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D 2.5D NOTICE GUEST


 “에그시, 이번에는 파티 빠지면 안 돼.”

 “알고 있어.”


 록시는 의심스런 눈초리로 에그시를 죽 훑다가 이내 자리로 돌아가 버렸다. 에그시는 소리 없이 한숨만 푹푹 내쉬었다. 이깟 파티가 다 뭐라고. 에그시는 굳이 학교에서 학년 모두가 함께 모이는 자리를 마련할 필요는 없다고 생각하며 고개를 저었다. 그러나 일 년에 한 번 있는 이 파티는 학교의 전통이었고, 또 모든 학생의 최대 관심사였다.


 수업을 듣는 둥 마는 둥 하며 에그시는 이런저런 생각이 둥둥 떠다니는 머릿속을 정리하기 위해 애썼다. 한두 번 하는 것도 아닌 파티 때문에 짜증이 난 것은 아니었다. 이질적인 것을 보는 듯한 눈초리를 받는 것도, 밀리고 치여서 파티장 밖으로 벗어나는 것도 모두 괜찮았다. 정확히 말하자면 괜찮다기보다는 크게 신경 쓰지 않았다. 에그시 역시 그들과 같이 어울리고픈 마음이 조금도 없기 때문이었다. 실제로 에그시는 작년에 온갖 이유를 대며 파티에 참석하지 않았었다. 그 바람에 록시한테 두고두고 혼이 나야 하기는 했지만, 에그시는 가능하다면 이번에도 자리하고 싶지 않았다.


 하지만 그럴 수야 없지. 에그시는 이 수업이 끝나자마자 들이닥칠 찰리를 생각했다. 혹 유치하다고 생각할까봐 티내지 않으려 하는 것 같았지만 찰리는 이번 파티를 제법 기대하고 있었다. 파티 얘기만 나오면 입술을 씰룩였고 눈썹이 꿈틀거렸다. 말하는 사이사이 터져 나오는 실소가 소리 내어 웃고 싶은 것을 꾹 참고 있기 때문이란 것을 에그시는 잘 알고 있었다. 그것이 우습기도 했지만 꽤 귀엽기도 해서 에그시는 모르는 척 해주고 있었다. 찰리는 흥분해서 목소리를 높이다가도 에그시가 빤히 시선을 던지면 큼큼, 목을 가다듬으며 화제를 돌리곤 했다.


 “그나저나 에그시, 작년에는 참석하지 않았다고 하던데?”

 “몸이 안 좋았어.”

 “정말로? 어디가?”

 “그냥, 뭐. 알바도 있었고.”


 에그시는 파티에 대해 별로 이야기하고 싶지 않았다. 이런 사교적인 만남과 왁자한 분위기에 익숙할 찰리와 달리 에그시는 그 자리가 불편하고 어색했다. 화려하게 치장한 사람들 사이에 끼어 있노라면 오히려 더 동떨어진 느낌을 받았고 정말로 제가 툭 튀어 나온 이물질처럼만 느껴졌다. 에그시가 불퉁한 얼굴로 고개를 흔들자 찰리가 옆으로 바짝 붙어 왔다.


 “거짓말이지?”

 “…알면서 뭘 물어?”


 구구절절 설명 할 마음은 없었지만, 파티가 싫다는 것만큼은 명확히 드러내며 에그시는 걸음을 빨리 했다. 찰리는 긴 다리를 뻗어 어렵지 않게 에그시를 뒤쫓았다. 조금 전까지 광대를 씰룩이던 것과 달리 퍽 진지한 얼굴이었다.


 “그래도 이번에는 참석할거지?”

 “뭐….”

 “내 옆에 있어야 하잖아.”


 그 말에 에그시의 발이 우뚝 멈추었다. 덩달아 발을 멈춘 찰리가 에그시를 똑바로 내려다보았다.


 “설마 내 옆에 덜 떨어진 못난이들이 서있는 걸 바라는 건 아니지?”

 “개소리 하지 마.”

 “그럼 참석해. 최고로 멋진 수트까지 준비했으니까.”

 “야, 설마 지난번에 사이즈 물어봤던 게 그거였냐?”

 “물론이지.”


 어릴 적에 돌아가신 아버지가 입었던 낡은 양복을 꺼내 입는 것이 조금 신경 쓰이기는 했지만 그렇다고 찰리에게 부탁하고 싶지는 않았다. 어차피 그 자리에 오래 있을 것도 아니었고 그런 값비싼 옷을 입는다고 제 가치가 덩달아 상승하는 것도 아니었다. 필요 없다고 말해봤자 찰리는 듣지 않을 테지만. 에그시는 작게 한숨을 뱉었다. 저 역시 고급스럽게 빼입는 찰리의 옆에 아디다스 차림으로 서고 싶은 건 아니었지만 그래도 이렇게 예고도 없이 제멋대로 굴 줄이야.


 에그시가 한숨만 쉬며 가만히 있자 찰리가 한쪽 눈썹을 치켜떴다. 묘하게 구겨진 얼굴에 이내 당혹이 서렸다. 물어보지도 않고 제멋대로 구는데다 고집 또한 만만찮은 찰리였으나 에그시에게는 어느 정도 무른 구석이 있었다. 특히 사귀고 나서는 더더욱.


 “마음에 안 들어? 아직 보지도 않았잖아. 내가 늘 이용하던 곳에서 특별 제작한 건데? 뭐, 에그시 네가 특별히 원하는 곳이 있으면 거기서 해도 괜찮지만… 아, 그렇다고 킹스맨인지 뭔지 그 빌어먹을 해리 하트 이름은 꺼내지마.”


 파악 못하고 헛다리를 잘 짚는다는 것이 함정이었지만.


 “찰리, 그런 문제가 아니야.”


 브랜드가 어디고, 원단이 최고급이고 말고는 중요한 게 아니라고. 에그시는 피곤한 듯 이마를 짚었다. 깊게 패인 눈가에 찰리는 다시 한 번 제가 한 말을 되짚어보았다. 역시 해리 하트 이름은 꺼내지 말았어야 했나? 하지만 그 영감탱이 존나 짜증나는 건 사실인데. 에그시는 시시각각 변하는 찰리의 얼굴을 눈에 담으며 작게 혀를 찼다.


 어쩌다가 이런 애랑 사귀게 된 걸까? 물론 찰리는 인기가 많았다. 에그시가 입학할 때부터, 그러니까 에그시와 찰리의 사이가 좋지 않던 시절부터 그랬다. 도대체 쟤의 어디가? 대체 왜? 에그시는 이해할 수 없었다. 물론 헤스켓 가문은 이름만 들어도 누구나 알법한 귀족이었고, 찰리의 다부진 몸이나 잘생긴 외모 또한 완벽에 가깝기는 했지만 그것으론 부족했다. 에그시가 보기에 찰리는 제 마음대로 구는 철부지에 말 한 번 곱게 쓸 줄 모르는 오만방자한 도련님이었다. 지금도 그 생각엔 크게 변함이 없었다. 가끔 예상 못한 곳에서 귀여운 모습을 보여주고, 제가 좋아하는 것 앞에서 쩔쩔 매는 구석이 있다는 점만 추가한다면.


 이제 와서 이유를 따져 봤자 의미 없는 짓이었다. 계기가 어떻게 되었든 에그시는 현재 찰리와 단순한 감정 이상의 것을 교류하고 있었으며 그것을 끊어내고 싶은 마음도 없었다. 이전이라면 대체 뭔데 멋대로 행동하냐며 화냈을 일에도 지금은 웃음만 나올 뿐이었다. 그래도 생각해서 해준 일이라는데, 하는 마음에 손을 뻗어 그 곱슬거리는 머리를 쓰다듬어주고 싶은 마음마저 들었다. 사람 마음이 이렇게도 변할 수 있다니. 에그시는 제 스스로가 놀라웠다.


 “난 그냥 그런 자리가 싫어.”

 “하지만 이번이 마지막이잖아.”


 에그시와 찰리는 이번 학기를 마치면 졸업이었고 더 이상 다음 파티는 없었다. 찰리는 마지막을 에그시와 함께 멋지게 보내고 싶은 것이 틀림없었다. 눈에 띄고 화려한 것을 좋아하니까. 에그시는 벌써부터 찰리가 그 자리에서 얼마나 많은 말과 웃음을 흩뿌리며 제 허리를 감싸올지, 그 장면이 눈에 그려지는 듯 했다.


 “에그시. 같이 가자.”


 결국 에그시는 고개를 끄덕였다. 찰리의 얼굴 가득 번지는 웃음을 물끄러미 보다 그 멱살을 잡아 당겨 입을 맞춘 것은 에그시가 먼저였다.


 그래서 에그시는 나름대로 마음의 준비도 하고 있었다. 꾸민다고 뭐가 많이 달라지기는 하겠느냐 만은 그래도 조금 멀쩡한 모습으로 옆에 서는 것이 찰리에게도, 제게도 좋지 않을까 하는 생각 때문에. 해리에게까지 먼저 전화를 걸어 물어보기도 했었다. 돌아온 답은 그저 평소 하는 대로 하면 된단다, 에그시. 하는 부드러운 음성뿐이긴 했지만 에그시는 그것만으로도 충분히 안정을 얻었다.


 이번만큼은 정말 제대로 파티를 즐길 수 있을 줄 알았지. 바로 며칠 전에 루푸스와 딕비가 제 앞에서 떠들지만 않았어도 에그시는 큰 걱정 없이 파티에 갔을 터였다. 조금 멋쩍은 듯 웃으며 찰리와 같이 술을 마시다가 아무도 보지 않는 틈을 타 간간이 뺨이나 손등에 입도 맞추고 그랬겠지. 그때까지만 해도 에그시는 제법 들떠 있었다.


 “2학년에 끝내 주는 여자가 있다던데.”

 “특히 그 향이 장난 아니라고 하더라.”


 굳이 제 앞에서 떠드는 루푸스와 딕비만 아니었다면 정말 계속 그랬을 텐데. 물론 둘이 의도하고 에그시 앞에서 말을 나눈 것은 아닐 테지만 에그시는 괜히 그 둘을 원망했다. 신경 쓰지 않고 있던 것을 신경 쓰게 해줘서 고맙다고 비아냥거리고 싶을 정도였다.


 “우리 학년 오메가들은 이미 다 만나봤으니까 그 때가 기회지.”

 “딕비, 너 사실 몰래 운동하는 거 다 알아.”

 “그야 알겠지. 나도 널 봤으니까.”


 시시한 이야기를 나누며 둘은 잘도 웃어댔다. 에그시는 속으로 둘에게 온갖 욕설을 날리며 숙소로 돌아갔다. 오메가? 그래, 그렇지. 파티는 학년 구분 없이 모두가 참석할 수 있는 학교 행사였고 그 말은 결국 그곳이 온갖 애정이 피어나는 만남의 장소란 뜻이었다. 실제로 파티 기간에 눈이 맞아 연인이 된 이들도 더러 있었다. 그저 배만 맞추고 끝나는 한순간의 불장난은 그보다 더 많았다. 결국 에그시는 발을 쾅 구르며 짓씹듯이 외쳐야 했다.


 “씨발!”


 갑작스런 비속어에 놀란 루푸스와 딕비는 에그시의 씩씩거리는 뒷모습을 바라보며 서로 의아한 눈길을 주고받아야 했다.


 에그시에게는 그야말로 다른 세상 이야기였다. 알파의 향이든, 오메가의 향이든 그들 고유의 체취는 오로지 그들만의 것이었다. 베타인 에그시가 침범할 수 있는 세계가 아니었다. 후천적인 노력으로는 어찌할 수 없는 천성적인 차이였다. 에그시는 그저 지나가는 말로 언뜻 들었던 여자들의 말로 찰리의 향을 추측할 수밖에 없었다. 찰리 헤스켓의 시원하면서도 부드러운 향이 좋다고. 에그시로선 가능한 그 비슷한 향수 따위를 떠올리는 것 외에는 할 수 있는 것이 없었다.


 그래도 크게 문제가 된다고 생각하지는 않았다. 고귀하게 자란 찰리는 제 향을 조절하는 법을 잘 알았고, 값싸고 달콤한 오메가의 향에 금방 취해버리는 타입도 아니었으니까. 하지만 파티는 달랐다. 암묵적인 유혹의 장이었고 모두 아낌없이 제 매력을 뽐낼 터였다. 애초에 이 학교는 온갖 상류층을 다 모아 놓은 집합소나 다름없었고 빼어난 외모에 귀한 혈통을 가진 이들은 차고 넘칠 정도로 많았다. 거기다 향긋한 오메가라는 점까지 추가된다면….


 에그시는 크게 고개를 저었다. 찰리를 믿지 못해서가 아니었다. 다만 저는 영원히 느껴볼 수 없는 그들의 세계가 이제야 피부에 훅 와 닿는 느낌이 이질적이었다. 에그시는 제 팔뚝에 얼굴을 묻고 코를 킁킁거렸다. 살내음 외에는 아무것도 느껴지지 않았다. 빌어먹을.


 평생 가질 수 없는 것을 질투하는 못난 제 자신이 싫었다. 에그시는 한없이 아래로 추락하는 마음을 가까스로 끌어 올리며 입술을 깨물었다. 가고 싶지 않았다. 보고 싶지 않았다. 아무것도 느끼지 못하면서 위축 될 제 자신이 한심해서였다.


 “에기. 무슨 생각을 하길래 내가 왔는데도 몰라?”

 “어?”


 에그시가 정신을 차렸을 땐 이미 모든 수업이 끝난 뒤였다. 에그시의 앞자리에 앉은 찰리가 인상을 쓰며 물었다. 어디 아프냐? 퉁명한 목소리와 달리 에그시의 이마에 닿는 커다란 손은 제법 부드러웠고 그만큼 상냥했다. 에그시는 그 손을 가볍게 쳐냈다.


 “됐어. 멀쩡해.”

 “진짜 멀쩡한 거 맞아?”

 “맞다니까.”


 찰리가 더 말을 걸기 전에 에그시가 자리에서 벌떡 일어났다. 그대로 가방을 챙겨 성큼성큼 걸어 나가는 에그시의 뒤를 따라가며 찰리는 얼굴을 팍 구겼다. 갑자기 기분이 가라앉은 이유를 찰리는 통 알 수가 없었다.



 *



 꼭 같이 가자고 해놓고 정작 찰리는 일이 생겨 등장이 늦었다. 결국 에그시는 록시와 함께 파티장에 들어서야 했다. 에그시가 끝까지 찰리를 기다린 탓에 시간은 꽤 지체되어 있었고 안은 사람으로 가득했다.


 “에그시. 너 정말 괜찮니?”

 “…어.”

 “오늘은 정말로 아파 보여. 내가 억지로 끌고 온 건 아니지?”


 록시는 초조한 듯 자꾸 입술을 깨무는 에그시를 걱정스런 눈길로 보았다. 몸에 딱 맞게 떨어지는 완벽한 수트를 입고도 에그시는 편해 보이지 않았다.


 “무슨 신경 쓰이는 일이라도 있어?”

 “록시, 고맙지만 아무것도 아니야. 나 괜찮아.”

 “찰리도 곧 올 거야.”

 “진짜 괜찮다니까.”


 정말로 괜찮아. 재차 강조하며 에그시는 아랫입술을 세게 물었다 놓았다. 잇자국이 남을 정도로 깊게 패인 입술을 바라보던 록시가 곧 시선을 거두었다. 정말 괜찮지는 않겠지만, 에그시의 고집으론 설명해주지 않을 것이 뻔했다.


 “머리 아프면 창가 쪽에 가서 쉴 수도 있어.”

 “록시.”

 “오, 에그시. 오해하지 마. 네가 아파보여서 하는 말이 아니야. 다만 지금 자리를 차지하지 않으면 곧 사람이 창가로 몰릴 거란 얘기였어.”

 “왜?”

 “어느 정도 시간이 지나면 머리가 너무 아프거든.”


 록시는 아무것도 떠다니지 않는 허공을 손으로 휘휘 저으며 말했다. 머리와 화장을 하고 고운 드레스까지 꺼내 입은 록시는 누가 봐도 호감이 갈 정도로 아름다운 모습이었다. 실제로 그런 록시에게 시선을 던지는 이들이 종종 눈에 들어 왔다. 록시는 에그시에게만 눈을 찡긋하며 웃었다.


 “이런 자리가 재밌기는 하지만, 오래 있으면 질식할지도 몰라. 다들 자기 향을 너무 뿜어대거든. 여기서 제 짝을 찾는 사람들이 조금 신기할 정도야.”


 그만큼 인연이라는 뜻일까? 록시가 가볍게 덧붙인 말이 에그시에게는 제대로 들리지 않았다. 그보다 에그시는 록시의 살짝 찌푸린 얼굴을 바라보다 주변으로 고개를 돌렸다. 서로를 향해 웃고 있는 많은 이들이 보였다. 단정하게 입고 다니던 이들도 오늘만큼은 눈에 확 들어올 정도로 달라져 있었다. 그러나 에그시가 판단할 수 있는 것은 고작 그 정도였다. 누구나 눈으로 확인할 수 있는 변화.


 에그시는 천천히 뒷목을 문질렀다. 머리가 복잡하기는 했어도 어지럽지는 않았다. 코를 간지럽히는 향이라곤 샴페인 정도가 다였다. 어지러울 리가 없지. 난 맡을 수도 없는데. 에그시는 자조적으로 웃었다.


 그 때, 에그시의 귀에 낯익은 목소리가 들렸다. 대체 뭐 하다가 늦은 거야? 그럴 일이 좀 있었어. 건성으로 대꾸하는 낮은 목소리는 분명 찰리의 것이었다. 에그시는 자연스레 그쪽으로 눈을 돌렸다. 살짝 열려 있던 문을 크게 열어젖히며 루푸스와 딕비가 모습을 드러냈다. 들어오자마자 그들은 입꼬리를 비죽 당기며 웃었다.


 “완전 꽃밭인데?”

 “정말이야.”


 뒤를 이어 찰리가 안으로 들어섰다. 평소보다도 훨씬 깔끔하고 우아한 모습이었다. 입가에 자리 잡은 여유로운 미소까지 무엇 하나 흠잡을 구석이 없었다. 에그시는 그에게 인사하며 달려가는 대신 저도 모르게 고개를 홱 돌리고 말았다. 옆에 있던 록시가 눈을 동그랗게 뜨곤 에그시의 어깨를 툭 쳤다.


 “에그시. 찰리가 온 것 같은데?”

 “나… 머리가 좀 아파서. 잠깐 좀 쉴게.”

 “에그시?”


 에그시는 록시의 의아한 외침도 무시하곤 창가 쪽으로 달려 나갔다. 다행히 가장 구석진 곳에 있는 창가 쪽은 빛이 들지 않아 어두웠고 당연히 사람 또한 없었다. 어둠 속에 몸을 숨기듯 자리 잡은 에그시가 거칠게 숨을 몰아쉬었다. 루푸스와 딕비, 그리고 찰리가 들어오자마자 문가 쪽으로 쏠리던 여성의 시선이 따가울 정도였다. 당사자인 그들은 오죽했을까.


 그리고 그보다 더한 것도 있었겠지. 분명, 저는 느끼지 못할. 에그시는 제가 감히 짐작조차 할 수 없단 것에 허탈함을 느꼈다. 그리고 그런 식으로 허무함을 느끼는 제 자신을 욕했다.


 아무래도 돌아가는 편이 낫겠어. 어차피 이런 파티는 저한테 잘 맞지도 않았다. 찰리에겐 미안했지만 오히려 단 둘이 따로 만나는 쪽이 더 나을지도 몰랐다. 그래, 둘이서만. 그러면 서로에게 붙은 타이틀을 다 떼어 내고 오롯이 찰리 헤스켓과 에그시 언윈으로 마주할 수 있었다. 도망치는 것이라 생각해도 좋았다. 에그시는 지금 이 자리를 피하고 싶었다.


 무슨 일인지는 몰라도 차라리 찰리가 아예 오지 않았으면, 그런 생각도 했다. 그러나 찰리는 이미 모습을 보였고 그렇다면 에그시 쪽에서 모습을 감추는 수밖에 없었다. 사실 에그시는 그것이 제일 두려웠다. 화려하고 향긋한 꽃들 사이에서 아무것도 느껴지지 않는 저를 찰리가 발견하는 것이. 혹은, 그렇기 때문에 존재조차 알지 못하고 스쳐지나가는 것 또한. 어느 쪽이 더 괴로운지는 알 수 없었으나 확실한 것은 에그시의 속이 뜨겁게 뒤틀린다는 사실이었다.


 에그시는 천천히 발을 옮겼다. 누구의 눈에도 띄지 않고 조용히 사라질 셈이었다. 조금 전에 생각한대로 베타란 있으나마나한 존재에 가까웠으므로 에그시가 사라진들 눈치 채는 사람은 극히 적을 터였다. 기껏해야 록시가 창가 주변을 기웃거릴 정도겠지. 에그시는 파티장을 빠져나가자마자 찰리에게 몸이 좋지 않다고, 미안하다고 연락을 할 생각이었다. 파티를 제대로 즐기지 못할 찰리에게는 미안했으나 지금 에그시는 그런 것까지 고려 할 수 있는 상태가 아니었다.


 “어디 가는 거야, 에그시.”


 그렇게 어둠 속에서 조용히 사라질 생각이었는데. 등 뒤에서 저를 안아오는 부드러운 품만 아니었어도 에그시는 무리 없이 이곳을 떠났을 터였다. 에그시는 제 귓가에 쏟아지는 낮은 목소리와 커다란 품이 누구인지 너무 잘 알았다.


 “이런 구석에 뭐 하러 왔어.”


 언뜻 찰리가 있던 곳을 향해 곁눈질 했을 때, 찰리는 예쁘장한 여자들에게 둘러싸여 있었다. 퍽 익숙한 그림이기도 했다. 찰리에게는 이런 일이 일상이나 다름없을 테니까.


 “당연히 널 만나러 왔지.”

 “널 보고 싶어 하는 사람들은 저기 더 많은 것 같은데.”


 오. 에그시는 제 입에서 튀어나온 말의 내용보다 제 목소리가 생각보다도 공격적이라는 사실에 더 놀랐다. 이런 유치한 감정을 그대로 내뱉다니. 매번 찰리를 아이 취급했던 것이 부끄러울 정도였다. 찰리는 비웃거나 화를 내는 대신 끌어안은 에그시의 머리 위로 가볍게 입술을 찍었다.


 “저것들은 다 필요 없어. 내가 보고 싶어 하는 사람이 아니니까.”


 찰리는 마치 향을 맡듯 에그시의 머리칼 위로 얼굴을 부볐다. 에그시의 어깨가 움찔 떨렸다.


 “사실 저 사이에 있으면 속이 울렁거려. 메슥거린다고. 머리도 좀 어지럽고.”

 “뭐 잘못 먹었나보지.”

 “에그시, 넌 모르겠지만 그런 이유가 아니야. 이건 코가 아프도록 뿌려대는 오메가 향 때문이라고.”


 에그시는 당장이라도 저를 끌어안은 찰리의 손을 거칠게 뿌리치고, 그 빌어먹을 이유를 저도 잘 알고 있노라 외치고 싶었다. 찰리가 에그시의 귓바퀴를 살짝 깨물지만 않았어도 에그시는 필히 그렇게 했을 터였다. 찰리는 더듬거리듯 에그시의 팔뚝을 타고 내려가 작고 뜨거운 손을 꼭 잡아 왔다.


 “하지만 네 곁에 있으면 편안해져.”


 그런 뜻은 아닐 테지만, 에그시는 찰리의 말을 곡해할 수밖에 없었다. 찰리는 제가 깍지를 낀 에그시의 손이 파르르 떨리는 것을 느꼈다.


 “그건 내가… 아무 향도 없으니까?”


 목소리는 그보다 더 떨렸다. 잠시 멈춘 찰리는 이내 푸흐, 웃음을 터뜨리며 고개를 저었다.


 “그게 무슨 바보 같은 소리야, 에그시?”

 “바보 같다니, 빌어먹을… 나도 이런 얼빠진 소리 하고 싶지 않거든? 이런 걸 신경 쓰고 있는 내가… 네가 보기에도 병신 같겠지. 그래, 내가 봐도 그러니까.”

 “아니, 에그시. 내 말은 그런 뜻이 아니야.”


  찰리는 에그시의 목덜미 깊숙이 얼굴을 묻었다. 코를 박을 때마다 늘 제 폐부를 찌르고 들어 왔던 에그시만의 체취가 느껴졌다. 에그시의 살내음과 더불어 늘 사용하는 샴푸와 비누 따위가 섞인 향이었다. 비단 그것뿐이 아니었다.


 “향보다 더한 게 이미 많이 있어.”


 입을 맞추면 늘 혀 아래부터 건드리는 것, 몸 여기저기 자리 잡은 점을 이어 그리듯이 훑을 때면 바르작거리고 떠는 것, 발목에 이를 세우면 사정이라도 할 것처럼 금방 달아오르는 것, 가장 뜨겁고 깊숙한 안쪽을 찔렀을 때 목을 뒤로 젖히며 우는 것…… 무엇 하나 빠짐없이 에그시 언윈이었고, 오롯이 찰리만이 알 수 있는 것이었다.


 “남들도 다 알 수 있는 건 필요 없어.”


 에그시가 오메가라면 분명 달콤할 것이다. 향긋하고 기분 좋은 냄새가 나겠지. 살짝만 스쳐도 코끝을 간질이는 향. 그러나 찰리는 그런 것을 바라지 않았다. 저를 포함한 다른 알파들 모두가 단번에 알 수 있는 건 의미가 없었다.


 “나만 알면 돼.”


 찰리는 진심으로 에그시가 베타라는 사실에 감사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