가 이상하다고 감독쨩이 특별히 챙겨준 거라고. 일부러 가져오기까지 했더니 사람 짜증나게 만들고.”


 실은 반리가 먼저 감독에게 말을 꺼낸 거였다. 요즘 당 떨어진 것 같이 구니까 뭐라도 필요할 것 같다고. 어차피 말 할 생각도 없었지만, 일이 이렇게 된 이상 죽어도 말할 수 없었다. 처음부터 신경쓰는 게 아니었다. 뭐가 어찌 됐든 내 알 바 아닌데 대체 왜. 제 행동을 후회하며 반리가 씨근거렸다.


 쥬자는 쏟아져나온 만쥬 상자에서 눈을 떼지 못했다. 먹고 싶은 건 사실이었으나, 하필이면 그 말을 한 당사자가 이런 음식을 들고 오다니 아이러니한 일이었다.


 “필요 없으니 다시 돌려주겠다.”

 “엉? 기껏 가져왔더니 그게 할 소리냐?”


 이젠 이 놈한테 신경 안 쓰겠다고 마음 먹은지 몇 초도 지나지 않았는데 반리는 다시 또 화가 났다. 속이 쓰릴 정도로 단 음식을 좋아하는 주제에 왜? 설마 내가 가져와서? 괜히 삐죽거리는 마음이 솟았다. 그럴까 봐 감독 핑계까지 댔는데. 눈치도 느린 편인 쥬자가 그 거짓말을 알아차렸을 리도 없었다.


 “……어쨌든, 이제는 먹지 않아.”

 “뭐야, 이제 와서 폼이라도 잡는 거냐? 이미 다 안다고, 그 이상한 식성.”

 “누구 때문이라고 생각하는 거냐.”

 “누구 때문인데?”


 쥬자가 혀까지 차며 뱉은 말에 반리가 눈을 크게 뜨고 반문했다. 설마 그 부분을 되물을 줄은 몰랐는지 쥬자의 눈도 덩달아 커졌다. 쥬자가 놀란 표정을 짓는 것은 꽤 드문 일이라 반리가 눈이 게슴츠레해졌다.


 “뭐야. 누구 때문인데.”


 왜 짜증이 나는지도 모르고 날선 목소리로 다시 물었다가 반리는 문득 깨달았다. 며칠 전의 대화가 불현듯 떠올랐기 때문이었다.


 “설마 내가 했던 말 때문이냐?”

 “…….”


 칫. 혀를 깨물며 고개를 돌리는 것이 그렇다는 답보다 더 많은 것을 말하고 있었다. 뭐야, 내가 한 말을 신경 쓰고 있었어? 조금 전까지 때리고 싶다고 생각했던 것이 무색하게 갑자기 기분이 나아졌다.


 반리는 물끄러미 쥬자를 바라보았다. 시선을 피하지 않고 빤히 바라보고 있으려니 다소 어두운 피부가 조금씩 붉어지는 것이 보여서 반리는 괜히 기분이 좋아졌다. 기분이 좋아진 나머지 반리는 평소라면 하지 않았을 생각까지 하고 말았다. 효도 자식, 좀 귀엽네. 인식하고 나면 스스로를 때려 죽일지도 모르는 생각은 한 걸음 더 나아가 반리에게 지시했다. 반리는 머리가 시키는대로 몸을 움직여 쥬자를 거칠게 붙잡았다.


 쥬자의 멱살을 틀어쥔 채 반리는 무작정 입술을 들이밀었다. 주먹질이라고 생각한 쥬자가 고개를 비트는 바람에 입술은 원하던 곳이 아니라 어정쩡하게 턱 부근을 찍고 말았지만 반리는 포기하지 않았다.


 “고개 좀 돌려!”

 “뭐 하는 건데!”

 “눈치 없이 그런 걸 말해야 아냐?”


 조금 화가 난 얼굴로 반리가 빽 소리를 질렀다. 언뜻 보면 시비를 걸 때랑 비슷한 눈이지만 그 안에 섞여 있는 열기가 분명 달랐다. 침대 위에서 붙어 먹기 전에 하는 표정이었다. 조금 머뭇거리던 쥬자도 이내 반리의 머리통을 잡고선 먼저 입을 맞춰왔다.


 입술이 부딪히고 혀가 섞였다. 여느 때와 달리 단 맛이 나지 않는 키스가 색달랐다. 혀끝을 아리는 단맛이 없는 키스는 처음이었다. 그 순간, 반리는 늘 순정 만화를 끼고 다니는 누군가나 할 법한 생각을 했다. 어떻게 보면 첫키스 같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