척 봐도 발렌타인의 얼굴엔 불만이 한가득 이었다. 어린 아이처럼 심통이 난 발렌타인이 쉬지 않고 툴툴거렸다. 적당히 받아주던 가젤마저 종국에는 입을 다물 정도였다. 한두 번 있는 일도 아닌지라 가젤은 이제 발렌타인의 잔소리를 대충 한 귀로 듣고 한 귀로 흘려보내는 법까지 터득했지만, 그런 가젤이 듣기에도 괴로울 지경이었다. 가젤이 대꾸를 하지 않자 발렌타인은 더 목소리를 높이며 손을 휘저었다.
“가젤! 분명 저기다 하면 걱정 없다고 했잖아?”
“당신이 그 여자만 조사하라고 했잖아요?”
“게이인지 아닌지 정도는 알아 뒀어야지!”
가젤은 피곤한 듯 짧은 한숨과 함께 고개를 돌려버렸다. 란슬롯이 된 그 여자아이와 어떠한 이성적인 감정도 없다는 것을 알았을 땐 정말 문제가 없다고 생각했다. 설마 맨날 으르렁거리던 저 도련님이랑 혀를 섞을 줄이야. 나름대로 꼼꼼하게 준비한 가젤조차 미처 생각하지 못한 부분이었다. 변명을 하려던 가젤이 다시 입을 다물자 발렌타인이 얼굴을 잔뜩 구기며 꽥꽥거렸다.
“저쪽에서 해체할 수는 있는 거야?”
“혀를 잘라내면 되겠죠.”
“오, 가젤! 저들이 그깟 혀를 잘라내는 것을 두려워 할 것 같아? 역시 내 생각대로 피부 아래 칩을 심어야 했다니까!”
혀를 잘라 낼 정도라면 머리를 날리는 것도 별다르진 않을 텐데. 가젤은 그렇게 대답하는 대신 눈을 치켜뜨곤 발렌타인을 똑바로 노려보았다. 발렌타인이 딱히 틀린 말을 늘어놓는 것은 아니었지만 내내 들어주고 있기에는 괴로웠다. 발렌타인에게 가닿은 시선이 서늘했다. 발렌타인은 말을 하다 말고 흡 숨을 들이마셨다.
“당신 혀를 잘라버리기 전에 입 다물어요.”
목소리는 그 눈보다 더 싸늘했다. 발렌타인은 단번에 입을 다물었다. 그리고 조금 뒤에, 아주 작은 목소리로 속삭였다. 가젤, 설마 진짜 그러는 건 아니지? 가젤은 이제 피곤함을 느낄 기운조차 없었다. 제게 두 다리를 달아주었을 때부터 발렌타인은 온전한 저의 세상이 되었으나 필요 이상으로 시끄러운 것만큼은 외면할 수 없는 사실이었다. 가젤은 말하는 대신 발렌타인의 책상을 손끝으로 톡톡 두드렸다. 이제 됐다는 신호였다.
“좋은 쪽으로 생각해 봐요. 어쨌거나 지금 당장은 쓸모가 있잖아요? 초짜 꼬맹이기는 해도.”
턱을 쓰다듬던 발렌타인이 턱을 괴고는 에그시의 얼굴을 떠올렸다. 킹스맨의 특성상 적의 앞잡이가 되었다 느끼면 사정없이 머리를 잘라낼 가능성이 농후했으나 그 갤러해드가 변절한 그를 죽이지 않고 생포했을 때, 발렌타인은 제 예상이 틀릴 수도 있겠다고 생각했다. 설령 그것이 어떤 식으로 그를 조종했는지 알아보기 위함이었다 하더라도 에그시가 아직 쓸모가 있는 것은 틀림없는 사실이었다. 적어도 그들을 뒤흔들 수 있는 작은 걸림돌 역할만큼은 톡톡히 해줄 터였다. 동요하게 만들거나 발을 붙잡아 두게 만들 수는 있겠지.
“교회에서 갤러해드를 죽이는 것도 실패했으니, 그를 막아두는 용도로 쓰다가 버려도 상관없고요.”
“가젤. 그 이야기는 하지 마. 아직도 그 끔찍한 꼴을 생각하면 욕지기가 치민다고.”
“당신이 꾸민 일이었잖아요?”
“내가 피투성이로 만든 건 아니었지! 오, 가젤. 정말 그만해! 올라올 것 같아.”
거짓은 아닌지 발렌타인이 입을 틀어막으며 인상을 구겼다. 가젤은 어깨만 으쓱해 보일 따름이었다. 몇 번의 심호흡 후에 마음을 가다듬은 발렌타인이 주먹으로 책상을 쾅쾅 내리쳤다.
“아서, 그 늙은 영감도 모두 그 남자가 처리했지? 오랜만에 만나는 말이 잘 통하는 상대였는데! 정말 조금도 도움이 되지 않는 놈이군.”
“그러니까 그 꼬맹이를 거기다 붙이자구요. 그 사이에 우리는 브이데이를 완성시키면 되잖아요.”
저를 달래는 가젤의 말에 발렌타인은 조금 기분이 나아졌다. 곧 자리에서 일어난 그는 삐뚜름하게 썼던 모자를 다시 고쳐 쓰며 에그시를 맞을 준비를 했다. 아무리 이번에는 자기 의지를 가질 수 있는 정도로 칩을 조정했다곤 해도, 제게 한 마디 말도 없이 무작정 행동한 것을 지적해두어야만 했다. 에그시가 킹스맨조차 아닌 찰리를 찾아간 것은 정말 발렌타인의 계획에도 없던 일이었던 것이다.
*
“멀린, 몸은 좀 어때요?”
“오, 란슬롯. 고맙구나.”
가벼운 노크 뒤에 조심히 들어온 사람은 다름 아닌 록시였다. 신경질적으로 얼굴을 찌푸리고 있던 멀린의 얼굴에 가벼운 미소가 떠올랐다. 킹스맨 요원들 사이에서 일하는 것은 언제나 피곤한 일이긴 했으나 이번만큼 스트레스가 쌓이는 경우도 드물었다. 록시는 그 중에서 유일하게 멀린을 편안하게 만드는 인물이었다. 멀린은 지금 혀를 데우는 커피가 그 어느 때보다도 감미롭다고 생각했다.
록시는 제 힘이 닿는 데까지 열심히 멀린을 도왔다. 딱히 기계를 잘 다루는 편은 아니라 큰 도움은 되지 못했지만, 어쨌거나 록시는 그 존재 자체로 멀린에게 어느 정도 위안을 주고 있었다. 록시는 퀭한 멀린의 두 눈 밑을 보며 안쓰러움에 눈썹을 오므렸다. 벌써 며칠 동안 잠을 자지 못했는지 짐작 할 수 없을 정도였다. 실제로 멀린은 그 이후로 매일 밤을 꼬박 새고 있었다. 날이 갈수록 피로는 겹겹이 쌓여 멀린을 무겁게 짓눌렀다. 그러나 멀린의 손끝에 모든 희망이 걸려있으니 쉽게 포기할 수 있는 일도 아니었다.
록시가 멀린에게 무어라 위로의 말이라도 한 마디 건네려고 할 찰나, 벌컥 문이 열리더니 해리가 성큼성큼 안으로 들어섰다.
“아직 그들의 거주지를 찾지 못했나?”
으음, 뜸을 들이던 멀린이 어정쩡하게 고개를 끄덕였다. 발렌타인의 소재지는 알았으나 섣불리 들어가기엔 위험성이 너무 높았다. 멀린이 의자를 빙글 돌려 해리를 마주했다.
“갤러해드. 빈 손인 걸 보니 역시 찾지 못한 모양이군요.”
“교회에 그대로 남아 있을 거란 기대는 하지 않았지만, 정말 그렇더군.”
멀린은 오랜 경험으로 해리가 별 말은 하지 않아도 매우 화가 나 있다는 사실을 알아차렸다. 한시라도 빨리 움직여야겠단 생각에 아직 미숙한 란슬롯과 찰리에게 뒤를 맡기고 떠났었다는 점이 스스로를 자책하게 만드는 것이 틀림없었다. 해리가 곧장 사우스 글레이드 교회로 향하지 않았더라면, 그래서 에그시가 깨어나는 순간 이곳에 같이 있었더라면 그렇게 에그시를 놓치는 일 또한 없었을 터였다.
“발렌타인을 계속 찔러보기는 했으나 답이 없는 걸 보아 만남이 성사되기는 힘들 것 같습니다. 아서의 폰에 남아 있던 화면을 생각했을 때 브이데이는 이제 곧 입니다. 그 전에 우리를 만날 이유가 없죠.”
“그렇다면 우리 쪽에서 먼저 쳐들어가는 수밖에 없겠군.”
“갤러해드. 아서가 그렇게 된 마당에 믿을 수 있는 건 여기 있는 셋 밖에 없어요. 그 점은 알고 있는 거겠죠?”
“물론이지.”
해리는 문제 될 것 없다는 듯 태연히 답했다. 그러나 그의 낮은 목소리는 그르렁거렸고, 짙은 눈동자는 형형하게 빛났다. 멀린은 지금의 해리라면 별다른 킹스맨 요원이 따로 필요할 것 같진 않다고 확신했다.
“그럼 그 계획을 실행해야겠군요. 100% 확실한 것은 아니지만 실험해 볼만은 하죠. 란슬롯, 갈 준비를 하게.”
“네, 멀린.”
눈을 굴리며 두 사람의 대화를 듣고 있던 록시가 기다렸다는 듯 빠르게 대답했다. 그녀의 눈이 조금 전보다도 더 생기 있게 반짝였다. 멀린이 그런 록시의 어깨를 가볍게 두드렸다.
“란슬롯의 첫 임무가 되겠구나.”
록시는 환하게 웃던 에그시를 떠올리며 무슨 일이 있어도 이번 일을 성공시켜야겠다고 다짐했다.
*
아랫배에서 올라오는 통증만 아니었다면 찰리는 바로 전에 있었던 일이 모두 꿈이라고 생각했을지도 몰랐다. 그만큼 찰리의 집은 평화로웠다. 찰리가 하면 되는 일이라곤 그저 가지런히 침대에 누워 있는 것 뿐 이었다. 찰리의 몰골을 보자마자 거의 기절할 정도로 비명을 지르던 어머니가 간혹 찾아와 말을 거는 것 빼고는 다른 이와 대화를 할 일도 없었다. 그의 부모님은 어딘지 모르게 바빠 보였다. 침대에 누워 꼼짝도 하지 못하는 찰리를 찾아올 시간을 내기 힘들 정도로. 평소 제 어머니가 이렇게 바쁜 모습은 본 적이 없었기에 찰리는 그것이 못내 수상했지만 입 밖으로 꺼내지는 못했다.
본래 몸이 약한 편도 아니고, 상처의 회복도 빨라서 며칠이 지나자 찰리는 곧 몸을 움직일 수 있게 되었다. 거칠게 움직이거나 운동을 하는 것은 아직 무리였으나 찰리는 그것만으로도 충분하다고 생각했다. 어쨌거나 걸어서 에그시를 만나러 갈 수는 있으니까. 해리나 록시는 물론이고 멀린하고도 같이 싸우는 것은 무리에 가깝겠지만 그렇다고 에그시를 포기할 수는 없었다. 배를 찔렸으니 어쩔 수 없이 집으로 돌아갔을 뿐이지, 찰리는 다시 상처가 벌어져 피가 줄줄 흐른다 하더라도 에그시를 만나서 다시 한 번 이야기를 나누고 싶었다. 그러나 찰리가 솔직하게 말을 꺼내면 모두가 반대할 것이 뻔했으므로 찰리는 혼자서 몰래 계획을 짜야 했다.
혼자 있는 시간이 길어지자 찰리를 파고든 것은 홧홧한 통증이 아니라 내면의 불안을 갉작이는 상념이었다. 찰리의 머릿속은 에그시 생각 하나뿐이었다. 오직 그것뿐이라 간단하고 명료할 수 있는 것임에도 머리는 갈수록 복잡해졌다. 저를 아무렇지도 않게 죽이려고 했던 에그시. 그건 제가 알던 에그시가 아니었다. 하지만 그는 또한 에그시 언윈이 맞았다. 찰리는 어떻게든 그를 원래의 에그시로 돌려놓아야 했다.
혀를 건드리면 일시적으로나마 돌아온다는 사실을 알게 되기는 했지만 그것으로 끝이었다. 영원히 키스를 하고 있을 수도 없는 노릇이었고, 그 외의 방법을 아는 것도 아니었다. 찰리는 제게 담담히 가라앉은 시선을 던지던 멀린을 기억했다. 그가 떠올린 답은 찰리가 가장 먼저 생각했던 것과 별반 다르지 않았을 것이다. 혀를 잘라내면 되겠지. 그러나 찰리는 제가 죽는 한이 있어도 그 방법을 택하진 않으리라 다짐했다. 찰리, 저를 부르는 그 목소리를 다시 들을 수 없다고 생각하면 머리가 새하얗게 변할 정도였으니까.
찰리는 멀린이 우수하다는 걸 아주 잘 알고 있었고, 그 곁에 있는 갤러해드나 록시 역시 그 이상으로 뛰어난 요원들이었다. 찰리는 그들이 에그시를 원래대로 되돌릴 방법을 찾았기를 진심으로 바랐다. 찾지 못했다면 자신이 발렌타인을 협박해서라도 알아내야만 했다.
“찰리, 일어났니?”
물론 찰리는 이미 몇 시간 전부터 일어나 생각에 잠겨 있었다. 노크와 함께 속삭이는 부드러운 어머니의 목소리에 찰리가 들어오라고 대답했다. 간편하지만 우아하게 차려 입은 어머니의 모습에 찰리가 눈썹을 치켜 올렸다. 아무리 보아도 지금 당장 밖으로 나갈 차림이었다. 이미 모든 준비를 마친 사람처럼 결의에 찬 얼굴로 어머니는 단호히 말을 꺼냈다.
“떠날 준비는 다 마쳤으니 이제 가면 된단다, 찰리.”
“…무슨 준비요? 떠난다니요?”
찰리는 처음 듣는 이야기였다. 눈을 크게 뜨고는 되묻는 찰리에게 어머니는 머뭇거리며 말을 흐렸다.
“이제 모든 것이 마지막이 될 거란다.”
순간 찰리의 머릿속을 스쳐지나가는 것이 하나 있었다. 찰리는 곁눈질로 오늘의 날짜를 훔쳐보았다. 감은 순식간에 확신이 되었다. 찰리는 어머니의 뒤에 서있는 시종에게 슬쩍 시선을 던졌다.
“저 사람들도 함께 가나요?”
“……그건 힘들겠구나.”
“저는 갈 수 있는 거겠죠?”
“물론이지, 찰리.”
아직 완쾌하지 못한 찰리가 이동하기 쉽도록 어느새 이동 장치까지 마련되어 있었다. 찰리는 자세한 내막은 알 수 없어도 이미 오래 전부터 제 어미가 준비 해왔다는 것 정도는 눈치 챌 수 있었다. 대체 언제 접촉을 한 걸까? 어떤 말을 했기에 이렇게 바로 넘어간 것일까? 궁금한 것이 수두룩했으나 찰리는 그 모든 것들을 일단 제쳐두기로 했다. 함정일지도 모르겠다는 생각도 들었지만 찰리는 고개를 저었다. 설령 그렇다 하더라도 여기서 거절할 수는 없었다. 빠져 나갈 궁리를 하지 않아도 알아서 발렌타인을 만날 수 있는 기회였다.
과연 어떤 일이 일어날 지 짐작할 수도 없었지만 어쨌거나 찰리는 발렌타인을 만나야 했고, 에그시를 다시 마주해야 했다. 그는 어머니의 귓덜미에 자리 잡은 새로 난 생채기를 바라보며 표정을 굳혔다.
*
꼭두새벽부터 에그시는 제게 꼭 맞는 수트를 차려입으며 머리를 손질해야 했다. 여직 졸음이 덕지덕지 붙은 눈가를 비비며 에그시가 늘어지게 하품을 했다. 설레서 잠도 제대로 자지 못한 발렌타인이 그런 에그시를 이해할 수 없다는 듯 채근했다.
“긴장감이 너무 없어!”
“졸려서 그래요.”
“그게 긴장감이 없다는 소리지.”
발렌타인이 끌끌 혀를 찼다. 그러거나 말거나 에그시는 단추를 마저 채우며 투덜거렸다.
“나 거기 가기 싫은데. 얼굴 보기 싫은 애 있어요.”
예상 못한 에그시의 말에 발렌타인이 얼굴을 팩 찡그렸다. 여기서 말하는 얼굴 보기 싫은 애가 누구인지는 말하지 않아도 명확했다. 발렌타인은 기가 차서 소리쳤다.
“무슨 소리야? 먼저 찾아가 놓고!”
“…….”
“그리고 그렇게 배때기를 쑤셨으니 죽어서 없을 텐데.”
대꾸할 말이 없어 에그시는 그저 반대편으로 고개를 돌리고 말았다. 하긴, 발렌타인이 한 말이 맞았다. 분명 제 손으로 그의 복부를 인정사정없이 짓이겼고, 그 여파로 바닥을 빨갛게 물들일 정도로 피를 흘렸으니 사망했을 가능성도 충분히 높았다. 살아남았다한들 치명적인 상처임엔 분명했다. 잘 아문다 하더라도 아마 평생 흉터가 남겠지. 그런데 이상하게 다시 그를 만날 것 같은 예감이 들었다. 거기까지 생각했을 때 에그시는 자신이 지나치게 그를 떠올리고 있는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었다.
스스로도 이해할 수 없는 일이었지만, 분명 그 날 집 앞까지 가서 찰리를 찾았던 것은 에그시의 의지가 맞았다. 발렌타인의 명이 떨어진 것도 아니었는데 제가 배때기를 쑤신 그 새끼의 면상이 보고 싶어 찾아간 것이었다. 물론 그 때는 나이프를 찔러 넣기 전이었지만, 어찌 되었건 에그시는 저를 보자마자 애타게 이름을 부르며 달려들던 찰리를 마주하고는 혼란을 느껴야 했다. 내가 왜 이 녀석을 찾아 왔지? 킹스맨으로 발탁되지도 못한 하등 쓸모없는 상대를.
브이데이를 앞두고 있는 지금 에그시가 신경 써야 할 상대는 기껏 해야 갤러해드나 란슬롯 정도가 전부였다. 실제로 에그시는 발렌타인의 명령 없이 제멋대로 찰리를 찾아간 것에 엄청난 잔소리를 들어야 했다. 가젤이 시끄러우니 이제 그만 좀 하라고 핀잔을 주지 않았더라면 아마 하루 종일 시달려야 했을 터였다.
“그 새끼가 또 혀 건드리면 어떡해요?”
“그럼 그 혀를 콱 잘라버려! 대체 뭐가 문제야?”
발렌타인이 신경질적으로 외쳤다. 에그시는 또 대답하지 않았다. 애당초 키스를 한 것은 그 때가 처음이었고, 곧바로 반죽음 상태로 만들었으니 이다음에도 또 입을 맞추리란 보장은 없었다. 얼굴이나 다시 마주할 수는 있을까? 그럼에도 에그시는 다시 그를 만나는 순간 또 입술이 맞닿고 혀가 섞일 것 같은 예감이 들었다. 감이라기보다는 오히려 확신에 가까웠다. 스스로도 이해할 수 없는 확신. 어쩌면 이건 본능에 가까웠다.
“쳇. 갈 테니까 이제 그만해요. 당신이나 멀린이나 시끄러운 건 똑같아.”
“젠장, 날 그런 멍청이들과 똑같이 취급하지 마!”
씩씩거리는 발렌타인을 무시하고 에그시는 곱게 올려둔 총까지 단단히 챙겨 들곤 그곳을 빠져나왔다. 목적지는 명확했다. 킹스맨 본부. 이번에야말로 에그시는 발렌타인이 바라는 대로 킹스맨인 그들을 무너뜨릴 계획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