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D 2.5D NOTICE GUEST


 “쿠로코 바닐라쉐이크 진짜 좋아하는구나.”

 “…타카오 군.”

 “하이!”


 타카오는 넉살 좋게 웃으며 쿠로코의 앞자리를 꿰차고 앉았다. 하루가 멀다하고 바닐라 쉐이크를 먹으러 오는 쿠로코 앞에 타카오가 제멋대로 동석을 시작한지도 벌써 일주일이나 지났다. 처음에는 자리가 없어서 실례한다며 양해를 구했지만 이제는 다른 곳이 비어있어도 알아서 쿠로코의 테이블을 찾아오는 타카오였다. 그럴때마다 쿠로코는 타카오의 놀랄만한 친화력에 한 번, 자신의 미스디렉션이 통하지 않는 호크아이에 한 번, 별 말 안하는 자신을 앞에 두고 쉴 새 없이 재잘거리는 그 능력에 한 번 놀라곤 했다. 뭐가 어찌됐든 늘 밝게 웃으며 떠드는 타카오가 싫은건 아니었기에 쿠로코는 그 시덥잖은 이야기를 잘 들어주는 편이었다.


 “쿠로코는 여기 카가미랑 자주 오는거 아니었어?”

 “카가미 군은 나름대로 데이트 중이라서요.”


 그렇게 말한 쿠로코는 까무잡잡한 피부를 지닌 자신의 옛 빛을 떠올리며 인상을 약간 구겼지만 그건 타카오조차 눈치채지 못할 정도로 아주 미세한 변화였다. 타카오는 뭐가 그리 신나는지 목까지 젖히며 크게 웃음을 터뜨렸다.


 “하하, 데이트라니 과연 제대로 될까?”


 쿠로코는 그럴 리 없다고 생각했지만 굳이 입 밖으로 꺼내진 않았다. 신나게 웃어제낀 타카오는 쿠로코 앞에 놓인 감자 튀김 한개를 입에 넣었다.


 “후아, 신쨩하고도 같이 오고 싶은데. 신쨩은 이상하게 이런 장소를 싫어한단 말이야.”

 “미도리마 군은 좀 이상하니까요.”

 “푸하하, 역시 그렇지?”


 단호한 쿠로코의 말에 타카오는 또 테이블이 떠나가라 웃어댔다. 눈물까지 살짝 매달고서 깔깔거리며 웃는 타카오를 보고 쿠로코도 살짝 미소지었다. 타카오는 제 앞에서 무심한 얼굴을 하고서 바닐라 쉐이크를 쪽쪽거리는 소년도 못지 않게 특이하다고 생각하며 웃음을 간신히 멈췄다. 저렇게 아무렇지도 않은 얼굴로 폭언을 날리는게 매력이란 말이지. 사실 틀린 말을 하는 것도 아니고.


 그냥 눈 앞에 있길래 몇 개 집어 먹은건데 감자 튀김이 꽤 맛있어서 타카오는 아예 제 쪽으로 접시를 옮겼다. 뭐하냐는 듯한 얼굴로 바라보는 쿠로코와 눈이 마주쳐서 베시시 웃었더니 딱히 저지하지도 않았다. 감자 튀김 몇 개를 오물거리며 타카오는 말없이 쿠로코를 관찰했다. 타카오의 특기가 관찰인 만큼 오래도록 쿠로코 앞자리를 꿰차면서 얻은 정보는 의외로 많았다. 그 중 몇개는 너무 소소한 습관같은거라 어쩌면 아는 사람이 나 밖에 없는게 아닐까, 하는 생각에 은근히 흡족한 마음이 들기도 했다.


 “쿠로코, 이번 일요일에 시간 있어?”

 “일요일 말입니까?”

 “응. 실은 신쨩이랑 영화 보려고 티켓 사놨는데 갑자기 일이 생겼대서. 그게 아니더라도 신쨩은 안 보겠다고 했을 것 같지만 말야.”


 평소처럼 시시콜콜한 이야기를 하던 타카오가 잠시 머뭇거리더니 물어왔다. 딱히 주말에 약속이 있는건 아니었다. 늘 그렇듯이 주말마다 1 on 1을 즐기는 자신의 두 빛을 보는 것이 나름대로 주말 일과긴 했지만 중요한 일은 아니었으니. 어차피 그 둘은 매번 패턴도 같아서 굳이 매번 지켜볼 이유도 없었다. 잠시 고민하던 쿠로코는 이내 작게 고개를 끄덕였다. 영화를 보러 가는 것도 오랜만이었지만 그 상대가 타카오가 될 줄은 전혀 몰랐기에 조금 이상한 마음이 들기도 했다.


 쿠로코가 고개를 끄덕이자 살짝 걱정했는지 타카오가 크게 웃으며 감자 튀김을 집어들었다. 어느 정도 친해졌다고는 생각하지만 그래도 껄끄럽지 않을까 걱정했는데 다행이라고 생각하며 타카오는 흘끗 쿠로코를 쳐다봤다. 평소처럼 바닐라 쉐이크를 마시면서 감흥없는 표정을 짓고 있는게 딱 쿠로코 테츠야답다. 흐흥, 속으로 콧노래를 부르며 연신 감자 튀김을 집어먹던 타카오가 갑자기 아! 하고 탄성을 냈다.


 “공포 영화인데…… 괜찮지?”


 상당히 호불호가 갈리는 장르라 타카오는 불안한 기색으로 물었다. 쿠로코가 공포 영화를 보면서 깜짝 깜짝 놀랄 것 같지는 않지만 그래도 싫어할 수는 있으니까. 걱정과 달리 쿠로코는 아무렇지도 않은 얼굴이었다.


 “상관 없습니다.”

 “아, 다행이다. 싫어하면 어쩌나 조금 걱정했어.”

 “그나저나 공포 영화를 미도리마군과 같이 볼 예정이었나요?”

 “아… 음, 신쨩은 공포 영화 같은거 잘 못볼거 같으니까 말야. 본인은 아니라고 벅벅 우기겠지만. 신쨩 괴롭히는건 은근히 재밌기도 하고.”


 악취미라고 비웃을 줄 알았던 쿠로코는 의외로 입꼬리까지 올리며 동의했다.


 “미도리마 군은 고지식한 면이 있으니까요.”


 겉으로 보기엔 어색해 보이지만 어쩌면 쿠로코는 미도리마를 상대하는게 꽤 즐거웠을지도 모르겠다고 생각하며 타카오는 남은 감자 튀김을 전부 입에 털어넣었다.




 *




 “쿠로코, 어제 무슨 일 있었냐?”


 등교하자마자 가방을 내려놓으며 묻는 카가미를 보고 쿠로코는 고개를 갸웃했다. 설명이 부족했나 싶어 카가미가 뒤늦게 덧붙였다.


 “어제 농구장에 없길래.”

 “아. 어제는 약속이 있었습니다.”

 “헤, 약속이라니 별 일이네. 누구랑? 키세?”

 “아뇨. 타카오 군과 약속이었습니다.”


 예상하지 못한 대답이었는지 카가미의 표정에 의아함이 떠올랐다.


 “타카오라면… 슈토쿠의? 미도리마 옆에 있던 호크아이?”

 “네.”

 “언제부터 그렇게 친했냐?”

 “글쎄요.”

 

 실은 영화를 봤다는 사실보다 더 중요한 사건이 있었지만 쿠로코는 굳이 먼저 말을 꺼내진 않았다. 아무래도 카가미가 알면 반응이 좀 시끄러울 것 같아서. 어차피 둔하고 눈치없는 카가미는 말하지 않으면 평생 모를게 뻔했기에 감추는 건 어렵지 않았다.


 약속했던 날 쿠로코는 평소와 다를 것 없는 복장으로 집을 나섰고 영화관에서도 둘은 평소처럼 서로를 대했다. 영화는 생각보다도 무서웠고 타카오는 예상보다도 겁이 많은 편이었다. 갑자기 귀신이 튀어나오는 장면에선 히익 하고 깜짝 놀라기도 했고 그대로 온 몸이 굳어서 눈도 깜빡 못하기도 했다. 쿠로코는 타카오의 그런 모습은 처음이라 영화보다도 타카오를 더 자주 힐끔거렸다. 영화를 다 보고 나왔을 땐 이미 타카오는 녹초가 된 상태였다.


 “의외로 겁이 많으시네요.”

 “아하하… 그건 아닌데, 이 영화가 좀…….”


 어물거리며 변명하던 타카오가 뜬금없이 쿠로코의 얼굴을 똑바로 마주하고는,


 “쿠로코. 좋아해.”


 갑작스런 고백을 날린 것이다.


 사실 더 중요한 것은, 쿠로코가 타카오의 생뚱맞은 고백을 제법 담담하게 받아 들였단 점이었다.


 “그렇군요.”

 “그래서 말인데, 조금 뒤에 열리는 축제 같이 갈래?”


 가볍게 눈을 찡긋하며 웃어 보이는 타카오를 향해 쿠로코는 고개를 끄덕여주었다.



 

 *




 여름하면 축제지! 타카오의 활기찬 목소리가 아직도 귀에 생생했다. 쿠로코는 약속 시간보다 조금 이르게 도착해선 주위를 둘러보았다. 색색깔의 유카타를 입고 여기저기 돌아다니는 사람들의 모습에 마음이 절로 평온해진다. 오랜만의 휴식이었다. 동시에 데이트이기도 했고.


 그렇게 갑작스레 타카오가 선언을 한 뒤, 만나서 가볍게 식사를 하거나 농구를 한 적도 있었지만 단 둘이 축제를 즐기는건 처음이었다. 내색은 하지 않았어도 쿠로코 역시 살짝 설레고 있었다.


 “텟쨩, 여기야!”


 주위를 두리번거리던 쿠로코는 자신을 부르는 밝은 목소리에 등을 돌렸다. 남색의 유카타를 차려 입은 타카오가 입가에 미소를 띄운 채 손을 흔들고 있었다.


 “아, 다행이다. 축제 즐기고 싶었는데 같이 갈 사람이 없어서 진짜 고민했었는데.”

 “축제는 다 같이 즐겨야 재밌으니까요.”

 “그건 그렇지! 하지만 가끔은 단 둘이 즐기는 것도 좋잖아?”


 타카오는 쿠로코를 바라보며 싱긋 웃었다. 시원시원하면서도 꾸밈없는 그 미소에 답하듯 쿠로코가 옅게 웃자 타카오의 웃음 소리가 더 커졌다. 잠시 타카오를 바라보던 쿠로코가 곧 그의 유카타로 시선을 돌렸다. 유카타를 입었을거라 예상은 했지만 예상보다도 훨씬 더 잘 어울린다. 작은 나비가 그려져 있는 것이 나풀거리고 자유분방한 그의 성격에 잘 어울리는 듯 했다. 편하게 와도 된다길래 그냥 교복 입고 왔는데. 쿠로코가 제 옷차림을 훑는 것을 눈치챘는지 타카오가 어깨를 툭툭 쳤다.


 “텟쨩은 역시 교복이지!”

 “…그렇습니까.”

 “응. 데이트 할 때도 교복입고 나갈 것 같거든.”


 뭐라고 반박하고 싶었지만, 실제로 그런 적이 있었기에 쿠로코는 그냥 잠자코 있었다. 아마 타카오 역시 같은 날을 떠올리고 있으리라. 결국 인정한다는 듯이 쿠로코가 대답이 없자 타카오는 다시 크게 웃음을 터뜨렸다. 언제 생각해도 참 기분 좋게 잘 웃는 사람이다. 자신을 놀리는 듯한 가벼운 말투로 결코 기분이 나쁜건 아니었기에, 쿠로코도 작은 웃음으로 넘겼다.


 “물고기 잡는거 진짜 해보고 싶었어.”


 경쾌하게 발을 놀리며 타카오가 쿠로코의 손을 잡아 끌었다.


 “축제엔 사과 사탕이지!”

 “전 됐습니다.”

 “그럼 텟쨩은 타코야키.”


 됐다고 다시 거절하기도 전에 타카오가 쪼르르 달려가 타코야키 하나요, 하고 해맑게 외쳤다. 경쾌하게 웃으며 구경거리란 구경거리는 하나도 빠짐없이 즐기고 다니는 타카오의 뒤를 따라가며 쿠로코는 나직이 웃었다.


 군것질로 배도 빵빵하게 채우고, 하고 싶다던 물고기 잡기 외에도 물풍선 던지기나 길거리 공연까지 모두 구경하고 나자 어둑한 밤이 되었다. 피날레는 늘 그렇듯 화려한 불꽃 놀이가 밤하늘을 장식했다. 둘 모두 고개를 한껏 뒤로 젖히고선 시끄럽게 터지는 불꽃을 감상했다. 마지막의 마지막 하나까지 눈에 담고 나서야 타카오는 쿠로코에게로 눈을 돌렸다. 시원한 웃음이 가득했다.


 “아, 진짜 즐거웠다.”

 “저도입니다.”

 “내일이면 또 연습 시작인가. 으아, 피곤해.”

 “…그러게요.”


 쿠로코의 말에 타카오가 두 눈을 동그랗게 뜨며 고개를 돌렸다.


 “텟쨩은 연습 좋아할 것 같았는데, 뭔가 의외네.”

 “저도 사람입니다.”

 “하핫, 그건 그렇지만. 아, 집에 가기 싫다. 날씨도 좋은데 좀만 더 있어도 되겠지?”


 쿠로코가 채 대답하기도 전에 타카오가 은근슬쩍 쿠로코의 손 위로 자신의 손을 겹쳤다. 슬쩍 바라보는 쿠로코를 보고 타카오는 헤죽 웃어보였다.