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D 2.5D NOTICE GUEST

 #커플_오른쪽에게_총이_있고_5분_내로_왼쪽을_죽여야_지구의_멸망을_막을_수_있다면_오른쪽은

 **



 해리 하트는 재빠르게 주위를 둘러보았다. 거리는 조용하다 못해 황폐했다. 서있는 사람이라곤 저와 눈앞의 에그시 언윈만이 전부였다. 해리의 시선이 에그시의 오른손으로 떨어졌다. 제 오른손, 정확히는 오른손에 쥐고 있는 총으로 향한 해리의 노골적인 눈빛에 에그시가 서둘러 손을 뒤로 숨겼다.


 “잠깐만요, 해리.”

 “에그시, 시간이 없구나.”


 더 볼 것도 없다는 듯 해리가 그 앞으로 성큼 다가섰다. 에그시가 똑같은 거리만큼 발을 뒤로 물렸다. 총을 쥐고 있는 손이 파르르 떨렸다. 주변에 무기가 될 만한 것은 하나도 없었다. 에그시는 이 총 안에 총알이 들어가 있다는 사실을 잘 알았다. 그것으로 해리를 죽인다면 세상은 아무 일 없단 듯 원래대로 돌아갈 거란 점 역시도. 그럼에도 쉽사리 총구를 겨눌 수가 없었다. 상대는 그 누구도 아닌 해리 하트였다.


 에그시가 느끼는 감정을 100%까지는 아니더라도 해리는 어느 정도 짐작할 수 있었다. 그가 고민하는 이유도 잘 알았다. 하지만 둘에게는 여유롭게 고민 할 시간이 없었다. 주어진 시간은 기껏 해야 5분인 것이다. 그 5분안에 어떻게든 결판을 내야 했다. 에그시가 주저하며 5분을 까먹을 것이 뻔한 지금 해리가 취할 수 있는 행동은,


 “해, 해리!”


 그 총을 어떻게든 제 손으로 넘기는 것 뿐이었다. 에그시가 할 수 없다면 제가 해야 했다. 해리가 재빠르게 에그시의 안을 파고 들어 오른 팔뚝을 잡았다. 에그시가 펄쩍 뛰며 가까스로 손을 뒤로 빼냈다. 팔뚝이 시큰거리는 것으로 보아 해리는 진심이었다. 에그시가 멀어진만큼 틈을 파고 든 해리가 어깨를 향해 팔을 휘둘렀다. 몸을 빙그르르 돌려 겨우 피한 에그시가 숨을 고르기도 전에 해리가 에그시의 멱살을 잡아 올렸다. 에그시가 버둥거리며 해리의 팔목을 잡았다.


 “잠깐, 잠깐만 좀 기다려요!”

 “그러다 곧 세상이 사라지겠구나.”

 “그래도 마음을 정리할 시간은 줘야 하는거… 악!”


 더 말을 잇기도 전에 해리가 손날로 에그시의 팔을 내리 쳤다. 뼈 안쪽에서부터 화끈한 고통이 타고 올라오는 것으로 보아 적어도 금이 간 것이 확실했다. 절로 손에 힘이 빠진 에그시가 총을 떨구자 해리가 재빠르게 손을 뻗었다. 눈물이 찔끔 맺힌 에그시가 그 상태에서도 발을 들어 총을 제 뒤쪽으로 밀어쳐냈다. 둘에게서 멀찍이 떨어져간 총이 바닥을 데구르르 굴렀다.


 여전히 아릿한 통증이 오른손을 휘감고 있었지만 투덜거릴 시간이 없었다. 높이 솟은 건물의 전광판에 대문짝만하게 숫자가 걸려 있었으니까. 벌써 3분이 훌쩍 넘어 있었다. 해리는 멱살을 틀어쥐고 있던 에그시를 강하게 밀쳐낸 후 총을 잡기 위해 다리를 뻗었다. 콜록이면서도 에그시가 팔을 허우적거리며 해리의 옆구리를 붙들어 막았다. 해리! 잠깐만요! 에그시는 제가 이 말을 도대체 몇 번이나 하고 있는 것인지 의문이 들었다.


 불행히도 해리는 에그시보다 훨씬 능숙했고, 때문에 에그시의 뒷목을 누르는 것만으로 에그시를 손쉽게 제압할 수 있었다. 에그시의 손에서 힘이 잠시 풀린 그 사이 해리는 바닥에 떨어진 총 바로 앞까지 가 있었다. 에그시는 얼굴을 잔뜩 찌푸리며 입술을 깨물었다. 빌어먹을, 내가 어떻게 해리 하트를 해친단 말야? 에그시는 이런 상황을 만들어 낸 이름 모를 적을 향해 온갖 욕설을 뱉어낸 후 눈을 질끈 감았다 떴다. 이런 식으로 싸우게 되리라곤 생각도 하지 않았지만 지금은 더 망설일 수가 없었다. 해리가 총을 줍기 위해 허리를 숙였다. 그 틈을 노려 달려든 에그시가 해리의 등을 향해 발을 날렸다.


 “큿….”

 “해리, 씨발, 진짜 존나 미안해요. 하지만 이건…!”


 예상 못한 습격에 놀란 해리가 비틀거리는 사이 에그시가 날렵하게 총을 낚아 챘다. 바닥을 뒹구는 바람에 옷이 좀 더러워졌지만 신경 쓸 거리도 아니었다. 민첩하게 다시 일어난 에그시가 자세를 고쳐 잡았다. 아주 약간 놀랐을 뿐인 해리가 다시 공격 태세를 취했다. 에그시의 눈이 아래로 축 처졌다.


 “벌써 1분도 채 남지 않았구나. 눈이 있다면 보일테지.”

 “하지만 제가 어떻게 해리를 죽여요?”

 “세상을 구하기 위해서는 살생이 가능한 것이 킹스맨이야, 에그시.”


 그건 알고 있지만… 에그시가 복잡하고 혼란스러운 머리를 정리하기는커녕, 상황을 인정하기도 전에 숫자는 30초를 가리켰다. 이제는 정말 시간이 얼마 남지 않았다. 조금만 더 끌었다간 이대로 같이 흔적도 없이 사라질 판이었다. 저와 해리는 물론, 어디선가 보고 있을 록시와 멀린 그리고 아무것도 모른 채 웃고 있을 어머니와 어린 여동생까지 모조리 다. 에그시는 피가 맺히도록 입술을 짓씹었다. 애초에 선택지는 하나였다. 고민해야 할 이유도 없었다. 누가 봐도 답이 명확한 저울질이었다.


 에그시가 천천히 총구를 해리의 머리를 향해 겨누었다. 씨발. 그 언젠가 보았던 빌어먹을 장면과 똑같은 것을 제가 재현하게 될 줄은 미처 몰랐다. 어떻게 살아 돌아온 사람인데 내 손으로 다시 죽이란 말야. 야속하게도 에그시의 손이 부들부들 떨리는 사이 시간은 오차 없이 흘러가기만 했다. 해리는 자세를 풀고 편안하게 서 있었다. 에그시와 달리 해리는 망설이고 있지 않았다. 흔들리는 것은 에그시의 손 뿐이었다. 에그시는 볼품없이 흔들리는 손을 억제하기 위해 양손으로 총을 고쳐잡았다.


 “해리….”


 9, 8, 7, 6…… 막힘없이 흐르는 시간을 향해 곁눈질을 하던 에그시가 결국 방아쇠를 당겼다. 총알은 해리의 머리를 향해 정확히 날아갔다.


 “미안해요.”


 에그시는 해리가 제 마지막 인사를 들었는지 확신할 수 없었다.





 #커플_왼쪽에게_총이_있고_5분_내로_오른쪽을_죽여야_지구의_멸망을_막을_수_있다면_왼쪽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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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저게 설마 진짜는 아니겠죠?”


 상황 설명이 끝나자마자 곧장 5분을 알리는 숫자가 화면에 떴다. 에그시가 아직 얼떨떨해하는 사이 숫자는 쉼없이 내려가기 시작했다. 어디서 누가 장난치는거 아냐? 에그시가 시덥잖은 생각을 하는 동안 해리는 천천히 안전 장치를 풀렀다. 철컥이는 소리에 에그시가 고개를 돌리자마자 보이는 것은 새까만 총구였다.


 “으악!”


 귀가 먹먹해질 정도로 시끄러운 소리가 터져나왔다. 에그시가 반사적으로 몸을 피하지 않았더라면 아마 비명을 지를 수도 없었을 것이다. 그대로 바닥에 쓰러졌을테니까. 화들짝 놀란 에그시가 세차게 두근거리는 가슴께로 손을 올렸다. 튀어나올 정도로 눈이 둥그래진 에그시가 아무렇지 않은 얼굴의 해리를 향해 빽 소리를 질렀다.


 “해리, 이거 존나 너무한 거 아니에요?”

 “시간이 없단다, 에그시.”

 “아니, 해리, 잠깐… 우왓. 해리, 내 말을… 꾸엑!”


 에그시가 잔뜩 목청을 높여 불평을 토로하든 말든 해리는 망설임없이 총을 쏘아댔다. 쫑알거리면서도 에그시는 어떻게든 총알을 피했다. 에그시가 날렵하게 몸을 움직이며 헉헉거리는 사이 해리는 그 자리에서 단 한발도 움직이지 않고 있었다. 총알이 스쳐 찢어진 어깨 부분을 손바닥으로 쓸어내리며 에그시가 질렸단 얼굴을 했다. 해리를 한두 번 보는 것도 아닌데다 이런 절체절명의 위기에 처한 적도 벌써 여러번 이었으나 이번만큼은 당황하지 않을 수가 없었다. 에그시가 이맛살을 찌푸리며 툴툴거렸다.


 “망설이는 척이라도 해야 하는 거 아니에요?”


 해리는 아무 말 없이 에그시의 이마 쪽으로 총구를 들이밀었다. 에그시는 양 손을 들고서 알았다는 듯 가볍게 고개를 끄덕였다. 어차피 해리에게서 완벽히 도망칠 수 있다곤 생각하지 않았다. 애초부터 죽음을 피할 생각도 없었지만. 그래도 조금 서운하기는 했다. 그렇게 고민할 틈도 없이 총부터 쏴대다니 충격이야. 에그시가 뾰로통한 얼굴로 해리를 노려보았다.


 “적어도 마지막 인사를 할 시간은 줘야하잖아요.”

 “그래, 말해보렴.”

 “사람 진짜 냉정하네.”


 에그시가 혀를 내빼며 고개를 절레절레 저었다. 총을 쥔 해리의 손에 더욱 힘이 들어갔다. 에그시는 농담이라며 어색하게 입꼬리를 올려 보았다. 마지막의 마지막까지 너무 그대로인거 아냐, 이 사람? 하지만 에그시는 곧 해리가 못하겠다고 하는 모습을 떠올리려다 작게 혀를 차고 말았다. 상상도 할 수 없는 모습이었다. 그건 해리 하트가 아니었다.


 위기와 맞서고 있는 직업이니 언제 어디서 죽음이 찾아와도 당황하지 않게 준비는 미리 해두고 있었다. 이미 제가 죽은 후에도 어머니와 여동생이 잘 지낼 수 있도록 처리도 다 해놓은 상태였고, 그들에게 줄 마지막 메세지까지 다 적어둔 뒤였다. 실은 저와 함께 지냈던 록시와 멀린에게까지 마지막으로 하고 싶은 말을 다 골라두었다. 갑자기 죽음이 저를 감싸안는다 할지라도 놀라지 않고 작별을 고할 수 있도록.


 하지만 마지막까지 에그시가 정하지 못한 것은 해리 하트에게 할 말이었다. 마음 속으로 에그시는 저와 해리, 둘 중 누군가가 죽는 상황이 된다면 그것은 100% 제가 되리라 여기고 있었다. 해리는 쉽게 죽을 사람이 아니었다. 그러니 모두가 죽었다고 생각했던 그 상황에서도 보란듯이 살아왔지. 하지만 저는 아니었다. 해리처럼 능숙하지도 않았고 노련하지도 못했으며 그렇다고 실력이 엄청나게 뛰어난 것도 아니었다. 정말 코앞까지 죽음이 다가온다면 저는 꼼짝없이 죽고 마리라. 그래서 에그시는 제가 해리에게 남길 수 있는 마지막 메세지를 고심하고 또 고심했다. 허나 쉽게 답이 나오지 않았다.


 해리는 입을 벙긋거리고만 있는 에그시를 인내심 있게 기다려주었다. 흐르는 시간이 자꾸만 해리의 귓가를 파고 들었다. 숫자가 0을 가리키기 전에는 모든 것을 끝내야만 했다. 고민 할 일도 아니었고, 실제로 해리는 고민하지 않았다. 킹스맨이 아니더라도 마찬가지이다. 지나가는 사람 아무나 붙잡고 물어봐도 결론은 같았다. 이 세상 전부와 철없고 어린 남자 아이 한 명은 그 무게가 다를 수 밖에 없었다. 그건 해리에게도 마찬가지였다.


 “젠장. 며칠을 고민해도 그럴듯한 말이 나오질 않았는데 5분 안에 결정하라니 더 머리가 안 돌아가잖아요!”

 “정확히는 1분 34초지, 에그시.”

 “아, 진짜! 재촉하지 말아요. 그러니까 제가 하고 싶은 말은… 일단 당신에게 정말, 진짜, 존나 고맙다는 거고….”


 마지막 순간까지 엉망진창인 에그시의 말투에 상황과 어울리지 않게 해리의 입꼬리가 위로 비죽 솟았다 다시 아래로 내려갔다. 눈을 굴리며 이런저런 말을 고르느라 에그시는 미처 보지 못했다. 아우, 진짜! 생각이 잘 정리되지 않는지 에그시는 쿵쿵 발을 굴러댔다. 고작 그런 행동을 하는데 30초가 훌쩍 가고 말았다. 이제는 정말 말을 전해야 했다. 아무 말 하지 못하고 죽어버린다면 그것만큼 후회되는 일도 없을테니까. 에그시는 바짝 타기 시작한 입술을 축이며 큼큼, 작게 헛기침을 했다.


 “당신을 만나지 않았다면 내 삶은 아마 그대로 시궁창이었겠죠. 어쩌면 오늘보다 더 전에 죽었을지도 모르고요.”


 에그시가 어깨를 으쓱이며 가볍게 웃었다. 숫자가 아래로 떨어지는 소리가 둘 사이를 가득 메웠다.


 “당신은 그 때 매너가 사람을 만든다고 했지만….”


 쑥스러운 듯 머리를 긁적이며 웃은 에그시가 해리와 시선을 맞추었다.


 “나를 만든 건 당신이에요, 해리.”


 동시에 카운트 다운이 시작되었다. 방아쇠에 올려진 손가락에 바짝 힘이 들어갔다. 에그시는 이제 마지막일 해리 하트의 얼굴을 최대한 머리에 담기 위해 노력했다. 이 결정을 받아들이고는 있었지만 초조한 것은 어쩔 수가 없었다. 입술을 잘근 깨물며 에그시가 어색히 웃었다.


 “세상까지 구해놓고 날 따라오진 말고요.”

 “에그시.”

 “뭐, 어차피 그럴 일도 없겠지만?”


 순간 해리의 눈이 잠시 커지는 것을 똑똑히 본 에그시가 푸흐 웃고 말았다. 그래도 제가 생각하기에 마지막 메세지가 그렇게 나쁜 것 같지는 않았다. 후회가 남지 않는다면 거짓이겠지만 미련을 두고 싶지는 않았다. 해리의 손에 힘이 들어갔다. 총구가 제 이마를 짓누르는 것이 선연히 느껴졌다.


 “정말 고마워요, 해리.”


 곧 강렬한 소리가 둘 사이를 찢어놓았다. 힘없이 바닥으로 떨어지는 어린 몸 너머로 평온한 세상이 해리의 눈에 가득 들어찼다. 에그시 언윈이 더는 존재하지 않는다는 점만 빼면 무엇 하나 달라진 것이 없는 세상이었다. 해리는 한동안 말없이 그 곳에 서 있었다. 해리는 제가 저울질 했던 것을 떠올렸다. 추의 무게는 확실히 달랐다. 곧 해리는 세상 무엇보다 무거웠던 시체를 안아 들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