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D 2.5D NOTICE GUEST

1.


 다른 이들과 교류를 꺼린지 얼마나 되었을까. 인적이 드문 산 속 깊은 곳에서 살고 있지만 레이는 딱히 외롭다고 생각하지 않았다. 정확히는 ‘더 이상’ 그렇게 생각하지 않았다. 너무 오래 전 일이라 감각마저 아둔해진 것이 분명했다. 평생 달랠 수 없는 외로움을 끌어 안고 사느니 차라리 이 편이 나았다.


 그래서 멀지 않은 곳에서 아이의 울음소리가 들렸을 때 레이는 제가 꿈을 꾸고 있는 줄 알았다. 아무리 나무가 빽빽해 햇빛이 거의 들지 않는 어두운 곳이라곤 해도 아직 낮이니 잠들어 있을 시간이기도 했다. 허나 훌쩍거리고 우는 소리는 꿈이라기엔 너무도 생생했고, 모르는 척 하기엔 제법 가까웠다. 불쑥 솟은 변덕이 레이에게 나갈 것을 재촉했다. 레이는 근처에 있던 망토로 대충 몸을 두르고 오랜만에 밖을 나섰다.


 흡혈귀가 살고 있다는 소문은 몇 백 년이 지난 지금까지도 마을에 파다했다. 성인도 접근하지 않는 곳에 어린 아이가 일부러 찾아올 리는 없었다. 길을 잃었다거나 어쩌면 버림 받은 것일 수 있었다. 아주 간혹 이 근처에 아이를 버리고 가는 경우가 있었다. 불행인지 다행인지 레이는 그 때마다 자리에 없었어서 이미 차갑게 굳은 시체를 발견하곤 잘 묻어주었던 게 다였다.


 울다가 지쳤는지 울음 소리가 잦아들었다. 레이는 간헐적으로 들리는 훌쩍거림을 용케도 듣고 그 쪽으로 향했다. 레이의 허리춤에도 오지 않을 법한 어린 아이가 나무 기둥에 기대어 울고 있었다. 팔로 얼굴을 가린 채였으나 언뜻 보기에도 열 살도 안 되어 보인 게 분명했다. 울고 있던 아이는 낙엽이 밟히는 소리에 드디어 고개를 들었다. 젖은 녹색의 눈동자가 레이를 올려다보았다.


 “……길이라도 잃었누.”


 아이는 또 다시 울음을 터뜨릴 것처럼 얼굴을 잔뜩 일그러뜨리곤 세차게 고개를 끄덕였다. 요즘 마을엔 흉년이 들었다고 하니 먹을 것을 찾으러 산 속까지 온 걸까.


 “이쪽은 완전 반대 방향이구먼. 저리로 돌아서 곧장 내려가면 마을이 나올 게야.”


 레이는 친절하게 손으로 방향까지 가리키며 알려주었다. 허나 아이는 설명을 듣고도 여전히 눈만 깜빡일 뿐이었다. 아이가 알아듣기엔 어려운 설명이었을까? 레이는 다시 한 번 차근차근 설명했다. 마을로 내려가는 길 쪽엔 다행히 이정표가 될 만큼 커다란 나무가 있어서 거기까지만 간다면 길을 잃지 않을 수 있었다. 레이의 두 번째 설명이 끝났지만 아이는 이번에도 그 자리에서 꼼짝도 하지 않았다. 역시 보러 오는 것이 아니었는데. 괜히 헛수고를 한 기분이 들었다.


 더 말해주는 것도 귀찮아서 레이는 등을 돌렸다. 요 며칠 먹은 것이 없다 보니 피곤하기도 했다. 레이가 걸음을 옮기기 시작하자 멀뚱멀뚱 가만히 서있던 아이도 그제야 몸을 움직였다. 문제는 아이가 가르쳐준 방향이 아니라 레이의 뒤를 따라오는 데에 있었다. 몇 걸음 가지 않아 레이가 의아한 듯 물었다.


 “내게 볼 일이라도 있누?”

 “유, 유우타…….”

 “음?”

 “유우타가 없어서…….”


 우물쭈물 내뱉은 아이의 눈에 다시 눈물이 차올랐다.


 “누군지 모르겠구먼.”

 “흑, 동생…….”


 동생. 익숙하고도 그리운 단어에 레이가 잠시 멈칫했다. 레이에게도 동생이 있다. 있었다. 그 동생이 레이를 떠난지 얼마나 되었을까. 레이는 세보지 않아서 모르겠다고 푸스스 웃었지만 실은 알고 있었다. 그 날은 레이에게 있어 결코 잊을 수 없는 전환점이니까. 날카로운 눈으로 저를 바라보던 사랑스러운 동생의 모습. 그리고 캐묻던 목소리. “형, 진짜로 사람이 아니야?” 레이의 머뭇거림을 어떤 식으로 해석했는지 리츠는 입술을 깨물고선 낮게 토해냈다. “……괴물.” 그 뒤에 레이가 정말로 그 괴물이 아니었다면 듣지 못했을 정도로 아주 작게 중얼거렸던 말이 레이의 가슴에 꽂혔다. ‘무서워.’


 레이는 동생의 곁을 떠났다. 실은 도망쳤다. 리츠가 저보다 먼저 저를 저버리기 전에, 제가 사라져야 겠다고 생각했다. 떨어져야 하는 건 같더라도 이 편이 덜 아팠다. 레이는 어린 제 동생을 원망하지 않았다. 다만 슬펐을 따름이었다. 종족이 다르다는 건 서로 이해할 수 있는 영역이 그만큼 좁다는 의미이기도 하다. 그래도 같이 있던 시간은 레이가 여태 살아온 시간을 통틀어도 단연 제일이라 할 수 있을 만큼 행복했으니 그것으로 족했다.


 “어떻게 생겼누?”

 “나랑 똑같이…….”

 “이런.”


 퍽 정겨운 단어에 다시 변덕을 부린 레이가 아이에게 물었다. 돌아온 대답은 꽤 절망적이었다. 이 마을에서 쌍둥이는 흉조다. 더군다나 근래 흉년이 계속 되고 있다고 하니 그 화살이 이 아이들에게 돌아가는 것도 무리는 아니었다. 길을 잃었다곤 했지만 정말 단지 그 뿐일까? 다시 보니 아이의 몸은 이미 상처투성이었다. 산을 헤집고 다니느라 얻은 상처도 있겠지만 오래된 멍울은 그것만이 전부가 아님을 보여주고 있었다. 한 쪽이 이 상태면 다른 한 쪽도 비슷하겠지.


 쌍둥이가 흉조라는 것은 그저 인간들 사이에서 통하는 미신일 뿐이다. 실제로 쌍둥이는 그 어떤 영향도 미치지 못한다. 그보다 더한 능력을 지닌 저 자신조차도 인간들의 삶을 어찌 할 수가 없는데 한낱 인간이 무슨 수로 그런 일을 하겠는가. 감정이나 마음이 아예 사라진 것은 아닌지 눈 앞의 아이가 조금 측은해졌다.


 “발견하면 알려주마.”


 측은한 나머지 레이는 불가능한 약속을 했다. 착한 거짓말이 아이에겐 더없는 희망처럼 보였는지 내내 울상이던 아이가 활짝 웃었다. 정말? 살짝 높아진 목소리가 귀여웠다. 웃는 얼굴이 더 예쁘네. 그런 생각이나 하고 있는 사이, 아이가 제 손을 옷에 슥슥 문지르더니 이내 새끼 손가락을 불쑥 내밀었다. 놀란 레이가 눈을 둥그렇게 뜨자 아이가 밝게 웃었다.


 “약속!”


 레이가 그것이 의미하는 바를 모르진 않았다. 한 적이 없으니 당황했을 뿐. 이내 레이는 푸근히 웃으며 똑같이 새끼 손가락을 내밀었다. 아이의 작은 손가락이 레이의 손가락 한 마디를 겨우 가렸다. 



2.


 얼마 전에 있었던 일의 반복인가. 느긋히 누워 있던 레이는 다시금 들리기 시작한 울음 소리에 멍하니 생각했다. 익숙한 울음 소리다. 분명 저번에 보았던 그 아이일 것이다. 그 후로 무슨 일이 생긴 것일까. 아무 일도 없다면 그 편이 더 이상하긴 했다. 해가 저물도 날도 어둑어둑해졌을 때라 레이는 그 차림 그대로 밖으로 나갔다.


 자세히 들어보니 울음 소리가 지난 번과 달리 가냘펐다. 울다 지쳐서 그런 것일까. 단순히 그렇게 치부하기엔 어딘가 불안했다. 레이는 저도 모르게 걸음을 빨리했다. 곧 멀지 않은 곳에서 쓰러져 있는 아이를 발견할 수 있었다. 그 언젠가 레이가 보았던 아이의 시체들과 꼭 같은 모습을 하고선 아이는 아무렇게나 널부러져 있었다.


 다가간 레이가 무릎을 굽혀 아이의 상태를 살폈다. 매질을 당했는지 성한 구석이 없었다. 귀엽다고 생각했던 얼굴도 반쯤은 부어올라 엉망이었다. 아이는 숨소리마저 연약했다. 레이가 금방이라도 끊어질 듯한 울음 소리를 들은 것이 용했다.


 괜찮냐고 물을 필요조차 없었다. 레이가 아이를 보는 동안 아이가 팅팅 부어오른 눈으로 상대가 누구인지를 확인했다. 레이인 것을 확인하자 아이가 다급하게 레이의 손가락을 쥐었다. 상처 범벅인 얼굴에 눈물이 주르륵 흘렀다.


 “유우타…….”


 저번에도 들었던 동생의 이름을 뱉으며 아이가 힘겹게 흐느꼈다. 무슨 일이 있었냐고 묻지 않아도 알 수 있었다. 유우타, 흑, 흐윽, 잔뜩 떠는 목소리가 결과를 말해주고 있었다. 동생은 이미 이 생에 존재하지 않을 것이다. 그 마지막 역시 평화롭진 않았을 터였다. 지금 눈앞의 아이의 몰골보다 더하면 더했지, 덜하진 않을 테니.


 죽음을 목전에 두고도 울면서 하는 말이 동생의 이름이었다. 아이에 대해 잘 알지도 못하지만 레이는 어쩐지 그 사실에 마음이 동했다. 시도 때도 없이 변덕을 부리곤 하는 존재이니, 지금 이 행동도 그 변덕 중의 하나임이 틀림없었다. 레이는 손을 뻗어 아이의 눈을 감겼다. 아이는 죽음을 기다리는 사람처럼 축 늘어졌다.


 레이는 아이의 여린 목덜미에 이를 세웠다. 아주 약하게 힘을 주어 피를 빨았다. 레이의 손을 쥐고 있던 아이가 꿈틀거렸다. 아아, 아으으…… 앓는 소리가 반복됐다. 레이는 목을 부러뜨리지 않게 조심하며 아이의 목덜미에 두 개의 구멍을 냈다. 오랜만에 맛 보는 인간의 피는 향긋하고 달콤했다. 레이는 자칫 이성이 날아가지 않게 치솟는 본능을 억지로 꾹꾹 담아눌렀다. 죽이려고 하는 행위가 아니었다. 오히려 레이는 아이에게 생명의 숨을 불어넣는 중이었다. 그리고 그 표현 그대로, 레이는 피가 묻은 입술을 닦지도 않고 아이의 작은 입술에 입을 맞추었다. 억지로 입 안을 타고 흘러내린 피가 아이의 안을 뜨겁게 달구었다.


 고통과 변화는 순식간이었다. 아이는 힘이 없어 비명을 내지르지도 못했다. 아이가 울부짖을 때마다 레이가 입을 맞춰준 덕도 있었다. 마침내 아이가 깨끗한 모습으로 눈을 떴다. 마주친 맑은 녹색 눈동자가 잠깐 붉은 빛으로 번쩍였다.


 “기분은 괜찮누?”

 “더워…….”

 “그래, 멀쩡하구먼. 금방 식을 테니 이젠 그쪽에 익숙해져야 할 게야.”


 아직은 힘이 없을 아이를 품에 안은 채 레이가 몸을 일으켰다. 아이는 어색하게 레이의 목덜미에 팔을 둘렀다. 누군갈 안아본 적 없는 사람이 하듯이.


 “이름이?”

 “……히나타.”


 히나타. 레이가 이름을 부르자 아이가 잠깐 어깨를 떨었다. 레이는 자신의 이름조차 어색하게 여기는 아이의 등을 쓸었다. 레이가 몇 걸음 떼지 않았을 때, 가만히 안겨 있던 아이가 조심히 물었다.


 “아저씨는요?”


 아저씨라는 호칭에 레이가 작게 웃었다. 이름을 대는 것은 오랜만이었다.


 “레이…….”


 아이가 중얼거리는 소리를 들으며, 레이는 제 이름을 어색하게 여기는 건 자신도 마찬가지라는 걸 그제야 깨달았다.



3.


 히나타를 데리고 와서 레이는 예상 못한 문제에 부딪혔다. 사람의 피를 마시지 않는 저는 동물의 피를 마시면 그만이었으나 히나타는 달랐다. 히나타는 이제 막 인간이 아닌 다른 존재가 된 미숙한 아이였다. 그것으로 족할리 없었다. 무엇보다 인간의 음식을 먹고 자란 히나타에겐 동물의 피가 입에 맞지도 않았다. 그렇다고 인간이 아니게 된 지금 인간의 음식을 먹을 수 있느냐 하면 그것도 아니었다.


 배불리 먹은 날보다 굶은 날이 더 많아 히나타는 배가 고파서 딱히 레이를 보채진 않았다. 그런 점이 오히려 레이를 더 신경 쓰이게 만들었다.


 “뭐라도 먹어야지.”

 “……응.”


 동물의 피나 인간의 음식을 가져다주면 히나타는 인상을 잔뜩 쓴 채 억지로 그것을 입에 욱여넣었다. 결국 보다 못한 레이가 그릇을 뺏었다. 이런 식으로 먹이게 하고 싶진 않았다. 레이는 잠시 고민하다 제 손가락을 히나타의 입가에 가져다댔다. 영문을 알지 못 해 눈만 끔뻑이던 히나타가 곧 천천히 레이의 손가락을 물었다. 아이처럼 입 안에 넣고 쪽쪽 빠는 히나타를 보는 레이의 입꼬리가 슬며시 올라갔다.


 “아가, 이를 세워야지.”


 낮게 웃은 레이가 히나타의 작은 입술을 열고선 빼꼼 솟은 송곳니를 톡톡 두드렸다. 히나타는 여전히 잘 모르겠단 얼굴이었다. 하는 수 없이 레이가 직접 제 손가락으로 히나타의 송곳니를 쿡 찔렀다. 두어 번 반복하자 곧 피부가 찢기고 검붉은 피가 방울방울 맺히기 시작했다. 히나타가 조심스레 그것을 핥았다.


 레이는 그 순간 놀라움이 환하게 번지던 히나타의 얼굴을 잊을 수 없었다. 아마 태어나서 처음으로 먹어보는 맛있는 음식일 터였다. 히나타는 레이의 손을 쥐고선 정신없이 그것을 빨았다. 피를 빠는 것이 처음인 히나타처럼, 레이 역시 피가 빨리는 건 처음이었다. 이거 기분이 상당히……. 오묘한 감각에 레이가 절로 어깨를 움츠렸다. 히나타는 행복한 표정으로 흐르는 피를 탐했다.


 제법 배가 부를 정도로 피를 빨고 나서야 히나타는 레이의 손가락을 놓아주었다. 레이가 히나타의 입가에 묻은 것을 닦아주려 하자 히나타가 그것을 거부했다. 대신 의아한 표정의 레이 얼굴을 잡고서 입술을 겹쳐왔다. 제가 그 날 그랬던 것과 똑같은 행동을 하는 히나타에 어떻게 대응할지 고민하던 레이는 이내 그 작은 등을 끌어안고 말았다. 기실 조금 전처럼 혀를 내어 안쪽을 핥는 입맞춤은 썩 나쁜 기분도 아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