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D 2.5D NOTICE GUEST


 “꼬맹이가 어딜 그렇게 가나?”


 장난기가 그득한 어투였지만 소년은 깜짝 놀라서 어깨를 바싹 오므렸다. 잔뜩 힘이 들어간 뒷모습을 보고 프리드리히가 푸흐흐 웃음을 흘렸다. 그러면서도 양 손으로 꽉 잡고 있는 술을 떨어뜨리진 않은게 우습기도 하고 귀엽기도 했다. 프리드리히는 부드럽게 제 턱을 쓸며 금발의 소년 곁으로 성큼 다가갔다.


 “에바리스트는 어딜 가고 혼자야?”

 “그건….”

 “그리고 그 손에 들고 있는건 뭐지, 아이자크?”


 다 알면서 프리드리히는 모르는 척 아이자크가 들고 있는 술병을 가리켰다. 화들짝 놀란 아이자크가 술병을 얼른 제 품 안으로 당겼으나 이미 들킨 일이었다. 결국 아이자크는 손을 꼼질거리며 멋쩍게 웃어보였다. 하하. 어색한 그 웃음에 프리드리히가 살풋 입꼬리를 올리며 아이자크의 코 끝을 아프지 않게 퉁겼다. 아야! 아이자크가 한 손으로 제 코를 부여잡으며 뒷걸음질 쳤다. 프리드리히는 두 손을 허리춤에 올리고선 삐뚜름하게 섰다.


 “꼬맹이에겐 너무 이른 것 같은데.”


 아이자크가 들고 있는 술병은 도수가 낮은 와인도 아니었다. 마셨다간 꼬박 하루 정신을 잃을게 뻔했다. 그런데도 여전히 술병을 들고 있는 아이자크가 못내 귀여워 프리드리히는 자꾸 웃음이 터졌다. 물론 그 여유로운 웃음에 아이자크는 기분이 조금 나빠졌다. 티내진 않았지만 아직 어린 소년의 볼이 살짝 부풀어오른 것을 본 프리드리히가 손을 뻗어 눈부신 금발을 마구 헝클어뜨렸다.


 아, 하지마요! 아이자크가 고개를 도리도리 저으며 한걸음 더 물러섰다. 프리드리히는 눈썹만 꿈틀거렸을 뿐 더는 움직이지 않았다. 아이자크는 엉망이 된 제 머리를 정리하며 프리드리히를 흘끔 올려다보았다. 화난 얼굴은 아니었지만 저를 어린아이 취급하는 것만큼은 분명했다.


 “마시라고 할 때는 빼더니, 이제 와서 그걸 몰래 훔쳐내는 이유가 뭐야?”


 밤은 어둑했으나 달이 밝아 몰래 움직이기엔 마땅한 날이 아니었다. 아이자크는 나름대로 신속하고 조심히 움직였으나 프리드리히의 시야에서 완벽히 벗어나는건 무리였다. 결국 이렇게 덜미가 잡히고 말았으니. 프리드리히의 질문에 아이자크는 대답하는 대신 입을 꽉 다물었다. 조금 불퉁한 얼굴엔 불만이 가득해보였으나 작은 입은 도무지 열릴 줄 몰랐다.


 아이자크는 솔직하게 대답을 하고 싶지 않았다. 어른이 되고 싶어서, 라고 말하는 것이 더 어린아이 같다는 것 쯤은 아이자크도 알았다. 그러나 프리드리히는 그 미세한 망설임만으로도 아이자크의 속내를 충분히 읽어낼 정도로 노련한 어른이었다.


 “어찌됐든 오늘은 안돼, 아이자크. 다른 날을 노려봐.”


 부드럽게 웃으며 프리드리히는 아이자크가 소중히 들고 있던 술병을 빼앗았다. 공짜 술이 생겼네. 프리드리히는 술병을 옆구리에 끼며 솔직하게 기뻐했다. 아이자크는 말없이 프리드리히를 바라보기만 했다. 달빛을 머금은 푸른 눈동자가 고요히 반짝였다. 프리드리히는 그 시선에서 정말 필요한 것은 독한 술보다 자신과의 대화라는 것을 알았다.


 “여기 앉아봐.”


 생각을 마치자 프리드리히는 지체없이 아이자크의 팔을 당겨 앉혔다. 그 옆에 엉덩이를 붙이고서 프리드리히는 늘 차고 있는 검을 검지 손으로 톡톡 두드렸다. 차가운 소리에 아이자크의 시선이 그리로 향했다. 침을 꼴깍 삼키는 목울대에 솜털이 보송보송했다. 프리드리히는 또 다시 아이자크의 머리로 손을 뻗으려다 간신히 참아냈다.


 “검이 무겁니?”

 “네?”


 갑작스러운 말에 다소 놀란 목소리가 튀어나왔다. 아이자크의 두 눈이 커다랗게 뜨였다. 프리드리히는 어깨를 으쓱하며 칼 손잡이를 쓰다듬었다. 프리드리히는 아이자크가 검을 잡을 때마다 미세하게 망설인다는 점을 처음부터 알고 있었다. 그러다가도 아이자크는 검을 고쳐 잡을 때마다 서늘하게 눈을 빛냈다. 그 묘한 괴리에 프리드리히는 조금 슬퍼지곤 했다.


 프리드리히는 아이자크가 실은 이 곳에 어울리지 않는 순수한 소년이라는 점을 알았다. 어두운 현실 속에서 아이자크는 늘 표정을 굳히고 있었지만 간간히 드러나는 모습에서 프리드리히는 그것을 빠르게 눈치챌 수 있었다. 입술을 달싹이기만 할 뿐 섣불리 대답하지 못하는 아이자크를 보며 프리드리히는 부드럽게 웃어보였다.


 “사실 한번씩 휘두를 때마다 체감하곤 하지. 이 검에 얼마나 많은 이들의 무게가 담겼는지.”


 프리드리히는 순식간에 표정을 싸늘히 굳히고선 제 검을 매만졌다. 프리드리히는 아주 가볍게 두 검을 휘두르긴 했으나, 느끼는 무게만큼은 결코 가볍지 않았다. 프리드리히는 이 검날에 얼마만큼의 피가 묻혀졌는지, 그리고 이 손잡이에 얼마만큼의 짐이 올려져 있는지 잘 알고 있었다. 모르는 척 하려 해도 그렇게 할 수 없는 부분이었다.


 입을 다문 둘 사이에 적막한 침묵이 내려앉았다. 프리드리히는 다시 표정을 바꾸어 평소처럼 웃어보였다. 그러나 결코 가볍지도, 마냥 해맑지도 않은 웃음이었다. 프리드리히는 아이자크의 작지만 단단한 손을 꽉 잡았다 놓았다.


 “검이 무겁다면, 아이자크 너는 충분히 어른이야.”


 프리드리히의 손이 떨어지자 아이자크가 천천히 주먹을 말아쥐었다. 그 안에 잡히는 것은 아무것도 없었으나 아이자크의 눈빛만큼은 달라져 있었다. 조용히 자리에서 일어서는 아이자크의 등을 두드리며 프리드리히는 들고 있던 술병을 흔들었다.


 “그러니 이건 내가 가져가마. 이의 없지?”

 “……네.”

 “여기서 이러지 말고, 얼른 들어가서 눈이나 붙이도록. 내일 아침부턴 다시 고생 시작이니까 잘 수 있을 때 자둬야지.”


 또 어떤 일이 생길지도 모르고. 마지막 말은 안으로 삼킨 프리드리히가 아이자크의 등을 떠밀었다. 어색하게 허리를 숙여 꾸벅 인사를 한 아이자크가 머뭇거리며 걸음을 옮기기 시작했다. 멀어지는 뒷모습을 보며 프리드리히도 빙글 몸을 돌렸다. 그 사이에 밤은 더욱 깊어져 있었다. 프리드리히가 흔들 때마다 술이 찰랑이는 소리가 났다. 프리드리히는 조금 씁쓸히 웃으며 입술을 깨물었다.


 “그래도 아직은 어린 아이로 남았으면 하지만 말이야.”


 그러나 마냥 아이로 남아있기엔 상황이 녹록치 않다는 것을, 둘 모두 잘 알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