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D 2.5D NOTICE GUEST

 치가사키 이타루는 요즘 바쁘다. 다른 사람이 본다면 평소와 별반 다를 게 없는 이타루의 일상 어디가 바쁘냐고 묻겠지만, 최근 이타루의 피로도는 그 전과 차원이 달랐다. 유일하게 이타루의 이상을 눈치챈 건 같이 게임을 하는 반리 뿐이었다. 그 이상의 비밀을 알고 있는 것 역시도.


 평판 나쁜 게임도 그 나름대로의 의미가 있고, 이타루는 의외로 그런 게임을 클리어하는 것에서 보람을 느끼는 편이었다. 오류 가득한 게임을 일부러 사서 플레이 하고 10분 마다 화내는 이타루를 반리가 종종 이상한 눈으로 보기도 했었다. 물론 그렇다고 해서 모든 게임을 평등하게 좋아하는 것은 아니었다. 이타루도 당연히 취향이 있고 좋아하는 장르와 그렇지 않은 장르가 있었다. 그리고 며칠 째 플레이하고 있는 게임은 이타루가 그다지 좋아하지 않는 장르의 게임이었다.


 “저기, 이타루씨. 이런 짓 하지 말고 그냥 말하면 되잖슴까.”

 “그럴까…….”

 “이상한 곳에서 자신감이 없네, 이 사람.”


 딸깍딸깍 습관적으로 버튼을 누르며 이타루가 힘없이 답했다. 뒤이어 들려오는 반리의 혀 차는 소리는 덤이었다. 평소라면 이타루도 짜증을 냈겠지만 지금은 그럴 힘도 없었다. 화면 안에선 잘생긴 남자가 멋진 말을 줄줄 늘어 놓고 있었다. 내가 왜 이런 걸 봐야 하나. 반리의 중얼거림에 이타루도 말없이 동의했다.


 이타루가 지금 하는 게임은 흔히들 오토메 게임이라 부르는 것이었다. 쉽게 말해서 개성 넘치는 미남을 공략하는 게임이었다. 처음에는 귀엽고 예쁜 여자들이 잔뜩 나오는 게임을 선택했지만, 상대방이 남자인 편이 조금 더 도움이 되지 않을까 싶어 노선을 튼 거였다. 어느 쪽이든 크게 도움은 되고 있지 않지만.


 그 치가사키 이타루가 이렇게 답지 않은 짓을 하는 이유는 딱 하나였다. 공략하고 싶은 상대가 생겼다. 게임 안이 아니라, 게임 밖에서.


 이타루가 애를 먹는 것도 당연했다. 몇 년을 거쳐 열심히 만들어낸 영업용 스마일이 절대 통하지 않는 사람이니까. 애당초 그런게 통하는 상대라면 굳이 좋아하지도 않았을 것이다. 자신보다 키도 크고, 나이는 5살이나 어리고, 그런 주제에 동생 취급 하면서 하나하나 잔소리를 해오는 귀엽지 않은 녀석이었다. 그럼에도 웃는 얼굴이나 아닌 척 도와주는 다정함엔 가슴이 두근거리고 말았다.


 누가 들으면 사춘기 소녀냐고 비웃을 만한 일이었다. 지금 이타루 뒤에 있는 반리도 처음에는 그랬다. 배를 움켜잡고 한바탕 웃고 나서는 도와주겠다며 손을 내밀었고, 이타루는 미심쩍은 눈빛을 보내면서도 하는 수 없이 그 손을 잡았다. 뭐가 어쨌든 절박했기 때문이었다. 


 “싫으면 굳이 챙겨주지도 않을 거고.”

 “츠즈루는 원래 그런 애니까. 나 말고도 다른 사람 일일이 신경 써주고 있잖아.”

 “뭐, 그건 그렇죠. 저번에 야식도 얻어 먹었고…….”

 “……나 빼고?”

 “이타루씨 그 때 게임 하느라 바빴으니까.”

 “지금 완전 배신 당한 기분.”

 “아니, 당신이 훨씬 많이 얻어 먹었을 거 아냐!”


 그래도 이타루의 표정은 풀리지 않았다. 살짝 아래로 내려간 눈썹이 뾰로통한 기분을 숨김 없이 보여주고 있어서 반리는 조금 웃고 말았다. 이렇게 대놓고 질투할 정도면 아예 가서 말하면 될 텐데. 몇 번이고 반리가 했던 말에 이타루는 고개를 젓곤 했다. 자신감 없는 그 태도에 처음엔 반리도 놀랐다. 허나 그 이유가 아예 이해 안 가는 것도 아니었다.


 “반리, 고백해 본 적 있어?”

 “음…… 없죠.”

 “나도.”


 그 뒤를 잇진 않았으나 둘 모두 서로의 이유를 알았다. 그야 항상 고백을 받는 입장이었으니까. 지금까지 이 사람이 아니면 안 될 정도로 사랑하는 사람이 생긴 적도 없고, 몇 번 했던 연애도 모두 상대방 쪽에서 고백한 걸 받아준 것에 불과했다. 이별 역시 그랬고, 그런 이별이 딱히 아쉬웠던 적도 없다. 즉, 자신이 직접 고백을 할 정도로 진심이 되어 본 적 없다는 얘기였다.


 가벼운 마음일 땐 모든 게 쉬웠는데 진심이 되고 나니 사소한 것조차 어려운 일이 되었다. 이별은커녕 거절 당하고 미움 받는다고 생각하는 것부터 괴로워서 견딜 수가 없었다. 역시 지금 이대로가 낫지 않을까. 그러면 또 마음 깊숙한 곳에서 슬금슬금 그래도 역시 사랑 받고 연애 하고 싶다는 욕심이 솟아 올랐다. 이젠 뭘 어쩌자는 건지 스스로도 알 수 없는 지경이었다. 가장 좋은 해피 엔딩이야 명확하지만 그게 정말 게임처럼 잘 되리란 보장이 없었다.


 “호감도 볼 수 있으면 좋을 텐데.”


 화면에 뜨는 수치를 보면서 이타루가 조용히 중얼거렸다. 채울 수 있는 하트가 세 칸이라고 하면 한 칸 정도는 차있을 것이다. 하지만 다른 사람도 그렇겠지. 모두를 챙기고 도와주는 것은 츠즈루의 습관이기도 하고 성격이기도 했다. 동생이 많은 집에서 자란 탓도 있겠지만, 그래도 이타루는 역시 츠즈루 자체가 다정한 사람이기 때문이라고 생각했다. 대가족이라고 해서 모두가 그런 식으로 자라는 건 아니었다.


 이러니 저러니 잔소리를 하다가도 막상 이타루가 뭔가를 부탁하면 들어줬다. 같이 게임을 하자는 억지에 관심도 없는 화면을 몇 시간이고 쳐다봐준 적도 있었다. 반쯤 농담으로 던졌던 말을 들어준 츠즈루 덕에 이타루는 그 날 새벽 게임을 클리어 할 수 있었다. 하지만 그 날 얻은 건 게임을 끝냈다는 성취감이 아니었다. 어둠 속에서도 반짝거리며 빛나고 있던 츠즈루의 녹색 눈동자가 지금도 선명했다. 부드럽게 휘어지는 눈가엔 츠즈루만의 다정함이 깊게 배어 있었다. “이타루씨 진짜 게임 좋아하네요.” 살짝 웃으면서 건네는 말을 들으며 이타루는 그저 멍하니 그 얼굴을 바라만 보았다. 조금만 더 넋을 놓았더라면 당장 그 때 고백을 했을지도 모른다. “아니, 더 좋아하는 게 생겼을 지도.” 라고.


 그런 옛날 생각을 하다 다시 화면을 보면 이미 장면이 넘어가 있었다. 옆에 있던 반리도 보이지 않았다. 정신을 빼고 있던 사이 반리가 콜라를 가져오겠다고 말한 것 같기도 했다. 그리고 그 말대로 생각이 끝나자마자 반리가 콜라를 들고 안으로 들어섰다. 하지만 옆에 앉지는 않았다.


 “이타루씨. 게임 잠깐 멈추는 게 어때요.”

 “왜? 아직 다른 거 할 생각 없어.”


 하나도 도움이 되지 않는 것 같지만 어쨌든 잡은 이상 끝을 볼 생각이었다. 이타루가 화면에서 눈도 떼지 않고 대답하자 반리가 짧게 한숨을 뱉었다.


 “게임 밖에 있는 상대를 공략하라고요. 마침 나가는 중이니까.”

 “……어딜?”


 이타루가 느리게 눈을 감았다 떴다. 계속 게임만 붙들고 있었더니 머리가 둔하게 돌아갔다. 그래도 게임 밖의 공략할 상대라면 역시 하나 밖에 없었다. 그리고 자정에 가까운 이 시간에 밖으로 나가는 일은 매우 드물었다. 이타루가 게임을 내려 놓자 반리가 친절하게 자리를 비켜주었다.


 밖으로 나오자 반리의 말대로 정말 츠즈루가 신발을 신고 있는 게 보였다. 새 각본을 쓰는 중이라 방에 콕 틀어 박혀 나오지 않던 츠즈루였다. 착각일지 몰라도 역시 조금 피곤해보였다. 얼굴이 다소 어둡기도 했다. 벽에 기대어 삐뚜름히 선 채 이타루가 츠즈루를 불렀다.


 “츠즈루. 어디 가?”

 “아, 이타루씨. 잠깐 이 앞 편의점에 살 게 있어서요.”


 바쁘고 피곤하면 굳이 본인이 가지 않아도 될 텐데. 하지만 츠즈루는 그런 걸 남에게 부탁할 사람이 아니다. 지금 깨어 있는 사람이 이타루나 반리라면 더더욱 그랬다. 이타루가 아무 말 없이 빤히 바라보기만 하자 츠즈루가 어색하게 웃어 보였다.


 “뭐 부탁할 거 있나요?”

 “아니. 기다려.”

 “네?”

 “잠깐만.”


 이타루가 황급히 방으로 돌아갔다. 이미 예상하고 있었는지 반리가 알아서 척척 옷을 대령했다. 장난도 많이 치고, 도움 안 되는 어드바이스를 잔뜩 늘어 놓긴 해도 도와주겠다고 한 말은 거짓이 아니었다.


 빠르게 옷을 갈아 입고 묶어서 올렸던 앞머리를 서둘러 내려 차분하게 정리했다. 겉옷을 입고 있는데 열린 문 너머로 츠즈루의 외침이 들렸다.


 “뭐 필요한 거 있슴까? 게임 결제용 카드라면 가는 김에 사올 수 있는데.”


 안 돼, 기다려. 이타루의 중얼거림에 옆에 있던 반리가 와하학 웃음을 터뜨렸다. 그런 반리를 얄밉게 째려본 이타루가 얼른 밖으로 나왔다. 급하게 준비했으나 그런 티는 내지 않으려고 그려낸 미소를 얼굴에 가득 띄우고서.


 “가자.”

 “……이타루씨도요?”

 “응. 안 돼?”

 “아뇨, 그건 아니지만…….”


 결국 츠즈루는 갑작스러운 동행자와 함께 기숙사를 나서야 했다. 밖으로 나가고 나서도 츠즈루는 여전히 떨떠름한 채였다. 다른 누구도 아닌 이타루와 같이 외출이라니 드문 일이긴 했다. 아니, 처음이었다. 꼭 필요한 일이 아니고서야 이타루는 일단 귀가한 이상 방 밖으로 잘 나오지 않았다. 하물며 기숙사 밖은 더더욱 없는 일이었다.


 “츠즈루. 요즘 바빠?”


 말없이 걷고 있다가 이타루가 먼저 말을 걸었다. 그러곤 손끝으로 제 눈 아래를 쿡 찔렀다. 뒤늦게 그게 다크서클을 의미하는 걸 깨닫고 츠즈루가 멋쩍은 웃음을 뱉었다.


 “새 각본이 생각보다 잘 안 나와서요…… 조금 슬럼프일지도.”


 가볍게 말했지만 어설픈 웃음엔 진심이 섞여 있었다. 전과 달리 고민하는 시간이 길긴 했다. 불어오는 바람을 맞으며 이타루는 열심히 머리를 굴렸다. 역시 선택지가 뜨지 않는 건 나쁘다. 객관식이어도 틀릴 확률이 높은데 주관식이라니 난이도가 높아도 너무 높았다. 거기다 세이브 기능 없는 1회 플레이. 게임이었다면 분명 실패작이다. 그래도 하는 수밖에 없었다.


 “아니, 츠즈루가 쓰는 글 재밌으니까.”


 다른 사람도 해준 흔해 빠진 위로일지도 몰랐다. 하지만 제일 먼저 떠오르는 말이기도 했다. 동시에 늘 그렇게 생각했으면서 한 번도 해준 적 없는 말이었다. 적당히 회사에 나가고, 가볍게 사람을 사귀고, 언제나 게임만 하는 일상에서 벗어나게 해준 것도 모두 츠즈루가 그려낸 그 연극 덕분이었다. 입 밖으로 내놓고야 이타루도 깨달았다. 제 인생은 그 때부터 바뀌고 있었고 그 원인 역시 눈앞의 이 남자 때문이란 것을. 오히려 그 날 반한 것이 한참 늦은 이벤트였다.


 놓치고 있던 사실을 깨닫자 머리가 멍해졌다. 제가 한 말을 듣고 눈을 둥그렇게 뜬 츠즈루를 보고 있자니 더 그랬다. 쑥쓰러운 듯 눈을 접으며 웃는 표정은 이타루가 제일 좋아하는 모습이었다. 멍청히 바라보는 사이 더 바보 같은 말이 흘러나왔다.


 “다음에 내가 좋아하는 게임 시나리오를 써줬으면 할 정도로.”

 “……뭐예요, 그게. 하하하.”


 츠즈루가 느리게 웃음을 터뜨렸다. 저도 모르게 튀어나간 말에 이타루도 조금 머쓱해졌다. 위로라기보단 평범하게 게임을 좋아하는 오타쿠가 하는 부탁으로밖에 들리지 않는다. 슬쩍 츠즈루의 눈치를 보자 의외로 터져나오는 웃음이 시원했다.


 “칭찬 고맙습니다.”

 “응?”

 “칭찬 맞죠? 그 이타루씨가 하는 말이니까.”


 어두웠던 표정도 한껏 밝아지고, 츠즈루는 정말 산뜻하게 웃고 있었다. 짙은 밤이지만 또 그 때처럼 눈이 반짝이고 있어서 이타루도 덩달아 웃고 말았다. 정말로 좋아하는 구나, 새삼스럽게 그런 마음이 들었다. 이 얼굴을 조금 더 보고 싶다. 좀 더 욕심을 내자면 자신을 향해서만 이렇게 웃었으면 좋겠다. 울컥 차오른 감정은 딱 이 밤에 어울리게 충동적이었다.


 이타루가 차마 그 말을 꺼내지 못하고 머뭇거리는 사이 편의점에 도착했다. 이타루는 필요한 것을 쏙쏙 골라내는 츠즈루를 멀찍이 떨어져서 지켜보기만 했다. 계산을 하기 바로 전에 츠즈루가 의아한 듯 물었다.


 “이타루씨. 필요한 거 없슴까?”

 “응.”

 “그럼 왜…….”

 “봉투 드릴까요?”

 “아, 네.”


 츠즈루의 질문은 아르바이트생이 말을 거는 바람에 뚝 끊기고 말았다. 이타루는 차라리 잘 됐다고 생각하며 먼저 밖으로 나갔다. 대답할 말이 없었다. 있긴 하지만 그걸 솔직하게 말할 만큼 준비된 상태가 아니었다. 그냥 같이 걷고 싶어서 그랬다고 하기엔 너무 제 이미지와 어울리지 않으니까.


 계산까지 마치고 나온 츠즈루는 다시 이타루에게 묻지 않았다. 대신 싱긋 웃을 뿐이었다.


 “고맙습니다.”

 “뭐가?”

 “그냥요. 가깝긴 해도 혼자 오기엔 좀 심심했으니까.”


 그렇다고 딱히 재밌는 대화가 오간 것도 아니었으나 츠즈루는 정말 만족했다. 이타루는 더 말 할 것도 없었다. 기숙사로 돌아가며 주고 받은 말은 지극히 평범했다. 츠즈루는 봄조의 이야기를 하고, 이타루는 게임에 대해서 말했다. 그래도 평소와 같은 그 대화가 어쩐지 유독 상쾌하고 기분 좋아서 이타루는 역시 서둘러 나오길 잘했다고 생각했다.


 기숙사에 도착했을 땐 벌써 자정이 지나 있었다. 깨지 않도록 조심히 문을 열자 일부러 자지 않고 있던 반리가 들어오는 둘을 보고 비죽 웃었다. 누가 봐도 놀리는 얼굴이라 이타루가 먼저 그 입을 막기도 전에 웃음이 꽉 담긴 목소리가 흘러나왔다.


 “흐음, 뭐야. 데이트?”

 “어이, 반리.”

 “하하. 그럴지도?”


 허튼 소리 하지 말라는 뜻으로 이름을 불렀는데 의외로 바로 옆에서 그런 답이 튀어나왔다. 대답에 놀란 건 반리도 마찬가지였다. 츠즈루 혼자 태연하게 봉투를 뒤적이며 물었다.


 “반리는 아직까지 게임 하고 있던 거야?”

 “뭐, 그렇죠.”

 “적당히 해. 내일 아침에 수업 있지 않아?”

 “그 정돈 완전 여유 있으니까.”

 “하긴 그럴지도. 아, 이타루씨.”

 “응?”


 한참 봉투를 뒤적거리던 츠즈루가 그 안에서 꺼낸 상자를 이타루에게 내밀었다. 바보처럼 서있던 이타루는 저를 부르는 소리에 정신을 차렸다가, 츠즈루가 건넨 물건에 다시 또 멍해졌다. 얼결에 받아 든 상자 겉면엔 이타루도 해본 적 있는 게임의 마스코트 캐릭터가 그려져 있었다.


 “이게 뭐야?”

 “선물이에요. 오늘의 답례로.”

 “……지금 뜯어도 돼?”

 “네. 혹시 잘못 됐으면 교환도 해야 하고.”


 다행히 상자 안엔 똑같이 생긴 인형이 들어 있었다. 이타루의 손바닥 위에 딱 맞는 크기였다. 귀엽다면 귀엽고 못생겼다면 조금은 못난 그런 캐릭터였다. 게임도 하지 않는 츠즈루가 이 인형은 어떻게 골랐을까. 인형의 커다란 머리를 쓰다듬으며 이타루는 속으로 생각했다.


 “저번에 이타루씨 방에서 본 적 있는 것 같길래.”


 그리고 이타루의 생각을 읽은 것처럼 츠즈루가 알아서 답을 주었다. 이틀 만에 끝내고 어딘가에 던져 놓은 게임 표지에 그려진 걸 알아본 츠즈루가 대단하다고 생각함과 동시에 조금 기쁜 마음이 들었다. 간단한 거지만 취향에 맞도록 신경 써준 부분이 고맙다. 그냥 같이 나갔을 뿐인데 고맙다면서 몰래 준비한 것도 고마웠다. 그냥, 모든 것을 떠나서 츠즈루가 제게 준 선물이라는 점이 가장 고마웠다.

 

 “이거 분명 하트 세 개 짜리야.”

 “네?”

 “아니, 게임 이야기.”


 이타루의 게임에 츠즈루는 역시, 납득하며 살짝 웃었다. 먼저 방에 들어가겠다며 돌아서는 츠즈루의 발걸음이 가벼웠다. 물론 이타루라면 지금 걸음을 내딛을 때마다 천장에 머리를 박을 지도 몰랐다. 이런 선물로 이렇게까지 기분이 좋아지는 건 또 처음이었다. 가끔 해주는 야식이 아니라면 츠즈루에게서 받는 첫 선물이었다. 이미 호감도는 하트 세 개를 다 채운지 오래지만 이건 그 이상을 채워주고도 남는 선물임이 분명했다. 이타루의 흐물흐물 풀린 표정을 흘끗 보며 반리가 고개를 저었다.


 “이타루씨…… 공략을 하랬지 당하고 오면 어떡합니까.”

 “응. 완전 게이머 실격이네.”

 “그렇게 간단히 인정 하는 거냐고.”


 반리의 핀잔에 가볍게 대꾸하면서 이타루는 자꾸 그 인형을 만지작거렸다. 그러다 인형의 눈동자가 밝은 녹색이라는 걸 깨달았다. 꼭 누구처럼. 고작 그 정도의 사실에 활짝 웃으며 이타루는 다짐했다. 꼭 차에 달아두어야겠다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