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 카가미.”
“…어?”
평소 대로 마지 버거를 잔뜩 주문해서 한 입에 우물우물 씹고 있던 카가미는 자신을 부르는 소리에 고개를 들었다. 말투에서 예상하긴 했지만, 삐뚤게 서서 자신을 내려다보는건 역시 아오미네가 맞았다. 카가미가 대답을 하기도 전에 멋대로 테이블 건너편에 앉은 아오미네가 가방을 옆에 내려놓았다.
“또 그렇게 처먹냐.”
턱을 괴고서 한심하다는 투로 말하는 아오미네를 잠시 째려본 카가미는 다시 먹는 것에 집중했다. 특훈이라며 평소보다도 더 연습을 하고 온 뒤라 체력 보충이 시급했다. 우적우적 잘도 먹는 카가미를 보며 아오미네는 눈치 못 채게 슬쩍 입꼬리를 올렸다.
카가미는 정신없이 먹으면서도 여기는 무슨 만남의 장소 같은 곳이 아닐까 그런 생각을 했다. 늘 이 곳에서 마지 버거를 먹고 있으면 쿠로코나 아오미네를 만나게 된다. 종종 키세나 미도리마와 타카오를 보기도 했고. 이 근처에 햄버거 가게가 여기 뿐인가. 물론 지리에 익숙하지 않은 카가미는 여기 하나 밖에 모르니까 이 쪽으로 오는 것이지만 카가미는 하루이틀 꼴로 만나는 아는 얼굴 때문에 이젠 이 곳을 만남의 장소처럼 여기게 돼버렸다.
“오늘 집에 올거야?”
테이블 위에 잔뜩 쌓여 있던 마지 버거를 반 정도 먹어치운 카가미가 콜라를 쪽 빨며 물었다. 남의 먹는 모습이 뭐가 그리 즐거운지 다른 쪽으로는 시선도 돌리지 않은 채 카가미를 보고 있던 아오미네가 그제야 턱을 괴었던 것을 풀고 의자 깊숙히 몸을 기댔다.
“뭐, 가야지.”
“집에 먹을 거 없는데….”
아오미네가 온다고 하니까 당장 먹을 것부터 걱정하는 모습이 엄마나 아내 같아서 아오미네는 푸흡 웃음을 터뜨렸다. 카가미가 미간을 좁히며 왜 웃냐고 물었지만 아오미네는 대답 없이 고개만 저었을 뿐이다. 잠시 뚱한 표정을 짓던 카가미는 아오미네가 옆에 내려놓은 토오의 가방이나, 위에 걸치고 있는 자켓을 보며 슬쩍 물었다.
“오늘은 연습 갔다온 거냐?”
“모모이 녀석이 시끄럽게 구는 바람에.”
“성실히 좀 다녀라.”
“어쭈, 내가 맨날 연습하면 넌 내 발끝에도 못 미칠텐데. 지금도 나한테 발리면서.”
“아니거든?”
마지막 말에 발끈한 카가미가 테이블을 살짝 내리치면서 아오미네를 노려봤다. 그 모습이 위협적이라기 보단 귀여운 편에 가까워서 아오미네는 작게 웃었다. 말없이 아오미네를 노려보던 카가미가 곧 앞에 있던 마지 버거를 아오미네 쪽으로 조금 강하게 던졌다.
“뭐냐?”
“먹으라고. 집에 아무것도 없으니까.”
아오미네가 대답도 하기 전에 카가미가 서너개를 더 던졌다. 아오미네가 일단 받긴 했지만 곤란하다는 눈으로 카가미를 바라봤다.
“난 너처럼 그렇게 많이 안 먹거든?”
“사내 새끼가 비실비실하고만.”
“니가 많이 처먹는거야, 병신아.”
자신의 말에 그런가? 하고 고개를 갸웃하는 카가미를 보고 아오미네는 실없이 웃음을 흘렸다. 하여간 웃기는 놈이라니까. 투덜거리면서도 아오미네는 앞에 놓인 마지 버거 한 개를 꺼내 베어 물었다. 어쨌든 출출한 건 사실이니까.
“여기서 뭐합니까? 아오미네 군.”
“으앗! 테, 테츠?”
아오미네가 마지 버거를 입에 넣자마자 갑자기 나타난 쿠로코가 말을 거는 바람에 하마터면 바닥으로 떨길 뻔 했다. 놀란건 카가미도 마찬가지였는지 콜라를 마시다말고 콜록콜록 기침을 해댔다. 쿠로코만이 평소와 같이 아무렇지도 않은 얼굴을 하고 서 있었을 뿐이다. 카가미가 콜라를 테이블 위에 거칠게 올려놓으며 소리를 질렀다.
“쿠로코, 너, 말 좀 하고 나타나라고!”
“테츠, 너 언제부터 여기 있던 거냐?”
“아까부터 계속 있었는데요.”
쿠로코의 말에 카가미와 아오미네는 전혀 몰랐다는 눈으로 서로를 쳐다봤다. 아무리 미스디렉션으로 존재감이 흐릿한 쿠로코라지만 한 두번 본 사이도 아닌데 매번 놀라는 것도 웃기다. 정작 쿠로코는 무덤덤한 얼굴로 카가미 옆에 슬쩍 엉덩이를 붙였다.
“왜 거기 앉냐.”
“저도 여기서 식사할 거니까, 이왕이면 같이 먹는 편이 좋을 것 같아서요. 자리도 없고.”
그러고보니 저녁 시간이라 사람이 왁자한 상태였다. 굳이 카가미의 옆에 앉은 것이 탐탁치 않았지만 그렇다고 쿠로코가 자신의 옆 자리에 앉는 것도 꽤 이상한 그림이라 아오미네는 그냥 넘어가기로 했다. 같은 학교에, 지금의 빛과 그림자니 붙어 있는 것도 별로 이상하지는 않다. 하지만 막상 옆에 있는걸 보니까 기분이 좋지는 않아서 아오미네는 저절로 눈살을 찌푸렸다.
그런 아오미네의 기분을 카가미는 전혀 알 리 없었지만 쿠로코는 재밌다는 눈으로 바라보고 있었다. 물론 쿠로코의 표정은 평소와 똑같았기 때문에 아오미네는 눈치챌 수 없었지만. 딱히 의도하지 않아도 둘은 무슨 생각을 하는지 너무 잘 보여서 알기가 쉽다. 쿠로코는 이미 아오미네와 카가미가 얼마 전부터 거의 매일 1 on 1을 하고, 카가미네 집에서 밥을 같이 먹는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 정작 당사자 둘은 나름 비밀이라고 생각하는 것 같아서 말은 안하고 있었지만.
티를 안내려고 해도 절로 얼굴에서 드러나는 아오미네의 작은 짜증이 눈에 보이는지라 쿠로코는 좀 더 그를 놀려줄까 하는 생각을 했다.
“카가미 군. 입가에 묻었습니다.”
“응?”
“칠칠 맞네요.”
말은 그렇게 하면서도 입가에 묻은 소스를 지워주는 쿠로코의 손길은 상냥하기 그지 없었다. 그 모습을 바라보는 아오미네의 눈썹이 꿈틀거리는걸 아는지 모르는지 카가미는 어벙한 얼굴을 하고 고맙다며 고개를 끄덕였다. 딱히 놀랄 일도 아니라는 듯 익숙한 태도에 은근히 심기가 불편해진 아오미네는 쿠로코가 자신을 향해서 비죽 웃는걸 보고 더 이상 참을 수 없어졌다.
“테츠!”
“뭡니까, 아오미네 군?”
“쪽팔리게 왜 소리 지르냐!”
테이블을 부실 기세로 자리를 박차고 일어난 아오미네를 보고 카가미가 얼굴을 잔뜩 찌푸렸다. 아, 깜짝 놀랐네. 놀란 가슴을 쓸어내리면서도 햄버거 포장지를 벗기는 손은 멈추질 않는다. 그 모습을 말 없이 바라보던 아오미네는 머쓱한 얼굴로 다시 자리에 앉았다. 그리고 쿠로코를 험악하게 노려보며 입을 열었다.
“어이, 테츠. 방금 일부러 그런거지?”
“뭘 말입니까?”
“다 알면서 그러는거지….”
허나 아오미네의 물음에도 무슨 소린지 전혀 모르겠는데요. 하고 무표정을 유지하는 쿠로코를 닥달할 수도 없는 노릇이었다. 옆에서 카가미는 진짜 아무것도 모르는 얼굴을 하고 있었고. 저 바보 자식은 왜 이렇게 헐랭한거야! 속으로 카가미에 대한 짜증을 털어놓으며 아오미네는 흥, 하고 콧방귀를 꼈다. 아오미네가 꽤 복잡한 얼굴을 한 것을 보고 쿠로코는 속으로 웃음을 터뜨렸다. 귀엽네요, 아오미네 군. 지나가는 아이를 울릴 정도로 험악한 얼굴을 하고서 하는 행동이나 말은 어린아이 같아서 쿠로코는 터져나오는 웃음을 간신히 억눌러야 했다.
“테츠, 모모이가 연락했냐?”
다시 먹는 것에 집중하려 했더니 이번에는 아오미네 쪽에서 말을 걸어 온다. 그 질문에 쿠로코는 버거를 한 입 베어물며 고개를 끄덕였다.
“아오미네 군이 오랜만에 연습에 나왔다고 기뻐하던데요.”
“그거야 그 녀석이 시끄럽게 구니까….”
“조금 더 성실히 임하는게 좋을 것 같은데요.”
“너 왜 이 녀석하고 똑같은 말 하냐.”
둘 다 나한테 할 말이 그거 뿐이냐. 아오미네가 심드렁한 얼굴을 하고 있자 쿠로코는 모모이의 전화를 떠올리며 그녀에 대한 애도를 표했다. 아오미네 군을 소꿉친구로 둬서 고생이 많습니다, 모모이 씨.
둘의 대화를 잠자코 듣고 있던 카가미는 뭔가 묘한 기분이 들어서 눈썹을 찡그렸다. 뭐지, 이 느낌. 둘이 친하게 대화를 나누는 것에 대한 불만은 아니다. 애초에 자신보다도 오래 더 알고 지낸 사이다. 딱히 저 관심없는 대화에 끼고 싶은 것도 아니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묘하게 가슴을 쿡쿡 찔러오는 답답함이 카가미를 괴롭혔다. 쉬이 정의내릴 수 없는 이상한 느낌. 하지만 좋지 않은 것만은 확실했다.
“어쨌든 테츠, 다시 한 번 말하지만 아까처럼 자꾸 건드리면 너라도 가만 안둔다.”
“다른 학굔데 건드렸는지 아닌지 어떻게 압니까?”
쿠로코가 핵심을 찌르는 바람에 아오미네는 윽, 하고 얼굴을 구겼다. 같은 세이린에, 서로 주고 받는 콤비니까 늘 옆에 붙어있을게 뻔했다. 아까 보았듯이 저런 다정한 행동도 서슴없이 할 테고, 멍청한 카가미는 그걸 눈치채지도 못하겠지. 이러다가 다른 사람한테 잘해주지 말라고 여자친구나 할 법만 대사를 날리게 생겼다. 아오미네는 작게 한숨을 내쉬며 카가미를 흘깃 쳐다봤다. 어차피 우리가 무슨 대화 하는지도 모르고 햄버거나 먹고 있겠지. 그런 생각으로 카가미에게 눈길을 준 아오미네는, 그가 의외의 얼굴을 하고 있어 눈을 크게 떴다.
“안 먹고 뭐하냐?”
“카가미 군?”
아오미네가 묘한 얼굴을 한 것을 보고 쿠로코도 카가미를 향해 고개를 돌렸다. 아, 어, 응? 갑자신을 부르는 소리에 놀란 카가미가 얼빠진 소리를 내며 눈을 깜빡였다. 눈썹이 오묘하게 일그러져있다. 답지 않게 햄버거를 깨작거리는 것이 무언가 마음에 걸리는 것이 있는게 분명했다. 그것도 지금 아오미네와 쿠로코가 대화를 하던 그 짧은 사이에.
제 가슴 속에서 퍼져나가던 답답함이 뭔지 알 수 없던 카가미는, 아오미네가 입을 여는 순간 그 감정이 무엇인지 깨달았다. 그의 입에서 나오는 그 소리가 듣고 싶지 않은거다. 사소한 것에 질투하는 여자친구라도 된 마냥, 그가 다른 사람을 이름으로 부르는 것이 듣고 싶지 않았다. 테츠, 라고 낮은 목소리로 쿠로코를 부르는 것이 마음에 들지 않았다. 다른 사람도 아니고 바로 쿠로코인데 이런 느낌이 들다니. 카가미는 제 스스로가 치졸하게 느껴져서 괜시리 우울해졌다.
*
“어, 잠시만.”
아오미네에게 물을 건네던 카가미는 하던 행동을 멈추고 자신의 주머니에서 시끄럽게 울리는 폰을 꺼내들었다. 이 시간에 누구인가 싶었는데 액정에 떠 오른 이름이 꽤 반가워서 카가미는 저도 모르게 입 꼬리를 올렸다. 물론 아오미네는 그 모습이 매우 마음에 안들었다.
“타츠야, 무슨 일이야?”
‘타츠야?’
그게 누구지 하는 생각에 아오미네가 고개를 갸웃했다. 익숙하지 않은 이름이다. 애초에 아오미네는 다른 사람의 이름 같은걸 잘 외우는 편이 아니었다. 관심 있는 사람에게는 몰입하지만, 그게 아니라면 일말의 관심조차 주지 않으니까. 하지만 아오미네는 곧 타츠야라 불린 상대방이 누구인지 눈치챌 수 있었다. 카가미가 자신도 모르게 목에 걸려 있던 반지를 만지작거렸으니까.
“시간… 음, 될 것 같아.”
시간 얘기를 하는거보면 무슨 약속이라도 잡나. 솔직히 기분이 나빠져서 아오미네는 괜히 쿵쿵거리며 걸었다. 시끄러운지 카가미가 뭐하냐는 눈으로 쳐다봤지만 그 시선에 기분이 배로 나빠져서 아오미네는 발에 더욱 무게를 실었다. 지금 애인을 옆에 두고 다른 남자랑 데이트 약속 잡는거냐. 당장이라도 폰을 뺏어서 던져버리고 싶었지만, 맨날 차고 다니는 반지만 봐도 알 수 있듯이 그는 카가미에게 그저 그런 친구로 끝날 사이가 아니었다. 그래서 더 건드릴 수 없고, 그래서 더 짜증이 난다. 이번에는 진심으로 화가 울컥 치밀어올라서 아오미네는 이대로 확 카가미를 침대에 던져버리고 싶다고 생각했다.
“나? 지금 집인데. 이제 곧 자려고. 응? 아무것도 아니야.”
언뜻 전화 너머로 옆에 누구냐고, 무슨 일이냐고 물어오는 것 같았는데 카가미의 대답이 영 시원찮아서 아오미네는 기분이 확 나빠져버렸다. 아무것도 아니라고 치부할 사이는 아니지 않나. 남들에게 우리 사귄다! 하고 떠들 마음은 없지만, 그렇다고 제 애인 입에서 아무 사이도 아니예요 하는 말이 듣고 싶은 것도 아니었다. 그리고 아오미네는 가끔 자각없이 행동하는 카가미를 볼 때면 얘는 이미 임자가 있는 몸이라고 확 불어버리고 싶은 충동에 휩싸이기도 했다.
아오미네가 속으로 궁시렁거리고 있을 동안 대화가 끝났는지 카가미는 홀가분한 마음으로 전화를 끊었다. 히무로와 서먹한 사이는 아니었지만 예전처럼 자주 연락을 할 수 있는 상황은 아니었어서 카가미는 오랜만의 전화가 반갑기 그지 없었다. 별다른 내용 없이 시덥잖은 이야기만 했을 뿐인데도 마치 옛날처럼 따뜻한 기분이 들기도 했다. 그렇게 떠오른 미소를 감추지도 못하고 고개를 돌리던 카가미는 아오미네가 잔뜩 화가 난 얼굴로 자신을 바라보고 있는 것을 보고 놀라서 어깨를 움츠렸다.
“아, 깜짝이야. 표정이 왜 그래?”
“지금 몰라서 묻냐?”
잔뜩 화가 나 있는 상태인데 카가미는 진짜로 아무것도 모르겠다는 얼굴이라 아오미네는 화려던 것도 잊고 한숨만 푹 내쉬었다. 머리가 지끈지끈거린다. 아오미네는 제가 머리가 좋은 편이라고 생각하지는 않았지만, 그래도 눈 앞에 있는 카가미보다는 훨씬 나을거라고 확신했다.
“……너 진짜 바보냐?”
“죽을래?”
“그게 아니면 왜 모르는데!”
“그러니까 왜 그러는거냐고!”
지지 않고 덩달아 소리치는 카가미가 마음에 안들어서 아오미네는 결국 버럭 소리를 지르고 말았다.
“야, 존나, 우리가 아무 사이도 아니냐?!”
“…갑자기 뭔데!”
“니가 방금 타츠얀지 뭔지 하는 놈한테 그따구로 지껄였으니까 그렇지!”
여기서 아오미네가 말하고자 하는 뜻을 뒤늦게나마 눈치챘더라면 좋았으련만 카가미는 내용보단 아오미네가 히무로를 그런 식으로 칭한게 마음에 안들어서 미간을 확 좁혔다. 당연히 그런 카가미를 보는 아오미네의 분노 지수는 더욱 올라갔다.
“내가 꼭 이렇게까지 말해야겠냐?”
“대체 무슨 말이 하고 싶어서 그러는거냐고.”
“존나 친한 척 하면서 서로 이름으로 부르고, 그런거 보기 싫다고!”
빽빽거리며 소리는 질렀는데 그 내용이 미처 예상치 못한 것이여서 카가미는 벙찐 얼굴을 했다. 이름, 이라고 하면 나랑 타츠야 호칭 말하는건가. 뒤늦게 눈을 데록 굴리는 카가미를 보며 아오미네가 거칠게 머리를 헤집었다. 아, 말하고 나니까 좀 쪽팔리다. 아니, 많이 쪽팔리다. 이런 사소한 것에 질투하는 여고생이라고 된 느낌이라 기분이 좋지 않았다. 하지만 어쩌랴. 카가미가 그런 식으로 남에게 사근거리는건 더 보기 싫었다.
카가미가 뭐라고 반응이라도 해줘야 분위기가 좀 나아질텐데, 카가미는 게속 멍한 얼굴로 입술만 옴싹거렸다. 무슨 말이라도 하라고. 쪽팔림에 먼저 입을 열기에 민망해서 아오미네는 애꿎은 카가미만 잔뜩 노려봤다.
“그치만 나랑 타츠야는 옛날부터 이렇게 불렀는데….”
우물쭈물 거리다가 꺼낸 말이 저거라서 아오미네는 또 화가 치미는 것을 느껴야했다. 카가미 얘는 진짜 바보인가. 아오미네의 눈썹이 꿈틀거리는걸 봤는지 이번엔 카가미가 눈을 치켜 떴다. 사실 아까 마지 버거에서 카가미도 아오미네가 쿠로코랑 친하게 구는 것이 마음에 안들었었으니 입장은 같았다. 카가미는 순간 쪽팔린 것도 잊고 아오미네를 향해 소리쳤다.
“그리고 너도 쿠로코 이름 부르잖아!”
“…하? 거기서 테츠 얘기가 왜 나와.”
“나랑 타츠야도 어릴 때부터 친했으니까 그런거고… 너랑 쿠로코도 마찬가지잖아. 근데 왜 나한테만 그러냐고!”
씩씩거리면서 말하는게 아무래도 거짓은 아닌 것 같았다. 카가미도 말하다보니 아까 느꼈던 묘한 감정들이 다시 솟아나는 것 같아서 괜히 흥분해버렸다. 카가미가 하는 말을 잠자코 듣고 있던 아오미네가 이내 헤죽거리며 입꼬리를 올렸다.
“너 혹시 질투했냐?”
“…뭐, 뭐? 아니거든!”
“구라까지말고. 하는 꼴을 보니까 질투한거 같은데? 맞지? 아까 마지 버거에서 그랬냐?”
“아니라고!”
고개를 홱홱 저으며 아니라고 소리지르는데 얼굴이 새빨갛게 달아올라 있어서 그다지 설득력 있지는 않았다. 카가미의 붉어진 뺨을 쿡쿡 찌르며 아오미네는 기분 좋게 웃어제꼈다. 그런 태도가 마음에 안 든 카가미가 아오미네의 손을 세차게 쳐냈지만 아오미네는 굴하지 않고 카가미의 머리를 마구 헤집었다.
“아아, 이거 참. 질투 쩌는 누구 때문에 테츠랑 얘기하는거 자제해야겠네.”
“아니라니까! 아니라고 했잖아, 아오미네!”
“어이, 카가미.”
“으… 응?”
팔까지 휘두르며 강하게 부정하는 카가미를 꽤나 흐뭇한 얼굴로 바라보던 아오미네가 갑자기 진지한 목소리로 카가미를 불렀다. 답지 않게 내리 깐 목소리에 조금 당황한 카가미가 얼빠진 소리를 내자 아오미네가 피식 웃음을 흘리면서 카가미의 손목을 낚아챘다. 그리곤 옆에 있던 소파 위로 던지다시피 내치며 나즈막이 속삭였다.
“이름으로 좀 불러봐라.”
“갑자기 그게 무슨 헛소리야!”
갑작스런 아오미네의 말에 카가미의 귀 끝까지 발갛게 달아올랐다. 응? 엉아 이름 좀 듣고 싶다. 카가미가 세차게 고개를 젓는건 보이지도 않는지 아오미네가 붉어진 카가미의 뺨을 가볍게 두드리며 부탁했다. 새빨개진 얼굴로 시선도 맞추지 못하고 데굴데굴 눈동자를 굴리는게 꽤 귀여워서 아오미네는 달아오른 카가미의 뺨을 슬슬 간질였다. 손 끝으로도 열기가 전해져 오는게 여간 부끄러운게 아닌 듯 했다.
“다이…, 키…….”
결국 시선을 소파 끝에 맞춘 카가미가 기어들어가는 목소리로 겨우겨우 세 글자를 뱉었다. 그와 동시에 아오미네가 그의 입술을 두드려 열고 턱을 붙잡아 진하게 입술을 겹쳤다. 반사적으로 아오미네의 팔뚝을 쥔 카가미를 더욱 끌어안으며 아오미네가 고개를 틀었다. 잠시 뒤에 가볍게 입술을 톡톡 치고 떨어진 아오미네가 살짝 붉어진 얼굴로 중얼거렸다.
“그냥 밖에선 이름으로 부르지마라.”
“응? 왜?”
“존나 흥분돼.”
부끄러움에 얼굴이 새빨갛게 달아오른 카가미가 뭐라 반박하기도 전에 아오미네가 다시금 입술을 겹쳐왔다. 그리곤 씩 웃으며 카가미의 허리를 단단히 붙잡고 소파 위로 눕혔다. 물론 지금은 마음껏 불러도 돼. 귓가에 달큰하게 속삭이는 낮은 목소리에 카가미는 눈을 꼭 감아야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