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D 2.5D NOTICE GUEST

 깊은 산 속에 콧노래가 너울거렸다. 이따금 휘파람이 그 빈틈을 메우기도 했다. 흥얼거리던 쿠훌린이 걸음을 멈춘 것은 제 신전에서 동물이 아닌 인간의 기척이 느껴졌기 때문이었다. 이런 산 속에 인간이 찾아오는 경우는 거의 없다. 있다 하더라도 뻔뻔하게 도움을 바라거나 구원을 빌미로 무언갈 바칠 때가 전부였다. 그리고 그럴 때면 인간은 결코 혼자 오지 않았다. 마을 사람들이 죄다 우르르 몰려와선 온갖 바람을 줄줄 외다가 가는 게 다였다. 그러니 제 발소리를 감추지조차 못 하는 이 인간은 쿠훌린에게 있어 꽤 미지의 방문자인 셈이었다.


 지루하기 짝이 없는 일상보다는 이런 예상 못한 상황이 훨씬 반갑다. 제 아래에 넙죽 엎드리는 인간들을 싫어하는 건 아니지만 그보다는 패기 넘치게 덤벼오는 쪽이 더 즐겁기도 했다. 뭐든지 의외의 순간이 재밌는 법이었다. 그래도 이런 걸 생각한 건 아니었는데.


 쿠훌린이 기대를 담아 신전에 도착했을 때 보이는 건 붉은 머리를 한 웬 아이였다. 인간의 나이를 가늠하긴 어렵지만 끽해야 열 둘, 열 셋 정도 되어 보이는 얼굴이었다. 아무리 쳐도 열 다섯은 되지 않았을 그 아이는 똑바로 섰는데도 쿠훌린의 허리께밖에 오질 않았다. 쿠훌린이 멍청한 얼굴로 서있자 아이가 금색 눈동자를 때록때록 굴리며 앞으로 천천히 다가왔다. 겁도 없지. 머리를 조아리는 것도 아니고 도망치는 것도 아니고 직접 다가오다니. 쿠훌린이 멍하니 생각했다.


 “어이, 꼬마. 여긴 무슨 일이냐.”


 쿠훌린은 뒤늦게 물었다. 아이는 눈을 깜빡깜빡하더니 대답 대신 제 양 손을 내밀었다. 예쁘게 포장된 것은 아니지만 양 손목이 얼기설기 묶여 있긴 했다. 그제야 쿠훌린이 아이의 행색을 살폈다. 깨끗한 흰 옷에 맨발. 저 뒤에 별별 음식이 차려진 것까지 더해서 그 의도가 명백했다.


 “나 참. 이런 걸 바치라고 한 적은 없는데.”


 지금 뿐일까. 쿠훌린은 단 한 번도 인간들에게 무언갈 바치라고 언급한 적이 없었다. 그저 인간들이 멋대로 와서 음식이니 동물이니 하는 것들을 두고 갈 뿐이었다. 정확히는 그와 함께 원하는 바람을 같이 엮어서. 쿠훌린은 삐뚜름하니 서서 아이를 내려다보았다. 신까진 아니어도 인간을 멋대로 주무를 만큼의 힘은 갖고 있으니 쿠훌린이 경애의 대상이 되는 건 당연한 일이었다. 인간은 신을, 그와 비슷한 존재를 숭배하고 동시에 두려워한다. 그런 이에게 제물로 바쳐지는 것이 어떤 것인지 모를리 없었다. 그럼에도 아이의 눈에는 공포나 두려움을 찾아볼 수가 없었다. 이따금 체념의 빛이 스치기도 했으나 그것도 잠시였다. 아이는 그저 원래 그런 것인냥 아주 당연하게 쿠훌린의 앞에 서 있었다.


 인간을 먹을 수는 있다. 입맛에 맞지도 않고 취향도 아니라 제쳐둘 뿐이다. 더군다나 이런 아이를 삼켜봤자 기별도 가지 않을 것이 뻔했다. 돌려 보낼까. 허나 한 번 제물로 바쳐진 아이가 멀쩡히 돌아온다면 오히려 그 후가 더 멀쩡하지 못할 것이다. 이거 곤란하게 됐구만. 쿠훌린이 난처한 듯 턱을 쓸었다.


 “그나저나 영 조용하네. 꼬맹아, 이름은 뭐냐.”


 이름을 묻는 건 아이를 인정했다는 뜻이었다. 먹잇감에게 굳이 이름을 묻는 경우는 없으니까. 아이는 느릿느릿 눈을 감았다 떴다. 입술이 잠깐 열렸으나 그뿐이었다.


 “말하기 싫은가. 안다고 해서 딱히 불러줄 것도 아니다만.”

 “…….”

 “흐음. 내가 인간과 어울려 사는 건 아니지만 제법 오래 살았단 말이지. 그래서 늙은 놈도 너처럼 어린 놈도 발에 치일 정도로 보고 다녔다. 그렇게 많은 인간을 봤어도 이런 얼굴은 흔치 않아.”


 쿠훌린이 허리를 숙여 불쑥 얼굴을 들이밀었다. 당황한 듯 아이의 눈동자가 둥그렇게 커졌다. 생김새를 말하는 게 아니었다. 굳이 외형을 따지자면 특징이 없을 정도로 지극히 평범했다. 쿠훌린이 말하고자 하는 건 그런게 아니라,


 “뭘 이미 죽은 사람처럼 굴고 있냐.”


 응당 살아 있는 이에겐 있어야 할 생기라는 것이 존재하지 않는다는 점이 아이의 문제였다. 그건 나이에 관계 없는 것이다. 나이가 많든 적든 힘이 세든 약하든 살아 있다면 누구나 일정량의 마력을 두르고 있다. 끝도 없이 높아질 수는 있어도 결코 어느 수준 이하로는 떨어질 수 없는 살아 있다는 증거와도 같은 것. 허나 눈앞의 아이는 그 아슬아슬한 경계선까지 힘이 떨어져 있는 상태였다. 외상이 아니라 내상의 문제였다.


 “죽인 놈을 또 죽이는 취미도 없고.”

 “…….”

 “본의는 아니지만 이왕 받은 걸 죽게 내버려두고 싶지도 않고.”


 쿠훌린은 그 점에 마음이 동했다. 흥미가 당겼다는 쪽이 더 맞을 것이다. 나이도 어린 놈이 어쩌다 이 모양 이 꼴이 되었는지 그 과거보단 앞으로 어떻게 성장할 것인지 미래 쪽에 호기심이 생겼다. 어차피 시간은 넘쳐도 할 일은 없는 게 쿠훌린처럼 죽지 않고 오래 사는 이의 숙명이었다.


 잠자코 서있는 아이를 응시하던 쿠훌린이 대뜸 그 손을 낚아챘다. 아이의 흠칫 놀라는 반응이 생각보다 귀여웠다. 감정이 다 죽어 있는 건 아닌가 보군. 그리 생각하며 쿠훌린은 아이의 묶인 손을 풀어주었다. 대충 묶인 끈에 이리저리 쓸렸는지 손목이 반이나 너덜거렸다. 생채기가 나 새빨개진 손목을 쥔 쿠훌린의 손에 힘이 들어갔다. 그리고 아이가 채 반응하기도 전에, 쿠훌린은 그 손목을 죽 당겨 그 위로 제 입술을 찍었다.


 “……아!”


 놀란 아이의 입에서 드디어 탄성이 터졌다. 혀로 상처 위를 슥 훑자 아이가 신음을 흘리며 얼굴을 찌푸렸다. 통증으로 일그러진 얼굴도 꽤 보기 좋아 쿠훌린은 괜히 더 혀를 뾰족하게 세웠다. 반사적으로 아이의 눈이 젖어들었다. 그래도 아이를 울리는 취미는 없지. 쿠훌린은 눈물이 뺨까지 적시기 전에 입술을 떼어 냈다. 그리고 조금 전까지 추측이었던 확신을 입에 담았다.


 “역시. 꼬맹이 너 말을 못 하는 거지?”


 쿠훌린이 다가서자 아이의 작은 어깨가 움찔 떨렸다. 어리다 해도 말을 모를 정도의 나이는 아니었다. 많은 사람 중 굳이 이 아이가 이곳에 오게 된 이유를 이제 알 것 같았다. 쿠훌린은 옅은 한숨을 뱉었다. 작은 숨 하나에 금색 눈동자가 파르라니 떨렸다. 움직일 때마다 흩어지는 붉은 머리를 물끄러미 바라보던 쿠훌린이 결심한 듯 손을 들었다. 길쭉한 손가락이 허공에 무언가를 그렸다. 쭉쭉 쓰여진 룬이 사라지기 전에 손끝으로 꾹 누른 쿠훌린이 왼손으로 아이의 턱을 강하게 잡아챘다.


 “입 벌려.”


  악력에 얼굴을 일그러뜨리던 아이가 절로 입을 벌렸다. 아랑곳 않고 쿠훌린은 글자를 그대로 밀어 아이의 혀 위로 꾹 눌렀다. 놀란 아이가 펄쩍 뛰는 것이 느껴졌다. 쿠훌린은 아이의 눈엔 보이지 않을 룬을 말캉한 혀 위로 꾹꾹 덧붙였다. 찌릿하고 퍼지는 감각에 아이가 제 턱을 쥔 쿠훌린의 팔뚝을 붙잡았다. 밀어낸다고 표현하기엔 가소로울 정도로 힘이 없었다.


 괴롭힐 목적으로 장난 친 것은 아니었다. 잘 새겨넣은 것을 확인한 쿠훌린은 바로 손을 뗐다. 자국이 남아 얼얼한 턱을 붙잡은 채 아이가 연신 기침을 토해냈다. 얼굴 아래를 덮은 붉은 자국에 쿠훌린은 그제야 조금 미안한 마음이 들었다. 이거 힘이 너무 셌나.


 “바로 효과가 있는 건 아니니 시간이 좀 필요할 거야. 뭐, 그것도 네 마음 먹기에 달린 거라 그럴 마음이 없으면 영원히 아무 말도 못 하겠지만.”


 아이는 아직도 아릿아릿 저려오는 혀를 쭉 빼물고만 있었다. 말을 하기는 할까. 살 의지도 없어 보이는 놈인데. 그렇게 생각하면서도 쿠훌린은 다시 룬을 거두거나 하진 않았다. 대신 여태 들었던 무수히 많은 목소리들을 떠올리며 그 중 어느 것이 아이와 어울릴까 짜맞춰보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