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D 2.5D NOTICE GUEST

 마음이 엉키면 사랑이 된다죠. 이젠 풀 수 없어요. 잘라내는 수 밖에.

 *



 “아, 이 씨발 새끼야.”


 에그시가 터진 입가를 손끝으로 톡톡 두드리며 눈을 찌푸렸다. 살짝만 건드려도 따끔거리고 아파왔다. 아무래도 찰리가 조절 못하고 한 방 날렸을 때 터진 듯 했다. 그 옆에서 옷매무새를 정리하고 있던 찰리가 부어오른 에그시의 얼굴을 힐끔 보다가, 아직 멍울이 다 빠지지 않은 광대를 손으로 꾹 눌렀다. 놀란 에그시의 몸이 위로 튀었다.


 “미친놈아! 아프다고!”

 “오래 가네, 그거.”

 “남일 처럼 말하시네.”


 이렇게 시퍼런 자국을 남긴 사람이 누군데. 에그시는 툴툴거리며 찰리의 손을 매섭게 쳐냈다. 찰리는 가볍게 어깨를 으쓱였다. 벌써 며칠이 지났는데도 한쪽에 선명히 자리 잡은 흔적이 자꾸 찰리의 시선을 끌었다. 찰리는 아예 에그시를 등지고 몸을 돌려버렸다.


 자주 때리냐고 묻는다면 그건 아니었다. 거칠고, 성급하고, 부드러움이라곤 찾아볼 수 없는 관계였으나 폭력과는 거리가 멀었다. 뜯어버릴 것처럼 입술을 겹친다거나 허벅지가 붉어질 정도로 짓씹는 것도 일종의 폭력이라 말한다면 할 말은 없었지만. 뒤를 파고드는 움직임도 거칠기 짝이 없었으나 그렇다고 에그시가 피를 본 적이 있는 것도 아니었고, 찰리는 제법 꼼꼼히 안을 넓혀주는 편이기도 했다.


 주먹이 날아오는 것은 아주 가끔이었다. 요즘 들어서는 그 빈도가 잦아지고 있는 것 같았지만. 왜 갑자기 찰리가 제게 주먹을 날리는 지는 에그시도 알 수 없었다. 딱히 서로에게 잘못한 일이 있는 것도 아니고, 분위기도 나쁘지 않은 상황에서 찰리는 뜬금없이 주먹을 휘둘렀다. 물론 에그시라고 가만히 맞고만 있는 것은 아니었다. 서로의 옷을 벗기며 입 맞추기에 급급했던 둘이 마구잡이로 주먹을 날리며 바닥을 뒹구는 일이 이제는 익숙하기까지 했다.


 에그시는 가능하면 입술에 닿지 않도록 노력하며 주섬주섬 옷을 챙겨 입었다. 아래만 벗었던 찰리와 달리 양말까지 남김없이 싹 다 벗은 에그시는 입을 것도 한 둘이 아니었다. 에그시가 대충 다 껴입은 것을 확인한 찰리가 손에 들고 있던 것을 에그시에게로 툭 던졌다. 반사적으로 잡아 챈 에그시가 한쪽 눈썹을 치켜떴다. 상처에 덧바르는 연고였다.


 “너 요즘 왜 그러냐?”


 얼결에 받아 든 에그시가 고개를 갸웃했다. 진짜 병 주고 약 주네. 그럴거면 처음부터 때리질 않으면 될 것을, 찰리는 꼭 주먹을 휘두르고 나서 연고며 반창고 따위를 챙겨주었다. 어차피 잘 사용하지도 않는지라 주든 말든 크게 상관은 없었으나 이런 일이 몇 번 반복되자 의아한 것도 사실이었다. 조금은 짜증이 나기도 했고. 에그시의 질문에도 찰리는 여전히 말이 없었다.


 언제부터 이렇게 됐지? 에그시는 천천히 기억을 더듬거렸다. 분명히 찰리의 첫인상은 최악이었다. 다짜고짜 저를 조롱하면서 시비를 거는 것이 마음에 들지 않았으니까. 저와는 다른 세계에서 살아온 것이 분명한 옷차림과 낯짝을 하고서 입꼬리를 비틀어 올리던 것을 에그시는 똑똑히 기억했다. 건방지고 재수 없는 도련님이라고 생각했지. 아마 찰리도 마찬가지였을 것이다. 뒷골목 전전하던 양아치가 어떻게 굴러 들어왔지? 뭐 그런 얼굴을 하고 있었으니까.


 딘과 그 패거리들은 찰리와 달리 귀족이 아니었지만 어쨌거나 그들 덕에 괴롭힘이나 이죽거림에는 상당히 이골이 나있는 에그시였다. 에그시는 철저하게 찰리의 시비를 무시했다. 간혹 대꾸를 해주긴 했으나 그 역시도 찰리가 원하는 반응은 아니었다. 주로 찰리가 같잖은 이유로 시비를 걸었고, 에그시는 낮게 으르렁거리거나 아예 모르는 척 뻔뻔한 얼굴로 그를 지나쳤다. 록시가 대신 화를 내는 경우도 종종 있었다. 찰리의 속이 부글부글 끓기 시작한 것도 그 즈음이었다.


 “어떻게 여기까지 남았는지 모르겠군, 에기.”

 “오, 너랑 마음이 맞을 때도 있네. 기분 존나 더럽지만.”


 록시는 멀린과 따로 이야기할 것이 있다며 자리를 비운 상태였다. 찰리는 늘 그렇듯이 먼저 말을 걸어 왔다. 당연히 듣기 좋은 소리는 아니었다. 에그시는 잠이 든 JB를 제 침대 위에 조심히 내려놓으며 대꾸했다. 더 엮이고 싶지 않은 건 에그시 역시 마찬가지였다.


 “내가 그 점에 대해 열심히 고민해봤는데, 아무리 해도 다른 뜻으로 밖에 해석이 안 돼.”


 흠. 보나마나 개소리가 튀어나올 것이 뻔하지만 에그시는 팔짱을 끼고 고개를 치켜들었다. 어디 한 번 들어나 보자는 의미였다. 찰리의 입매가 비스듬히 올라갔다.


 “네 추천인이나 멀린에게 뒤라도 대준 거 아냐?”

 “…뭐?”

 “이미 몸을 판 적이 있잖아. 처음도 아닌데 그리 어려운 일은 아니었겠지.”

 “설마 그 덜떨어진 머리로 하루 종일 고민해서 내린 결론이 그 좆같은 말이란 건 아니겠지?”


 어이가 없어서 실소가 다 나왔다. 에그시의 황당한 얼굴에도 찰리는 제 말을 확신하는 듯 고개를 끄덕였다. 늘 생각했던 거지만, 찰리는 허우대만 멀쩡했지 생각하는 부분에 있어서는 영 꽝이었다. 머리가 둔한가? 그런 생각을 하며 에그시는 혀를 찼다.


 “그래, 그렇담 어쩔 건데?”


 곧바로 이어지는 뻔뻔한 대답이 찰리가 얼굴을 찌푸렸다. 뭐? 에그시는 코웃음을 쳤다. 실제로 몸을 판 적이 있는 건 아니지만 그렇다고 남자와 몸을 섞은 적이 없는 건 아니었다. 하지만 그게 다 어쨌단 말인가? 눈앞의 찰리와는 하등 상관없는 일이었다. 태연하게 답하는 에그시와 달리 찰리는 그런 반응을 예상하지 못했는지 어이가 없는 얼굴이었다.


 “혹시 잘나신 귀족 도련님께서 나같은 렌트 보이 뒤를 탐하고 싶어진 건가?”

 “무슨 말도 안 되는 소릴…!”

 “알았으면 찰리, 제발 그 빌어먹을 입 좀 다물고 제대로 된 생각이란 걸 해.”


 더 말을 하고 싶은 마음도 없었다. 에그시는 올해 들은 개소리 중에서도 제일 위부분에 방금 찰리가 한 말을 올려야겠다고 생각했다. 콧방귀를 뀌며 에그시는 그대로 몸을 돌려 나가려 했다. 더 있어봤자 기분만 나빠질 것이 뻔했다. 에그시가 그렇게 하지 못한 것은 찰리가 다급하게 제 어깨를 잡아왔기 때문이었다. 에그시가 짜증이 잔뜩 섞어서 그런 찰리의 손을 뿌리쳤다.


 “씨발! 또 뭔데!”

 “잠깐 기다려.”

 “왜. 뭐.”

 “너 진짜로 한 거야?”

 “대체 뭘… 아, 씨발. 아직도 그 얘기가 하고 싶은 거냐, 지금?”


 에그시는 이 지긋지긋한 대화를 좀 끝내고 싶었다. 말도 안 되는 이야기를 대체 왜 물고 늘어지는지, 에그시로선 찰리를 이해할 수 없었다. 평소와 달리 초조한 듯 입술을 깨무는 것으로 보아 찰리 역시 그런 자신을 이해하지 못하는 것이 분명했다. 에그시는 어쩐지 경직되어 있는 찰리를 빠르게 훑어낸 뒤 결론을 내린 듯 한쪽 입꼬리를 말아 올렸다.


 “아하. 그러니까 지금, 그 나이를 먹도록 아래를 사용 안했구나? 그래서 궁금한거고.”

 “뭐?”

 “혹시 무슨 문제 있는 거 아냐? 발기 부전이냐?”


 퍽 재밌는지 에그시는 어깨까지 흔들며 킥킥거렸다. 찰리의 얼굴이 시뻘겋게 달아오르기 시작했다. 에그시의 말이 사실이라서가 아니라 모욕감과 분노 때문이었다. 지금껏 제게 그런 식으로 말을 했던 사람은 아무도 없었으니까.


 “에기, 입 닥쳐.”

 “왜? 찔려서?”


 찰리의 주먹 쥔 손이 부르르 떨렸다. 줄곧 무시하거나 짤막하게 받아치기만 했지, 이런 식으로 찰리를 비꼬며 대치한 적은 처음이었다. 에그시는 찰리가 분에 못 이겨 들썩이는 것이 꽤 재밌다고 생각했다. 왜 지금까지 무시했을까 약간 후회가 될 정도로. 시도 때도 없이 시비를 걸 때부터 느꼈지만 찰리는 제 생각보다도 더 발화점이 낮았고, 감정을 다스리는데 능숙하지 못한 편이었다. 에그시는 조금만 더 건드리면 찰리가 아예 폭발해버리란 점을 어렵지 않게 유추해낼 수 있었다. 그러면 치고 박고 싸우는 사태가 될지도 모른다는 것도.


 에그시는 그럭저럭 주먹을 쓸 줄 알았지만 결코 싸움을 잘 한다고 할 수는 없었다. 아마 눈앞의 도련님은 체격만 건장했지 싸워본 일이라곤 없겠지만 사실 체격은 몸싸움에 있어 가장 중요한 요소였다. 이성이 날아간 채로 싸우면 제가 불리할지 몰랐다. 그리고 에그시는 이런 곳에서 쓸데없이 에너지를 소모하고 싶지 않았다. 그런 꼴을 해리에게 보이는 것은 더더욱 싫었다. 그래서 에그시는 잔뜩 열이 오른 찰리의 얼굴이 씰룩이는 것을 가만히 바라보다 이쯤에서 멈추어야겠다고 생각했다.


 “이런 미친…!”


 제 양 뺨을 구기듯 잡아 온 찰리가 무작정 입술을 부딪지만 않았어도 에그시는 아무 일 없단 듯 방을 나갔을 터였다. 키스보다는 폭력에 가까운 박치기였다. 앞니가 부딪히는 바람에 욕부터 튀어나갔고, 그 틈에 찰리가 이를 세워 에그시의 입술을 콱 깨물었다. 터져 나온 피가 에그시의 입안으로 스며들었다. 에그시는 찰리의 어깨를 겨우 떼어 냈다.


 “씨발놈아, 무슨 짓이야?”


 설마 입 다물라고 이딴 미친 짓을 한 건 아니겠지? 에그시는 피가 흐르는 제 입가를 대충 문지르며 쏘아붙였다.


 “천한 놈들은 직접 보지 못한 것은 믿지 않는다고 배웠거든.”

 “뭔 개소리냐고.”

 “직접 경험해보라는 거다.”


 말을 채 마치기도 전에 찰리가 에그시의 몸을 확 돌려버렸다. 그러곤 뒤통수를 강하게 눌러 벽으로 밀쳤다. 부딪힌 이마며 뺨이 아프고 골이 띵하고 울렸다. 에그시는 벗어나기 위해 버둥거렸으나 제 머리통을 짓누른 찰리의 손을 쳐낼 수가 없었다. 뺨이 뭉개진 채로 에그시가 팔을 퍼덕였다. 찰리는 모든 것을 무시하고 에그시의 허리춤에 손을 올렸다. 서늘한 감각이 에그시의 세포를 쭈뼛거리게 만들었다.


 “씨발, 야, 너, 아니지?”


 진짜 돌아버린 거 아냐? 당황한 에그시가 몸을 더 버둥거렸으나 그럴수록 찰리는 더욱 강하게 에그시의 등이며 머리를 압박해왔다. 말이 씨알도 먹히지 않는 것으로 보아 찰리는 지금 제정신이 아닌 것이 분명했다. 에그시는 적당히 놀릴 걸, 후회하며 몸을 들썩였다. 다급하게 움직이다보니 오히려 손이 자꾸만 어긋났다. 찰리는 에그시의 속옷 안으로 손을 쑥 집어넣었다. 에그시의 몸이 뻣뻣하게 굳었다.


 “어차피 처음도 아니라며?”

 “미친 새끼야, 지금 그게 중요한 게 아니…!”


 흡, 에그시가 숨을 들이켰다. 에그시의 귓가에 얼굴을 들이댄 찰리가 귓바퀴를 잘근잘근 씹어댔다. 찰리가 뜨거운 숨을 토해낼 때마다 귀가 간지러워 몸에 소름이 돋았다. 조금 전 입술을 엉망진창으로 물어뜯었던 것과 달리 귓등과 목덜미를 간질이는 혀는 농밀했고 또 부드러웠다. 어이없게도 에그시는 찰리가 거칠게 숨을 내뱉으며 목덜미를 핥아 올릴 때마다 제 안에서 열이 훅 차오르는 것을 느꼈다. 에그시는 하마터면 소리가 나올 뻔한 입을 꽉 다물며 주먹을 쥐었다.


 동시에 찰리의 손가락이 에그시의 둔부 사이를 가르고 들어왔다. 아주 살짝, 그 끝만 들어갔을 뿐이지만 허벅지 근육이 팽팽히 당겨지며 아랫배에 힘이 들어갔다. 곧 좁은 살덩이를 비집고 안을 더 채울 것을 생각하며 에그시는 눈을 질끈 감았다. 그리고 그 순간 경쾌한 노크 소리가 울렸다. 에그시는 물론이고 찰리의 움직임도 그대로 뚝 멎었다.


 “들어갈게.”


 너머로 들리는 목소리는 록시였다. 에그시는 찰리의 손에서 힘이 빠진 사이 그를 밀쳐내고 후다닥 옷을 정리했다. 마치 아무 일도 없던 것처럼 옷을 툭툭 털어내며, 문고리를 잡아 열었다.


 “록시!”

 “…무슨 일 있었어?”

 “아니, 아무것도.”


 에그시는 어색하게 웃으며 고개를 저었다. 찰리는 굳게 입을 다문 채 말이 없었다. 어쩐지 넋이 나간 것 같기도 했다. 에그시는 찰리를 그대로 버려둔 채 록시를 붙잡고 서둘러 그곳을 빠져나왔다. 록시가 교양 있고 매너 있는 사람이라 다행이라는 생각을 하며.


 “에그시, 찰리가 또 시비를 걸었구나.”

 “뭐… 늘 있는 일이니까.”

 “그래도 이번에는 둘 다 좀 이상해 보이던데. 설마 싸우기라도 한 거야?”


 으음… 그걸 싸웠다고 해야 하나? 차라리 싸운 게 나을지도 몰랐다. 에그시는 천천히 고개를 저었고 록시는 미심쩍은 얼굴로 에그시를 살폈다. 아직도 귓가가 후덥지근했다.


 결과가 어찌됐건 그 날의 일이 둘의 관계를 틀어버리는 역할을 한 것은 틀림없었다. 찰리는 답지 않게 그 이후로는 시시껄렁한 시비를 걸지 않았고, 에그시 역시 찰리에겐 눈길 한 번 주지 않았다. 볼 때마다 자꾸 터지도록 입술을 깨물었던 것이나 질척하게 목덜미를 핥던 것이 생각나 기분이 이상했기 때문이었다. 실로 오랜만에 뒤를 건드리는 손가락은 그보다 더 했다. 에그시는 어떻게든 그것을 잊기 위해 부단히 노력했다. 그 노력을 깨뜨린 것은 다름 아닌 찰리였다.


 “어이, 에그시.”


 그로부터 며칠이 지난 뒤였고 에그시는 나름대로 그것들을 기억 저편에 구겨넣는데 성공한 상태였다. 그러나 찰리는 아니었다. 에기도 아니고 에그시라고 정확히 이름을 불러 온 찰리는 아주 진지한 얼굴을 하고 있었다. 처음 보는 그 얼굴에 에그시는 절로 목이 타는 것을 느꼈다.


 “할 말이 있어.”

 “해.”


 늦은 밤이었고, 주위에는 아무도 없었다. 다른 곳으로 가야하나 싶었지만 일부러 장소를 피하는 것이 더 우스울 것 같았다. 에그시는 가볍게 고개를 주억거렸고 찰리는 그런 에그시의 앞으로 한 발 다가왔다. 에그시가 눈을 깜빡였다. 뭐지, 이 새끼. 왜 다가오지? 에그시가 반사적으로 뒷걸음질 치자, 찰리가 이번에는 팔뚝을 확 낚아챘다.


 “씨, 씨발, 뭐야.”


 순식간에 찰리의 얼굴이 앞으로 훅 다가왔다. 코끝이 닿을 정도의 거리였다. 이렇게 가까이에서 찰리의 얼굴을 바라본 적은 없었다. 긴장으로 굳은 에그시가 뒤늦게 꺼지라고 말하기 위해 입을 열었을 때, 찰리의 혀가 그 틈새를 파고들었다. 예전에 했던 키스처럼 거칠지는 않았다. 그래서 다급한 것은 마찬가지라 찰리는 에그시가 숨을 쉬지 못할 정도로 그를 몰아붙였다. 질척이며 안을 헤집는 살덩이에 에그시의 몸에서 힘이 쭉 빠졌다.


 갑작스러웠지만 아예 예상 못한 상황은 아니었다. 에그시는 천천히 주먹을 쥐었다. 찰리는 팔을 잡고 있던 손을 들어 올려 에그시의 양 볼을 붙잡았다. 안으로 모든 것을 쏟아 붓는 것처럼 자꾸만 들이미는 통에 에그시는 속도를 맞추기가 어려웠다. 찰리가 자꾸 제 얼굴을 잡아당겨 이제는 발뒤꿈치까지 들어야 했다. 에그시는 헉헉거리면서도 솔직히 저를 간질이는 찰리의 키스가 기분 나쁘지 않다고 생각했다. 오히려 몸을 달뜨게 만들었다.


 찰리는 잠깐 입술을 떼고 에그시와 눈을 맞추었다. 여느 때보다도 진지한 눈에 흥분과 쾌락이 깃들어 있었다. 찰리는 다시 입술을 겹쳐왔다. 아주 잠깐 고민하던 에그시는 에라 모르겠다 하며 그 혀를 받아들였다. 같이 서로의 입을 탐하고 혀가 엉겼다. 뜨거운 숨이 서로의 안을 맴돌았다. 에그시는 제 몸이 뒤로 넘어가는 것을 느꼈지만 굳이 힘을 주어 버티지 않았다. 곧 푹신한 감촉이 등을 간질였고 에그시는 찰리의 목덜미에 팔을 둘렀다.


 끝까지 간 건 그 날이 처음이었다. 그리고 시작이었다. 에그시는 물론이고 찰리 또한 다분히 충동적으로 저지른 이 관계가 상당히 만족스러웠다는 사실에 혼란을 느꼈다. 상대방에게 이런 구석이 있었나 싶을 정도였다. 에그시는 제법 다정하게 굴면서도 채울 것은 남김없이 채워주는 찰리에게 착실히 흥분했고, 찰리는 제가 움직일 때마다 아래를 가득 조이며 매달리는 에그시를 보는 것이 좋았다.


 뭐든지 시작이 어려운 법이었고, 물꼬를 틀면 그 뒤는 저절로 흐르기 마련이었다. 둘은 종종 몸을 섞기 시작했다. 눈에 스파크가 튄다고 생각하는 순간 입술이 부딪히는 것은 일도 아니었다. 한 번이 두 번이 되고, 그렇게 양 손으로 세기도 힘들 만큼 몸을 겹친 후에 둘은 아예 생각하는 것을 포기했다. 어차피 이 내부에서 성욕을 풀만한 것은 자위 외에는 마땅히 존재하지 않았고 그런 의미에서 둘의 관계는 서로에게 이득이었다.


 “나 먼저 가본다.”


 여전히 말없이 서있는 찰리를 지나쳐 에그시가 먼저 문을 열었다. 찰리가 무슨 생각을 하는지 알 수 없었지만 오히려 그렇기 때문에 신경 쓰고 싶지 않았다. 갑자기 주먹을 휘두르는 것이 불쾌하기는 했으나 그렇게 심한 것은 아니었기에 아직은 참을 수 있었다. 어디까지 버틸 수 있을지는 모르겠지만. 에그시는 여전히 가만히 있는 찰리를 곁눈질로 살피고선 등을 돌렸다.


 이런 관계가 과연 언제까지 이어질까. 그런 생각은 찰리 역시 했다. 그리고 변화는 찰리에게서 일어났다. 찰리는 그것이 조금 억울했다. 따지고 보자면 에그시와의 교류에서 늘 처음을 트는 것은 제 몫이었다. 에그시가 어떻게 느꼈든 간에 찰리는 그에게 말을 거는 것으로, 입을 맞추는 것으로, 그리고 감정을 키워나가는 것으로 늘 전환점을 제공했다. 매번 늘 앞서나가고 있다는 것이 문제이긴 했지만.


 당연히 처음부터 이런 간지러운 감정은 아니었다. 에그시가 눈에 거슬렸고, 그래서 괴롭히는 것이 맞았다. 하지만 어느 순간부터는 그 입에서 나올 말이 기다려졌다. 그렇게 무시하지만 말고 나를 똑바로 보고 대답을 하란 말이야. 아주 가끔 에그시가 꺼지라고 눈을 부라릴 때 찰리는 묘한 흡족마저 느꼈다. 찰리는 인정해야 했다. 제가 안달내고 있다는 것을.


 그래도 이런 식은 아니었는데. 호감과 호기심이 뒤섞인 감정은 그와 몸을 겹칠 때마다 조금씩 다른 의미로 변질되기 시작했다. 찰리는 제가 마치 연인이라도 되는 것처럼 에그시의 입술에 부드럽게 키스할 때면 깜짝 놀라 몸을 떼어내곤 했다. 아프지 않도록 그의 성감대에 정성스레 입을 맞추고 아래를 풀어줄 때는 또 어떠한가. 엎드린 채 저를 받아내고 있던 에그시의 뒷목에 몇 번이고 쪽쪽 입을 맞추다 마침내 제 것이라는 표식까지 남기고 말았을 때, 찰리는 아연해하고 말았다.


 이건 아니었다. 아무 감정의 교류 없이 몸을 섞는 것과, 한쪽이 질척이는 것은 큰 차이가 있었다. 좋게 끝날 가능성이 있는 관계도 아니었다. 대체 어쩌다 이렇게 된 거야? 찰리는 과거의 저에게 잔소리를 퍼붓고 싶었다. 허나 그것은 불가능했고 찰리는 대신 다른 돌파구를 찾아야 했다.


 찰리는 제 아래의 에그시가 사랑스럽다고 느낄 때마다 저도 모르게 주먹을 휘둘렀다. 처음부터 의도한 것은 아니었다. 바르작거리며 제 이름을 부르는 에그시가 평소보다도 더욱 사랑스럽게 느껴졌던 순간, 찰리는 그 감정을 부정하듯 에그시의 뺨을 내리쳤다. 갑작스러운 행동에 양쪽 모두가 다 놀랐다. 에그시는 발갛게 부어오르는 뺨을 더듬거리다 뒤늦게 화를 냈다.


 “씨발놈아, 지금 뭐한 거냐?”


 화를 내긴 했지만 어안이 벙벙한 것은 마찬가지라 에그시가 황당해하는 것이 다 느껴졌다. 찰리는 대답을 할 수 없었다. 우스운 것은 제가 그렇게 해놓고 미안하다며 조심히 그 뺨에 입 맞추고 싶은 충동을 느끼는 제 자신이었다.


 찰리는 그렇게라도 에그시를 부정해야겠다고 생각했다. 시작부터 제대로 된 관계는 아니었고, 앞으로 감정이 좋아질 일도 없었다. 그렇다고 이제 와서 그를 안는 행위를 멈추고 싶지는 않았다. 제가 고집을 부리고 있다는 것을 찰리 스스로도 잘 알았으나 놓을 수는 없었다. 그래도 시간이 흐르다보면 언젠가는 서로가 필요 없다고 느껴지는 순간이 찾아올 터였다. 찰리는 가능한 그 날이 빨리 찾아오기를 기다리며 어떻게든 제 감정을 키우지 않기 위해 노력했다. 그 방법이 에그시를 상처 입히는 것이 될지라도 말이다.


 “에그시, 그 입술은 설마… 또 찰리 짓이니?”

 “걱정하지 않아도 돼, 록시.”

 “어디서 격투라도 배운대? 요즘 들어 부쩍 몸싸움이 잦잖아!”


 에그시가 터덜터덜 돌아오자 제 강아지를 상냥하게 쓰다듬어주고 있던 록시가 깜짝 놀라 몸을 일으켰다. 입술이 터진 것이 가장 먼저 보였다. 록시는 주먹까지 쥐며 더는 안 되겠다고 소리를 높였으나 에그시는 작게 고개를 흔들었다. 그럴 필요 없어, 록시.


 록시가 애태우며 발을 동동 구르는 사이 찰리 또한 안으로 들어섰다. 록시는 찰리를 보자마자 매섭게 눈을 째렸다. 찰리는 곤란한 얼굴로 록시의 옆에 서있는 에그시를 힐끔 쳐다보았다. 허공에서 눈이 마주쳤다. 에그시의 알 수 없는 눈을 하고 있었다. 찰리는 먼저 시선을 돌렸다.


 언제나 먼저 시작하는 것은 저였으니 지금도 다시 제 차례였다. 저 멍청이가 제 감정을 알아차리기 전에 서둘러 잘라내야 했다. 찰리는 에그시의 얼굴에 아직도 선명히 남아 있는 멍울을 떠올리며 조용히 눈을 감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