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D 2.5D NOTICE GUEST


 쿠로코는 눈 앞의 이 질리지도 않는 상황을 언제까지 지켜봐야 하나 고민중이었다. 늘 그렇듯이 카가미에게 괜한 시비를 걸면서 불평을 투덜거리는 아오미네와, 매번 그렇다는걸 알면서도 발끈하고 마는 카가미를 보며 쿠로코는 작게 한숨을 내쉬었다. 오늘은 카가미가 맛있는걸 만들어 주겠다고 기껏 쿠로코까지 초대한 날이었는데 아오미네는 뭐가 마음에 안들었는지 맛있어 보이는 반찬을 보고 입을 삐죽 내밀고 나선 것이다. 실은 그게 쿠로코를 초대해서 살짝 삐졌다는 시위란 것을 쿠로코는 눈치챘으나 정작 카가미는 짐작도 못하고 있었다. 물론 쿠로코는 그 사실을 알려줄 생각도 없었다.


 “별로야.”

 “아오미네 너, 먹어보지도 않았으면서 뭐가 별로란 거야!”

 “모양이 별로야.”


 괜한 트집을 잡는 아오미네를 노려보던 카가미가 아오미네 앞에 놓인 토마토 스파게티를 치워버렸다. 뭐하는 짓이냐고 얼굴을 구기는 아오미네를 향해 흥, 하고 코웃음을 친 카가미를 보며 쿠로코는 고개를 절레절레 저었다.


 “어이, 뭐하는 짓이냐. 내놔.”

 “먹기 싫으면 먹지마.”

 “좋은 말로 할 때 내놔라.”

 “불평하는 놈한테 줄 건 없네요.”


 아오미네를 놀리는게 재밌는지 카가미는 작게 콧노래까지 불렀지만 아오미네의 심기는 한없이 불편해지고 있었다. 안그래도 험악한 인상을 잔뜩 찌푸리고 있던 아오미네가 곧 자리에서 덜컥 일어섰다. 의자를 박차고 소리에 카가미가 움찔하고 어깨를 떨었지만 아닌 척 하면서 슬쩍 고개를 돌렸다. 분명 조금 전까지 눈살을 찌푸리고 있던 아오미네가 어찌 된 일인지 카가미를 보고 씩 웃어보였다. 재밌을 것 같다는 얼굴을 한 아오미네를 보고 카가미는 조금 불안해졌다.


 “…무슨 생각하냐?”

 “별로. 그냥 근처에서 이런걸 팔길래 한 번 사봤는데 써보면 어떨까 싶어서.”


 별로라고 하는 주제에 목소리 가득 장난끼가 묻어나왔다. 아오미네는 의자 옆에 내팽겨두었던 커다란 가방에서 주섬주섬 무언가를 꺼냈다. 저게 뭐지 하고 아오미네를 가만히 지켜보던 카가미와 쿠로코는 곧 그 안에서 나온 물건에 경악을 금치 못했다. 가방에서 나온 건 빔이라도 내 뿜을 것 같은 바주카 모양을 하고 있었다. 저 미친 놈이 대체 무슨 장난감을 산거야! 카가미가 들고 있던 토마토 스파게티를 다시 내려놓으며 얼굴을 일그러뜨렸다. 아오미네가 저렇게 자신만만하게 웃을 때는 늘 신변에 좋지 않은 일만 벌어지곤 했다. 평소엔 아무것도 들지 않고 자기 집처럼 드나들던 아오미네가 웬일로 가방을 들고 있을 때부터 예상했어야 했다. 카가미는 제 불찰을 탓하며 조심스럽게 아오미네를 노려보았다.


 “지금 손에 든 그거 뭐냐?”

 “장난감.”

 “…어디다 쓰겠다는거야.”

 “아오미네 군이 어린앱니까?”


 가만히 지켜보던 쿠로코가 툭 내뱉자 아오미네가 아니거든? 하고 바주카를 들었다. 쿠로코는 평소처럼 아무렇지도 않은 톤이었는데 아오미네의 귀엔 어째선지 한심하다는 투로 들렸다. 아오미네가 금방이라도 쏠 것 같이 바주카를 들고 설치자 카가미가 아오미네의 어깨를 잡아챘다.


 “뭐하는거냐, 카가미.”

 “쿠로코 말처럼 어린애도 아니고 뭐하는거냐? 뭔진 모르겠지만 집 어지럽힐거 같으니까 내려 놔.”

 “싫은데? 재밌는 일이 일어난다고 하길래, 어떤건지 궁금하기도 하고.”

 “진짜 애냐…….”

 “그러니까 빨리 비켜. 너한테 쏴버린다.”

 “아, 잠깐, 아오미네, 너…!”


 카가미가 전혀 비킬 생각을 안하고, 오히려 잡은 어깨를 꽉 쥐는 바람에 아오미네가 화를 내며 바주카를 카가미에게 향했다. 그리곤 잠시 뒤 펑 하는 시끄러운 소리와 함께 어디서 나온건지 알 수 없는 연기가 부엌에 가득 찼다. 도대체 무슨 일인가 싶어 멀뚱멀뚱 서 있는 카가미와, 눈 앞의 연기를 손으로 훠이 날리는 쿠로코 앞에 보인 실루엣은 건장한 체격의 사내였다. 사라져가는 연기 속에서 드러난 것은 푸른색의 짧은 머리칼과, 건강해 보이는 까무잡잡한 피부, 그리고 떡 벌어진 어깨의 익숙한 인물이었다. 누가 먼저랄 것도 없이 카가미와 쿠로코는 동시에 같은 이름을 입에 올렸다.


 “…아오미네?!”


 그 모습은 어딜 봐도 아오미네였다. 다른 점이 있다면 평소에는 결코 입지 않을 검은 양복을 입고 있다는 것과, 어딘지 모르게 나이가 들어보인다는 점일까. 벙찐 얼굴을 하고 있는 둘을 바라보는 아오미네 역시 상당히 놀란 눈치였다. 아오미네는 마치 상황을 판단하는 것 마냥 카가미와 쿠로코의 얼굴을 번갈아 쳐다보더니 이내 아무도 눈치채지 못하게 살짝 입꼬리를 올리고선, 낮은 목소리로 입을 열었다.


 “누구?”


 아오미네의 그 한마디는 둘을 패닉에 빠뜨리기에 충분했다. 당황해서 저도 모르게 식은 땀까지 흘리는 카가미가 어설프게 웃었다.


 “아오미네, 장난하지마. 재미 없으니까.”

 “아오미네군 어째 늙은거 같습니다.”

 “……테츠냐?”


 이 상황에서도 직설적인 멘트를 날리는 쿠로코의 묘하게 긴장한 얼굴을 빤히 바라보던 아오미네가 곧 고개를 갸웃거리며 물었다. 쿠로코는 제대로 불러놓고 자신은 무시했다는게 어쩐지 마음에 걸려서 카가미는 꿀꺽 침을 삼켰다. 뭔가, 말도 안되는 상황이 눈 앞에 벌어지는 것 같은 불안함이 등골을 오싹하게 했다.


 “테츠, 여기 어디냐? 그보다 내가 왜 여기 있는거지?”

 “아오미네 군, 머리 괜찮나요?”

 “난 언제나 천재적이고 잘났지. 내가 보기엔 내가 늙은게 아니라 네가 어려 보이는데. 그리고…….”

 “저, 아오미네, ….”

 “옆에 그 멍청해보이는 녀석은 누구냐?”



 *



 사실 다 알면서 놀리려고 모르는 척 하고 있는 거지만, 카가미의 표정은 정말 볼만했다. 아오미네는 은근 자각하고는 있었지만 깊이 감춰두었던 S심이 퐁퐁 솟아나는 것을 느끼며 카가미를 흡족하게 바라봤다. 금방이라도 울 것 같은 얼굴을 하고선 간신히 참고 있는 그 모습이 참을 수 없이 귀엽고 사랑스럽다. 조금 더 괴롭혀주고 싶을 정도로.


 “어이, 테츠. 안 나갈거냐?”

 “어딜 가실 생각입니까?”

 “그냥, 뭐. 여긴 내 집 없겠지? 그럼 네 집이라도.”


 아오미네의 말 하나 하나에 카가미의 어깨가 파르르 떨렸고, 아오미네는 놓치지 않고 세세한 움직임을 모두 캐치해냈다. 속으로 얼마나 많은 생각을 할 지 알 것 같으면서도 모르겠다. 우선 자신이라면 이런 일을 겪으면… 두 말 안하고 자신을 기억 못하는 카가미 타이가를 날려버릴 것 같은데, 눈 앞에 있는 카가미는 그러지도 못하고 꾹 입만 다물고 있었다. 카가미의 그런 점을 좋아하는 거지만. 아오미네는 느긋한 얼굴로 턱을 쓸면서 쇼파에 몸을 좀 더 깊숙히 기대었다.



 *



 “아, 정말. 더는 못 참겠다.”

 “…아오미네?”

 “아, 젠장. 미안해. 미안하다고. 울릴 생각은 없었는데.”


 잘 즐겨놓고서 이제 와서 죄책감이 마음을 짓누르는 듯 해 아오미네는 머리를 잔뜩 헝클이며 카가미에게 다가갔다. 간신히 참고는 있었지만 발그스름해진 눈가를 모두 숨길 수는 없었다. 얼굴에 둘러진 카가미의 단단한 팔뚝을 치워낸 아오미네가 고개를 숙여 상냥하게 카가미의 눈가를 쓸었다.


 “잊을 리가 없잖아, 타이가.”


 지금까지 무미건조하게 굴던 목소리와 달리 상냥함이 듬뿍 묻어나는지라 카가미는 그 말에 눈물이 더 핑 돌았다. 이 자식 앞에서 울고 싶지 않다는 생각에 참긴 했지만 그래도 슬프다. 하지만 그보다도 가슴 속 깊이에서 느껴지는 것은 안도감이었다. 아오미네가 날 잊은게 아니라는 안도감. 거짓말이 아니라 진짜였다고 생각하면…… 자신을 부드러운 시선으로 바라보는 아오미네를 마주하면서 카가미는 안도의 숨을 내쉬었다. 다행이다.


 일단 마음이 안정되고 나니까 그 다음에 솟아나는 것은 엄청난 분노였다. 이 새끼가 감히 날 가지고 놀아? 그렇게 생각하자 갑자기 발 끝에서부터 분노가 차오르는 기분이라 카가미는 부드럽게 자신의 뺨을 쓸어내리는 아오미네의 손을 쳐냈다. 놀란 아오미네가 눈을 크게 뜨는 것을 바라보며 카가미는 온 힘을 다해 그 얼굴에 주먹을 날렸다.


 “으억!”

 “죽어, 아오미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